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용관 회장의 섬유사랑

60년 한우물 판 섬유의 길, 공존공생 ‘윈윈경영’ 실천

TIN 뉴스 | 기사입력 2012/08/17 [20:12]
“섬유는 영원한 성장 동력이다”
확인·실천한 섬유산업 산증인
멸사봉공 노심초사 섬유 순애보
품질경영 연구개발 ‘혼신의 힘’
브랜드 마케팅은 벤치마킹 큰 사례


 
목직기 16대로 출발해 자본금 284억 원의 상장업체 ㈜성안을 모체로 1일 생산 200t 성안합섬(주), 성안염직(주), 서진화섬 등 3개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 화섬산업의 간판주자로 우뚝 서기까지…. 이는 60년 간 섬유 외길을 걸어 온 박용관 성안그룹 회장의 섬유인생사다. 그의 60년 섬유경영은 한마디로 “섬유는 영원한 성장 동력이다”는 실천과 확인의 연속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생전 한국섬유산업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섬유산업의 代父 박용관 성안그룹 회장이 지난 8월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한국섬유산업의 큰 원로가 또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3월17일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섬유산업사에 큰 획을 그은 원로들이시기에 큰 별을 떠나보내는 섬유인들의 마음 또한 착잡하기가 그지없다.

故 박용관 회장의 섬유 60년은 한 우물만 판 진정한 섬유인의 길이었다. 또 섬유단체장으로서 滅私奉公의 섬유경영관은 후학이 본받는 경영자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는 생전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섬유사랑 실천에 앞장섰다. 떠나는 날까지 한국 섬유산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재도약의 불씨를 지피는 데 勞心焦思의 심정으로 일관했다. 그가 섬유의 길을 선택하면서 내 뱉은 말은 이를 웅변해 준다. “6.25사변 잿더미 위에서 조국이 부흥하려면 공업이 흥하는 길밖에 없다”고.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던졌던 심정과도 다르지가 않다. 1953년의 일이다.

지금 고인이 일군 성안그룹은 원사부터 직물, 염색에 이르는 한국 화섬산업을 상징하는 수직계열화 체제를 자랑한다. 성안가족만도 700여명에 이른다. 그는 60∼70년대 섬유 불모지에 씨를 뿌리고 새싹을 키웠다. 80년대 들어 성안은 국내 대표 섬유기업 하나로 면모를 갖춰 나간다. 그리고 90년대 동국무역그룹, 갑을그룹과 함께 한국섬유산업을 대표하는 섬유그룹으로 위상을 다졌다. 1992년은 고인의 섬유인생에 큰 획을 그은 해다. 그해 수출의 날에 폴리에스터 직물 단일품목으로 수출 1억 불 탑과 은탑산업훈장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또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 20년 동안 부동의 국내 1위 폴리에스터 직물 수출업체라는 명성을 이어 왔다.

故 박 회장의 섬유경영의 골자는 협력과 공존공생의 실천이었다. 일찌감치 더불어 사는, 대표적인 윈윈 경영의 교과서였다. 한때 성안그룹의 협력업체는 200여 업체를 웃돌았다. 이는 성안이 폴리에스터 직물 수출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고인의 섬유의 길은 품질경영과 연구개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속적인 성장기반은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달렸다”는 지론이 그것이다. 건실한 노사문화 정착 역시 성안 발전의 견인차였다. 지금 성안은 노동조합 결성 이후 단 한건의 노사분규가 없는 전통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모두 그가 섬유산업 발전의 선봉장으로 칭하는 인프라가 됐다.

고인은 또 수출보국의 큰 실천자였다. 그의 섬유의 길은 “수출만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데 맥이 닿아 있다. 제품 개발과 생산 포커스 역시 수출과 뗄 레야 뗄 수가 없다. 고인만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이었다. 이를 뒷받침 하는 지표가 있다. 성안의 1976년 수출은 74만 달러였으나, 1980년도 수출은 2580만 달러에 달했다. 4년 만에 무려 3386%라는 경이적인 신장률을 쓴 것이다. 여기에다 브랜드 마케팅 실천은 성안 성장의 큰 기틀 역할을 했다. 세계시장 다변화를 겨냥, 경영·영업·생산전략을 소롯트 다품종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이 브랜드 마케팅은 국내 섬유업체들이 벤치마킹의 큰 사례로 손꼽을 정도다. 그 브랜드가 바로 ‘STARTEX’다.

故 박용관 회장의 섬유사랑은  다름아니다. 남다른 애착과 업계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또 묵묵히 한길을 걸으면서 섬유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섬유산업 동력을 키우는 데 한 평생을 보냈다. 지금 고인이 밟아 온 섬유인생사는 후학들의 큰 지침서로 삼을만 하다. 작금의 어려운 섬유환경을 헤쳐 나가는 길라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전상열
편집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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