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0 - 대농그룹 박용학(朴龍學)

“장사하는 비결은 사람을 믿는 일”

TIN뉴스 | 기사입력 2020/02/04 [10:12]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대농그룹 창업주

양백(亮百) 박용학(朴龍學)

1915~2014

  

▲ 양백(亮百) 박용학(朴龍學) 

“장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쓰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다. 신용을 지켜야 한다든가, 부지런해야 한다든가, 여행을 자주해 세계경제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하는 것 등 모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은 다음에 필요하다.”

 

국내 면방직업계 선도기업으로 섬유산업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박용학 대농그룹 창업주는 1915년 원산과 금강산의 중간쯤에 자리한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다.

 

1935년 원산상고 졸업 후 섬유회사에 취직해 경험을 쌓고 신의주에서 삼창산업이라는 자그마한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대동아전쟁’이 터지면서 면직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2차 대전 말기 일본에 의해 사업을 접고 고향인 통천에서 사설 우체국을 운영하다 1945년 10월 서울 체신국에 빚 8만원을 받으러 왔다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해 12월 가족들이 월남하면서 가져온 20만원으로 자전거 도매상(적산)을 사들이고 경성방직에서 만들어 내던 광목을 파는 광목도매상을 차렸다. 꽤 큰돈을 모은 후 대한계기제작소와 오양실업을 설립하며 숙원사업이던 무역업에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시작한다.

 

1953년 6.25 전쟁으로 피난한 부산에서 대한비료를 설립하여 비료사업(수입)에 진출하고, 서울수복 후 1955년 대농그룹의 전신인 무역회사 대한농산(大韓農産)을 창립했다. 1962년 삼양제분을 설립하여 제분업과 창고업 등에도 진출했다.

 

평소 “내수보다 수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사업 확장에 들어가 1967년 고려수산과 대한선박을 설립, 수산업과 해운업에 진출하고 1968년에는 한일제분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제분업에 진출한다.

 

‘인간 중심’ ‘신용과 믿음’ 경영철학으로

‘재계 마당발’에서 ‘수출산업 견인차’까지

 

특히 “경쟁력 있는 수출 품목은 방직물”이란 판단 아래 1968년 쌍용그룹으로부터 사들인 금성방직과 태평방직, 1969년에는 합동방직을 인수하면서 면방업에 진출, 국내 면방직 업계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다.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하면서 섬유업 중심이었던 사업구조를 유통업으로 확대하며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 대농그룹의 근간을 이룩했다. 또 1972년에 관악 골프장을 인수하고 1973년에는 대한농산·금성방직·태평방직·한일제분을 들을 통합하여 그룹명을 ㈜대농으로 바꾸고 대농유화를 설립하여 사업 다각화 기반을 다졌다.

 

1974년 내외방적과 삼호방직 대구공장을 인수, 총 26만5천추를 확보하면서 국내 방직시설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한편, 대농그룹은 1973년의 1차 석유파동과 고가의 원면 구매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막대한 손실을 입어 그룹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는다. 하지만 부동산 및 계열사 매각 등 사업 정상화에 힘을 쏟은 결과 법정관리 10여 년 만에 경영위기에서 벗어난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탄탄대로를 달리던 대농그룹은 사업다각화에 나서 멜란꼴, 텐셀 등 특화상품과 염색 및 의류 등 다운스트림 분야에 진출하는 등 사업의 고부가가치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여 중국 청도에 면사, 면직 및 봉제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우즈베키스탄의 공장에도 지분에 참여 하는 등 세계 여러 지역에 진출했다.

 

이외에도 내외경제와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하면서 언론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고, 1989년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1973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과 한미경제인협회 부회장을 지낸 뒤 1980년 섬유산업연합회장에 취임하는가 하면, 1981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에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무역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1991년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21대 무협 회장직에 취임하기도 했다.

 

1994년까지 무협 회장을 지낸 뒤에도 무협 명예회장과 한일경제협회 명예회장직을 계속 수행했다. 재계의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던 그는 2014년 8월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특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는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월남해 기업을 일군 동갑내기 친구로 사이가 각별했다.

 

대농그룹은 1968년 섬유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1972년과 1988년에 수출업계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두 차례 수상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섬유패션산업 발전과 함께하는 경제전문 언론 TIN뉴스 구독신청 >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TIN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포토뉴스
까스텔바작, ‘봄 필드’ 스타일 공개
1/5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