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8 - SK그룹 최종건(崔鍾建)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다”

TIN뉴스 | 기사입력 2020/01/06 [21:31]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SK그룹 창업주

담연(湛然) 최종건(崔鍾建)

(1926~1973)

 

▲ 담연(湛然) 최종건(崔鍾建)  

“기업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자금이고

그 자금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진정한 자산은 사람이다.”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은 1926년 1월 30일 경기도 수원 평동에서 부친 최학배와 모친 이동대의 4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수원신풍공립심상소학교와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선경직물주식회사 수원공장 공무부 견습기사로 취직했다.

 

기계과를 졸업한 특기를 살려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등 건장한 체격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종업원 100명을 통솔하는 생산조장으로 발탁됐다.

 

8·15광복을 맞이하여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선경치안대’를 조직하여 대장으로 활약하며 회사를 지키는 한편, 선경직물주식회사 한국인 소주주들과 협의, 공장가동에 힘썼다.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선경직물공장을 정부로부터 사들여, 공장을 직접 새로 지은 뒤 낡은 직기 4대와 함께 선경직물주식회사를 재건하였으며, 이후 불과 5년 만에 보유직기 1,000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회사로 키워냈다.

 

1950년대에 들어 계속해서 증설을 추진했고, 1950년대 후반에는 한국 최초로 합성직물인 나일론, 데드론을 생산한 데 이어 1960년대 들어서는 크레폰·앙고라·깔깔이·스카이론 등 각종 직물을 개발하여 국민의류생활 개선에 기여하였다.

 

특히 1962년에는 한국 직물 사상 최초로 레이온 태피터를 홍콩에 수출하여 우리나라 섬유산업 발전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1966년 12월 SK그룹(구 선경그룹)의 모태기업인 선경화섬주식회사를 창립하고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1969년 9월에는 선경합섬주식회사를 설립, 아세테이트원사공장과 폴리에스테르원사공장을 건설하면서 오늘날 국내 유수 재벌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섬유산업의 계열화를 위하여 석유산업으로 사업을 넓혀 1973년 5월 선경유화주식회사를, 같은 해 7월에는 선경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사업영역을 무역, 정유화학 등으로 넓히며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지만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은 사람이 석유보다 가치 있는 자원이라며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썼다. © TIN뉴스

 

최종건은 “사업으로 나라를 위한다”라는 뜻의 ‘사업보국’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쓴 기업가로 평가 받는다. 그의 아들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아버지는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공장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온 뒤 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에 나가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사람이 석유보다 가치 있는 자원이라며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쓰고 직원복지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1980년대 MBC장학퀴즈 상금 전액을 지원하며 ‘인재제일주의’ 정신을 실천하는데도 앞장섰다.

 

한국의 5대 대기업(삼성, LG, 현대, SK, 롯데) 창업자 가운데 유일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실용성과 효율성을 우선시 해 창업 이후 자금조달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품질혁신과 신제품개발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제품제일주의’ 정신을 추구한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형제들과 우애가 깊기로 유명해 최종건이 선경직물공장을 인수할 당시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던 동생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은 형을 위해 유학을 포기했으며, 최종건 또한 동생의 양보를 잊지 않다가 선경직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동생의 유학을 지원했다.

 

최종건은 폐암을 진단한 의사에게 “나는 이미 늦었지만 나와 같은 병에 걸려 고통 받는 다른 환자를 위해 써주라”라는 서신과 함께 해외에서 구한 최신 의료장비를 기증했다.

 

1955년, 1962년 상공부장관상을, 1963년 민간기업 대표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65년과 1969년, 1970년 국무총리 표창을, 1971년 대통령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

 

한편, 1956년 선경직물을 법인으로 세울 당시 회사 이름인 ‘선경’이 ‘선경직물공장’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지만 당시 최종건은 “우리는 조선(鮮)에서 크게(京) 빛난다는 뜻의 선경”이라며 ‘선경’이라는 이름을 고집했고 결국 그 이름은 1998년까지 선경그룹의 이름으로 남았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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