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할 수 있을 때 해라”

2021년 “섬유패션은 사양산업” 꼬리표를 떨쳐버리자

TIN뉴스 | 기사입력 2021/01/04 [16:52]

▲ “할 수 있을 때 해라” 얼핏 들으면 게으른 아랫사람에게 하는 윗사람의 충고처럼 들리지만 “해먹을 수 있을 때 해먹어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왜 일까?   © TIN뉴스


“할 수 있을 때 해라” 얼핏 들으면 게으른 아랫사람에게 하는 윗사람의 충고처럼 들리지만 “해먹을 수 있을 때 해먹어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왜 일까? 

 

“섬유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섬유패션산업 관련 행사의 축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 중에 하나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으로 분류됐다. 그 덕에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국내 섬유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국내 섬유산업도 1960년대 후반부터는 중화학공업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70-80년대 수출을 주도하며 경제발전의 선봉에도 섰지만 사양산업 꼬리표를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결국 극약처방으로 90년대 후반 ‘밀라노프로젝트’라는 국책사업에 5년간 68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 부었고 이후에도 매년 수백억의 예산이 섬유패션산업에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사양산업 꼬리표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특히 근래에는 4차 산업혁명에서 시작한 AI, 스마트팩토리, 빅데이터, 비대면, 가상현실, 소재‧부품‧장비, 리싸이클, 지속가능, 친환경, K-패션, K-방역까지 미래산업 육성이라는 듣기에 그럴싸한 수식어로 다양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섬유패션산업 종사자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정부정책 아래 잘 포장된 사업 예산들이 얼마나 제대로 쓰이고 또 실질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업계 종사자인 당사자들보다는 사업예산을 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을 위한 예산이라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특정업체에게 정부사업을 밀어주고 뒷돈(리베이트) 받는 일이 알게 모르게 비일비재했다. 한 예로 뒷돈을 받아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은 몇 배로 뛰었다며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는 사람을 사업 심사 평가위원으로 심어넣고 이후는 ‘답정너’ 각본대로 진행하면 끝난다. 물론 뒷돈은 현금으로 받아야 하고, 현금이 싫으면 고급 주점에서 대접받으면 되고, 보험으로 윗사람도 챙겨줘야 하는 등의 어느 정도의 노하우도 필요하다. 

 

그때 당시에는 걸리거나 잘린다 하더라도 한 몫 단단히 챙기면 실보다 득이 더 컸고 보험을 들어놔 설사 걸린다 하더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후배에게 “해먹을 수 있을 때 해먹어라”는 조언을 서슴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특히 공무원이나 주무부처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관기관이 선정한 업체를 주무부처가 손을 써 하루아침에 순위가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떨어진 업체가 난리를 쳐 감사가 나왔지만 어쩌다 걸렸냐며 오히려 두둔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그치기 일쑤였다. 

 

또 윗선에 뒷돈을 줬다며 양심 고백한 업체가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이를 고발한 직원이 오히려 사표를 써야하는 적반하장의 일도 있었다. 대학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정부 과제만 밀어주면 하루 술값으로 몇 백 만원은 우스웠다. 일종의 관행처럼 모든 예산들이 그들만의 세상으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졌다. 

 

다행인 건 과거에 비해 요즘 세대들은 이런 관행을 봤을 때의 행동이 거침없다는 점이다. SNS 같은 IT 기술의 발전도 한 목 했겠지만 비리에 대해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낸다. 최근에는 한 단체 임직원들이 오랜 기간 수십억을 빼돌린 것을 인턴 직원이 고발해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학연, 혈연, 지연 같은 낙하산 채용은 여전히 자행되고 업무 능력보다는 출세를 위해 아부 잘하는 사람이 승진이 빠른 게 안타깝지만 여전한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열심히 하고 싶어도 일 할 기분이 안 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 산업통상자원소위제1차 회의록 일부  © TIN뉴스

 

뒷돈이나 낙하산 같은 비리도 문제지만 정부의 정책 수립과 예산 배정 과정이 얼마나 제대로 진행되는지 과정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이왕 하는 김에 5억 더” 시장에서 콩나물 몇 백 원어치 더 달라고 떼쓰며 하는 말이 아니다. 국회 주무부처 예산 관련 회의록에 나오는 대화 내용인데 보고 있으면 기가 차다. 대충 몇 억, 몇 십억 더 줄 테니 알아서 쓰라는 식이다. 

 

예산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쓰이는지 보다는 액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있다. 그런 예산들이 제대로 쓰이고 있었다면 어쩌면 사양산업 꼬리표는 벌써 우리 곁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한 지방 단체의 조찬 간담회를 갔더니 컨벤션홀을 가득 채운 원형 테이블 위에 자리마다 한식이 근사하게 차려 있었다. 참석자가 예상보다 적다 보니 예산 낭비는 둘째 치고 음식물 쓰레기만 ㅁ 많이 남기게 되었다. 

 

▲ 조찬간담회 참석자가 예상보다 적다보니 음식물 쓰레기만 많이 남기게 되었다.  © TIN뉴스

 

또 섬유·패션업체를 입주시켜 수출 등을 지원하겠다며 1000억 원을 들여 지은 지방의 한 건물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1층임에도 대부분이 비어있어 한 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이런 현상들 모두 자기 돈이 아닌 눈 먼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최근 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비대면이 활성화되면서 섬유패션 관련 사업도 발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일부겠지만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지원받아 참가하던 해외 전시회가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3D 패션쇼에 가상 전시장, 디지털 패션쇼, 온라인 쇼룸, 웹비나, 유튜브 강연 등 대부분이 비대면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섬유패션관련 단체에서도 이와 관련해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예산은 남았고 어떻게든 써야한다는 이유로 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몇 억 씩 들인 가상 전시장은 1분만 보고 있어도 머리 아플 정도로 퀄리티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몇 명의 해외 바이어들이 들어왔을지, 또 수주를 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3D 가상 프로그램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수준의 패션쇼도 비대면 시대를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포장되어 많은 돈이 투입되고 있지만 취미삼아 3D 가상의류를 올리는 유튜버의 작품 퀄리티가 백배 더 나아 보였다.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명분으로 선발돼 예산을 지원받아 해외 유명 패션위크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디지털 패션쇼 유튜브의 실시간 시청자수는 10명도 채 안 됐다. 오랜 기간 진행하며 입버릇처럼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던 지원사업의 실체가 이제서야 드러난 것이다.

 

또 내 돈이 아니니 단순히 윗사람 보고용 발표자료 하나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도 큰 문제라 생각안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얘기가 연초부터 왠 근거 없는 넋두리냐고 생각하겠지만 일부는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또 들은 얘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섬유패션산업의 예산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쓰일 예산들에 대해서는 업계 종사자들 스스로 내 돈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사양산업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일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를 위해 주무부처는 예산을 많이 책정하는데 포커스를 두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도록 정책 수립과 예산 배정에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 지 관리 감독할 자신이 있는지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소재부품장비의 중요성은 당연한 것인데 일본 수출 규제로 뒤늦게 강조하는 모양새나 공적 마스크로 칭찬 받고 이제와 마스크가 남아도니 팔 때 없는지 수소문하는 게 주무부처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섬유패션산업은 스트림 구조와 업종의 다양성 때문일 수 있지만 타 산업에 비해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유독 많다. 그러다보니 정부사업을 따기 위해 서로 경쟁이 붙어 감정 상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기관이나 단체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정말 우리 섬유패션산업에 필요한 곳인지 또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정부의 나눠먹기식 묻지마 예산이 차라리 없었으면 자생력이라도 키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또 주변에 찾아보면 많은 단체와 기관의 존재 여부, 정부의 예산과 지원 없이 성공한 기업들이 오히려 더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최고급 호텔 뷔페를 불러 밥값에 몇 천만 원 씩 쓴다고 사양산업이라는 꼬리표가 가려지지 않는다. 또 광고로 기사를 입막음하는 시대에 언론도 광고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감시자라는 본연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 

 

끝으로 코로나 19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쥐처럼 곳간을 축내지 말고 소처럼 책임감을 갖고 정직하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드린다. 그런 점에서 검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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