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 TIN뉴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 이슬람제국 십자군원정으로 이어지는 중세중반까지의 동서 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침략과 정복의 과정에서 섬유소재와 와인 양조 기술과 포도품종은 이전되고 교환되어졌을 것이다.

 

인더스문명에서 발원한 면섬유와 이집트의 마섬유, 중앙아시아의 양모섬유, 중국의 실크섬유의 4대 천연섬유는 실크로드를 타고 주요한 교역대상이 되었고, 제조법을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와인 또한 로마시대에 까지 유럽전역에 걸쳐 포도를 재배시키고 와인 양조를 확대해 나아갔으나, 페르시아제국의 멸망과 함께 무슬림들이 아랍지역을 장악하게 되면서 와인의 동서간 이동이 불가능해졌다. 

 

음주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교리가 그 길을 막은 것이다. 역사란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마호메트가 금주를 교리로 삼지만 않았어도 유럽의 와인보다 러시아나 중국의 포도주가 더욱 번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산동성지방에 보르도 품종이 왕성히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4대 천연섬유의 명품산지는 발원지와 다른 유럽지역에서 번성해왔다. 린넨 섬유는 프랑스 프랑드르 지방의 것을 세계 최고로 꼽아주며, 양모원단도 영국과 이태리산이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최상의 면섬유는 이집트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크원단도 이태리를 거쳐야 명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와인과 포도나무, 양조법은 이슬람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섬유와 와인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역사학의 정의가 궁금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베른하임(1852~1942)은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역사학이란 인간이 사회적 존재 로서의 여러 활동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발전의 모든 사실을 심리적인 인과관계 및 그때 그때의 사회적 가치와 관련되는 인과관계에서 규명하고 서술하는 과학이다.” 생동감 있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시간과 공간을 연동하여 조사하고 서술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포도품종과 양조기술 그리고 와인소비의 전파와 발전은 전쟁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게 되고, 섬유 소재와 옷감형성 기술도 침략의 과정에서 이동하였다. 그리고 영토확장의 침략전쟁이 멈추는 시기에는 지역별 구역별로 형성된 왕조나 국가내에서 고유의 사회발전과 문화가 형성하게 된다.

 

중세를 구분하는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유럽은 서쪽의 프랑크왕국과 동쪽은 동로마(비잔틴)제국으로 분리되지만 프랑크왕국은 843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리 독립되고, 비잔틴제국 또한 이슬람제국의 위협에 시달리다 1453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근대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섬유패션과 와인은 사회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정제된 생활문화 양식이 형성되었고 비잔틴(동로마), 로마네스크(프랑크왕국), 고딕(프랑스/영국)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문화사를 남기게 된다. 

 

이는 비잔틴의 소피아성당, 로마네스크의 피사 대성당과 런던탑, 고딕양식의 퀼른 대성당, 노트르담성당과 같이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사조이기도 하지만, 생활문화(복식사) 미술사에서도 각각 시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당시의 카톨릭 종교와 밀접과 관계를 가지며 독자적으로 변화 발전하였으며, 와인 또한 수도원과 왕실 관리 하에 운영 발전되었다. 

 

800년에 신성로마 초대황제인 카롤루스 대제가 지금의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명품산지과 독일의 라인강변의 포도밭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이 현재까지 고급 와인 명품단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와인산지에 수도원 소속 와인 전담 수도사는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기술 개발에 매진하게 되며, 현재까지 최고가 명품와인인 부르고뉴지방의 로마네콩티는 클뤼니 수도원, 클로 드 부조는 시토 수도원에서 1200여년전 기원한 것이다. 

 

그리고 라인강변의 와인 명가 클로스터 에버바흐- 화이트와인도 당시 시토 수도원의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명품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가 읽혀진다. 문화사적 중심이 이슬람/비잔틴에서 로마네스크로 발전하는 서막의 시기에 복식문화도 북부의 게르만 그리스 로마의 복합된 형태로 새롭게 나타나게 된다.

 

▲ <좌측부터> 카롤루스 대제, 로마네콩티, 클로스터 에버바흐  © TIN뉴스

 

서유럽의 프랑스, 신성로마제국(독일, 이태리), 동유럽의 동로마제국 그리고 아라비아 지역을 통합한 이슬람제국으로 재편된 10세기를 거친 정치적 안정은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 명분으로 1096년 십자군 원정을 200여년간 이어가게 된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 문물 교류의 절정의 시기이지만, 와인은 이슬람의 교리를 넘어 동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생활문화속의 패션과 미술장식분야에서는 동방지역의 고급 면직물, 비단원단, 모피, 장신구 등이 유럽에 유입되면서 화려한 고딕양식의 문화사조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십자군원정으로 국력을 소진하고 있던 동로마, 신성로마제국과 달리 프랑스와 영국은 왕권강화와 사회, 문화 재정비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 시기에 프랑스 와인산업의 중대변수가 되는 2개의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학창시절 들어봄직한 “교황 아비뇽 유수(13 09~1377)”와 “영/프 백년전쟁(1337~1453)”이다. 각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 보시기를 바라며, 현재의 프랑스 와인산업 변화로서 사건 배경을 살펴 보고자 한다. 

 

아비뇽은 부르고뉴 지방의 남쪽 론에 위치한 외진 마을에 필리포4세가 갈등을 겪던 교황청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교황을 유배시키면서 왕권 강화를 꾀하고자 한다. 

 

당시 론 지역도 포도주를 생산하고는 있었으나, 새로 오신 교황을 보다 극진히 모시고자 하는 주변 수도원의 노력으로 포도나무 개량과 양조기술 개선에 매진하게 된다. 

 

그것이 현재까지 고급와인을 생산하는 아비뇽의 샤또네프디파프(Chat eauneuf-du-Pape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지명으로 굳어져 와인 마니아 사이에 CDP라는 약어로 명품와인 카테고리에 속하게 되었다. 와인 샵에서 “CDP와인 추천 좀 해주세요”라고 요구하면 샵마스터는 내심 긴장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교황이 로마를 떠나 아비뇽에 있는 사이에 국력이 팽창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116년의 전쟁이 시작된다. 왕위계승과 영지 소유권에 관한 갈등이 프랑스 전역에 걸쳐 국지전과 휴전을 반복했던 긴 시간이었다. 

 

전쟁의 시작은 프랑스북부 프랑드르 지방의 양모원단 생산의 중심지에 영국이 양모원료를 공급해왔던 경제주도권과 영지로 복속하고자 한 영국왕 에드워드3세의 도전이었으며, 전쟁의 마지막은 와인 산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옌(현재 보르도)지방의 프랑스 탈환으로 끝이 나게 된다. 

 

현재의 지도를 보면 보르도는 명백한 프랑스의 영토인 것이 분명한데, “왜 보르도 지방이 영국 땅이었을까?”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통일된 단독 왕국이 아니고 여러 공국과 협력, 연합, 경계하는 관계로 서로 혼인으로 얽혀있는 친인척 관계로 아키텐 공국(보르도 지역)의 공주가 영국왕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영국령(1154)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탈환하고자 치러진 백년전쟁의 마지막 카스티용 전투에서 영국군의 기옌 사령관 딸보장군을 상대로 프랑스군이 승리하면서 현재의 프랑스산 보르도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신화 히딩크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4등급 고급 와인 - 샤또 딸보가 적군 사령관 이름을 따왔다는 것에 “왜!”라는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끊임없는 외부 침략전쟁을 당해왔던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어느 시기와 상황에 비교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 다양한 샤또네프디빠쁘 와인  © TIN뉴스

 

▲ 다양한 보르도 명품와인  © TIN뉴스

 

▲ 보르도(백년전쟁)과 샤또 딸보 와인  © TIN뉴스

 

중세역사의 너무나 큰 사건인 백년전쟁이 섬유소재인 양모산업의 주도권 경쟁으로 시작해서 와인산지 쟁탈로 마무리 되었다는 기이한 우연을 확인하고 본 칼럼을 쓰게 된 동기에 깊은 위안을 가지게 된다. 

 

또한 백년전쟁이 끝나는 해에 오스만제국이 비잔티움(이스탄불)을 점령하면서 동로마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근대 유럽역사의 중심이 프랑스, 영국, 신성 로마(독일 이태리)로 옮겨가는 중대한 시작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39년후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이슬람으로 가로막인 동방으로의 내륙교류가 바다를 향한 대항해 시대의 신호탄이 되며 세계역사는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시각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근대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15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피렌체 공국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 문화예술 부흥의 시기에 섬유예술과 패션은 본격적인 변화 발전을 시작하게 된다.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 왕정은 강력한 왕권국가로 유럽의 중심국가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각 나라에서는 종교적 갈등과 분쟁이 격화되고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물리적인 충돌과 전쟁으로 까지 발발하게 된다. 

 

유럽의 중심국가들이 종교 갈등으로 내홍을 겪는 동안 이슬람세력을 완전 축출한 에스파냐(스페인)왕국 펠리페2세는 아메리카 정복에 나서면서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이 당시 신대륙으로 출항하는 배에는 장기항해 중 갈증과 피로를 달래 줄 목적으로 엄청난 양의 와인이 오크통에 담겨 실렸다(실제 취기보다는 식수대신 음용). 수개월동안 고온/다습한 선상위에서 와인이 상하지 않고 온전히 버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포트와인 스페인의 세리와인 등의 주정강화 와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알코올함량이 높으면 저장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필요가 발명을 낳았다”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서 백년전쟁으로 더 이상 프랑스와인 수입이 껄끄러웠던 영국은 에스파냐 와인 수입으로 급선회를 하게 되면서 재정수입은 더욱 좋아지게 된다. 늘어난 재정은 신대륙 진출(정복)을 가속화 할 수 있는 재원이 되었을 것이며, 그렇게 16세기 초 남아메리카의 마야와 잉카문명은 순식간에 에스파냐의 침략(실제 전염병 유포)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그럼 포트/세리와인이 없었다면, 마야/잉카 문명은 어찌 되었을까? 엉뚱한 호기심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 사고의 과정을 산업경제 발전과 별개로 볼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 다양한 포르투갈 마데이라 와인  © TIN뉴스

 

▲ 다양한 포르투갈 포트와인  © TIN뉴스

 

▲ 다양한 스페인 세리와인  © TIN뉴스

 

극심한 종교갈등의 혼돈의 시간을 보냈던 16세기, 프랑스의 앙리4세는 낭트칙령(1598)을 발효하고 부르봉 왕가의 개창으로 절대 왕권국가의 기틀을 만들어 왕족/귀족/성직자 중심의 소비문화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치와 향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바로크, 로코코 문화의 서막을 연 것이다. 

 

근/현대사 구분의 기준 시점으로 까지 보는 프랑스대혁명(1789)으로 부르봉 왕가가 무너지기 전까지 200여년은 현재의 섬유패션시장과 와인산업에서 명품 레전드 스토리의 원천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과 IT기술,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의 세계가 미래의 우리 생활을 지배할 거라는 확고한 예측이 난무하는 현재에도 “명품”(영어로는 Luxury Goods 정확한 번역은 사치품 이지만) 안보는 척해도 눈길이 가고, 무심한 척해도 마음이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름(브랜드)을 가진 최초의 명품은 와인이었고 아직도 그 명성이 유지되고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와인의 역사보다는 짧지만 명품패션도 와인과 같은 운명? 기다리는 시간만큼 재미를 숙성시켜 다음칼럼에 담고자 한다.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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