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환상

충남대학교 의류학과 김응태 교수

TIN뉴스 | 기사입력 2024/03/25 [17:33]

▲ 더 다르고, 더 저렴하며, 더 빠른 제품을 통해 더 많이 판매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패션업계의 기본 전략이다.  © TIN뉴스

 

최근 몇 년 동안 패션업계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퍼져나갔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제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고,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에코, 탄소 제로 등의 라벨을 붙인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또한 재활용, 재판매, 렌탈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ESG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노력과 대중의 높아진 관심은 패션산업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 같은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제품의 증가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패션산업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 환상 뒤편에 감춰져 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패션산업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향한 끊임없는 소비를 요구한다. 더 나은 것을 제공하기 보다는 더 다르고, 더 저렴하며, 더 빠른 제품을 통해 더 많이 판매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패션업계의 기본 전략이다.

 

지속 가능하다는 제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친환경’이라는 라벨을 단 제품이 얼마나 많이 소비되고 있는가? 지속 가능이라는 허울 아래 수 많은 제품이 과잉 생산되어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친환경 라벨이 붙은 제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환경 파괴가 이루어지며, 환경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의 유행은 과소비를 불러 왔을 뿐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환경 파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과잉 생산이다. 과잉 생산이 단순히 소비자 수요를 과대평가해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제조업체들은 과잉 생산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하다고 판단한다. 초과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재활용이나 맞춤 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 투자 비용보다 더 경제적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옷의 수명을 짧게 하고, 많은 제품이 사용되지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패션산업의 과잉 생산이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과 환경 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거대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패션 제품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고, 이 중 약 3/4이 매립지에 버려지거나 소각되고 있다.

 

▲ 유엔 유럽 경제위원회에 따르면, 매년 최대 85%의 섬유 제품이 버려지거나 소각되고 있다.  © TIN뉴스

 

유엔 유럽 경제위원회(UNECE)에 따르면, 매년 최대 85%의 섬유 제품이 버려지거나 소각되고, 2030년에는 연간 1억 3,400만 톤의 섬유가 버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패션업계가 ESG 경영을 강조하며 앞세우고 있는 재활용, 재판매, 렌탈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도 지속 가능한 패션산업으로의 전환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모델들은 지구의 부담을 줄이고,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제품의 수명을 연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이들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효과가 크게 과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 보호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재활용은 몇 가지 큰 장애물에 부딪혀 있다. 공급의 변동성, 재활용 기술의 한계, 제한된 인프라, 높은 비용, 그리고 재활용된 소재의 낮은 품질로 인해 전체 의류의 1% 미만만이 새 의류로 재활용되고 있다.

 

재판매 모델 역시 중고품 산업에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중고품 및 기부 매장의 매출이 훨씬 더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제품들이 재판매 업체에 의해 거부되는데 이는 패스트 패션의 낮은 품질과 가격이 원인이 되며, 이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2009년 설립된 의류 대여 전문 서비스 기업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     ©TIN뉴스

 

렌탈 모델은 공유 경제를 옷장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환경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렌탈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줄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새 의류 구매 대비 3%뿐이다. 더구나 이 모델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재활용, 재판매, 그리고 렌탈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은 패션산업의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패션산업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려면 이러한 모델들의 개선과 더불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현재의 접근 방식은 기후 변화, 탄소 제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만을 가지게 만들었다.

 

패션산업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추구한다면 단순히 지속 가능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서 생산과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패션업계와 소비자 모두가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은 소비 패턴을 재고하고, 불필요한 구매를 줄이며,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를 고려하는 것을 포함한다.

 

결론적으로,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환상을 벗어나서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고, 지속 가능성을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닌 모든 결정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인식 변화, 정책 입안자의 규제와 지원, 기업이 책임 있는 결정과 투자가 모두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 우로보로스. 1478년에 그려진 연금술관의 우로보로스 © TIN뉴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 우로보로스(Uroboros)는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으로 탄생과 죽음의 결합을 상징한다. 우로보로스에서 파생된 ‘우로보로스 효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그 문제의 근본 원인과 연결되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명목하에 제시되는 해결책들이 실제로는 환경에 추가적인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처럼 무한 순환의 고리에 갇힌 채 자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충남대학교 의류학과

김응태 교수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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