▲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 TIN뉴스

 

1855년 파리에서 개최된 두번째 만국박람회(EXPO)는 프랑스 상품(특히 와인과 패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차별성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상류사회(왕족과 귀족)에서 소비되고 향유되었던 생활용품은 호화로운 문화의 산물로 치장되어 유럽 전역과 미국시장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특히 명품화 전략의 정점에 와인과 패션 모드가 있었다. 1858년에 파리 고급의상 조합이 오뜨 꾸튀르(Haute Couture – High Fashion)라는 이름으로 설립이 되면서 프랑스 패션은 명품화하여 유럽을 넘어 세계화가 시작된다. 지금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프랑스 명품브랜드의 탄생과 뿌리는 이 시기를 전후하고 있다.

 

1828년에 설립된 겔랑(Guerlain)은 당시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유일한 브랜드로 시작하여 1855년 만국박람회의 최대기획전을 통해 국가지원을 받는 명품브랜드의 서막을 열었다. 

 

1837년 에르메스(Hermes)는 프랑스 왕실에 마차 용구와 장식 등을 공급을 시작하면서 유럽 전역 왕실과 귀족들에게 고급제품으로 판매를 늘려갔으며, 외제니 왕후의 보석사랑을 충족시켜준 최애 브랜드는 까르띠에 (Cartier)로 1847년 본격적으로 상점을 열어 귀족들 사이에 알려지게 된다. 

 

루이비통(Louis Vuitton) 또한 왕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여행용 짐가방을 1854년부터 납품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그 명성과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프랑스 4대 명품브랜드 겔랑, 에르메스, 까르띠에, 루이비통  © TIN뉴스

 

1870년에 이르러, 프로이센과의 전쟁(보불전쟁)에서 프랑스는 대패를 하면서, 나폴레옹3세의 죽음과 함께 절대왕정의 향수는 영원한 종말을 맞이하며, 프랑스는 제3공화정으로 선출직 대통령제의 기틀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태동하였던 오뜨 꾸뛰르를 중심으로 한 명품패션 산업은 전쟁과 격변의 시기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게 된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 1867, 1878, 1889년으로 이어진 파리엑스포에서의 중심 전시품은 항상 와인과 오뜨 꾸튀르의 명품브랜드 였다. 1878년에는 에르메스, 1889에는 루이비통이 엑스포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명성의 결정적인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이후 1,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도 폴프와레, 코코샤넬, 크리스챤디올, 이브생로랑과 같은 걸출한 디자이너의 출현으로 프랑스 명품패션 산업은 현재까지도 세계의 중심에 서있게 된다.

 

프랑스의 와인산업 또한, 역사배경에서 기술한 교황, 왕실, 성직자, 귀족과 엮여진 스토리와 함께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Bourgogne) 샹빠뉴(Champagne)의 3대 대표 생산지역(이니셜을 따 BBC라고도 줄여서 부르기도 함)을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수많은 종류의 명품급 와인을 지금도(물론 미래에도) 꾸준히 양조하고 초고가로 세계시장에 판매하고 있다.(추후에 “프랑스 명품와인”을 정리하는 칼럼을 연재 예정이다) 

 

▲ 프랑스 3대 와인산지(BBC) Bordeaux, Bourgogne, Champagne  © TIN뉴스

 

패션명품과 고급와인의 대명사 하면 누구나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나라가 있다. 와인과 문화 예술에서 역사적 기원이 앞서고 있는 이탈리아로서는 현재의 시장인식과 평가를 그대로 수용하기에 자존심이 허락하기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졌던 와인의 양조와 전파 그리고 기독교 역사와 함께 했던 포도주의 종주국이었던 로마제국을 자랑스러운 선조의 역사로 기억하고, 중세 문화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던 르네상스의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와 같은 세계적인 천재미술가들의 명작들을 보고 있다 보면 이탈리아인의 자부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현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과 와인의 시장가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엉뚱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전편에 와인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의 주관적인 평가와 해석이 독자의 논리적인 이해에 도달하기에 부족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로 기억되기를 희망하며, 근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번째는 통일국가 형성의 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771년 카룰로스대제에 의해 프랑크 왕국으로 통일되고 또 다시 843년 독일/프랑스/이탈리아 형태로 분리 되면서 프랑스는 단일 국가의 기반을 만들게 된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936년 오토대제의 1세의 지배를 받게 되고, 962년에는 신성로마제국으로 통합이 되나, 황제와 교황권의 세력 갈등을 겪게 되면서 도시국가 형태를 띠고 있던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연합을 통해 12세기경 황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치 도시국가 형태로 나뉘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는 단일국가가 아닌 개별 도시국가의 군집형태를 이루게 된다. 비로소 1861년에 이르러서야 이탈리아는 통일국가를 이루게 된다. 중앙집권형 통치체계 정립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000년의 격차를 가지게 된다. 

 

이는 와인을 양조하고 개량하고, 고급화 하고자 산업적인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강력한 프랑스 왕권은 종교적 갈등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성직자가 관리하던 포도재배와 양조장 즉 샤또는 프랑스 왕실에 와인을 납품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했고, 보르도 지역은 영국령에서 프랑스로 반환이 되면서 생존을 위한 와인품질 향상에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탈리아는 북부, 중부, 남부 시칠리아로 크게 나뉘고 각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소국으로 분리되어 있어, 와인의 생산, 개발과 소비는 지역 토산물로 현지시장에 국한된 산업으로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와인의 기술적 개량과 저변확대로 연결되지 못한 결정적인 차이로 양국 와인산업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의 격차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은 당시 주요 도시국가였던 피에몬테공국의 바롤로(Barolo),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피렌체공화국이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BDM), 슈퍼토스카나(Super Toscana – Bolgheri), 베네치아 공국이 있는 베네토지방의 아마로네(Amarone)가 5대 고급와인 생산지(이니셜로 BBBSA로 줄여 부르기도 함)로 알려져 있으나, 프랑스의 BBC에 비해 고급와인의 브랜드파워와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와인의 시장가치는 포도재배기술, 양조기술의 개량, 와인 맛과 품질뿐 만이 아니고 역사적인 기원과 배경, 왕실의 선호도에 따른 스토리, 유명세의 확산, 브랜드화의 과정 등 다양한 시대 상황적인 영향을 받아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된다.

 

▲ 이태리 5대 와인(BBBSA) Piemonte(Barolo, Barbaresco) Toscana(BDM, Super) Veneto(Amarone)  © TIN뉴스

 

두번째로 왕권 리더십의 차이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중앙 집권적인 절대왕정은 명품패션과 와인산업의 발전을 주도적으로 견인했다는 것이다. 앙리4세와 루이 13, 14(태양왕) 15, 16세를 거치면서 극도의 사치와 향락의 왕실문화는 패션과 와인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왕정은 종지부를 찍는가 싶더니, 나폴레옹3세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고급소비문화는 세계화와 대중화로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1855년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10여년을 주기로 프랑스 와인과 고급패션의 우수성은 전 유럽과 미국 상류사회의 시장에 넓고 깊숙이 스며들게 된다.

 

반면에, 이탈리아는 1861년 피렌체를 수도로 통일된 이후에도 북부에서 시칠리아까지 전체의 영토에 걸쳐 왕권의 리더십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풍요로운 북부와 문화 예술의 중부, 역사 유적의 도시 로마, 큰 섬나라 시칠리아까지 왕권의 통합 리더십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 비해 먼저 단일 왕정국가를 구성하고, 강한 리더십이 작동했던 프랑스는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초까지 명품패션과 고급와인시장의 세계화에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1905년에 이르러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최초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면서 프랑스의 와인과 패션의 엑스포 마케팅의 성공전략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구찌(Gucci)가 가죽공방을 1913년에 오픈하면서 이태리산 고급패션브랜드의 서막을 열게 된다. 같은 해 프라다(Prada)는 밀라노 두오모 앞 아케이드에 고급가죽 매장을 오픈하였으며, 뒤이어 1927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가죽구두 브랜드로 대성공한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도 피렌체에서 패션브랜드로 재창업을 하게 된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이태리 3대 패션명품브랜드의 탄생이다.

 

▲ 이태리 3대 명품브랜드 구찌, 프라다, 페라가모  © TIN뉴스

 

이상으로 프랑스와 이태리 명품패션브랜드의 태동과 고급와인의 성장 배경을 마무리 하고, 다음호에서는 유명패션 브랜드와 명사들이 사랑한 와인 이야기, 그와 얽힌 에피소드를 모아보고자 한다.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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