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웃도어 브랜드이자 사회적 기업 파타고니아(Patagonia) 제품   © TIN뉴스

 

주변 사람들에게 “만약 파타고니아의 라벨이 가슴에 붙어있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파타고니아를 살까?”라고 물으면 모두 “아니!”라고 대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유명 브랜드 제품을 좋아한다. 그래서 좀 비싼 브랜드는 제품 어딘가에 브랜드명을 붙여놓았다. 사람들은 브랜드명이 여기저기 새겨진 옷을 입고 그 브랜드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브랜드는 원래 제품의 용도와 수준을 보증하는 생산자 또는 공장의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브랜드명이 갖고 있는 제품 히스토리와 만들어진 이유 등에는 관심이 없고 제품의 ‘브랜드명’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성과나, 많은 비용을 들여서 얻은 가치 있는 물건들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패션 제품은 사회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SNS에 올릴 사진에 자신의 부와 명예, 능력을 드러내기에 좋은 아이템이다.

 

이때 드러나는 브랜드명은 제품의 가치이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증하는 증명서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후진국에서 막 벗어난 나라에서는 선진국의 좋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특권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소유 물건의 가치가 소유자의 가치와 같지는 않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존엄하고 개개인의 가치는 세상과 동일하다. 패션 제품도 사람이 만든 도구다. 도구는 사람의 문화적인 생활을 위해 쓰임이 있지만 소유자의 정체성이나 명예, 능력과는 상관없다. 도구를 만든 사람이나 가문, 공장의 이름이 사용하는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런데 현재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며, 문화강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거보다도 더 심하게 선진국 브랜드의 ‘브랜드명’에 집착하는 것은 왜일까?

 

특히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코닥’ 같이 패션 전문 브랜드가 아닌 단체나 특정 제품명을 커다랗게 붙이고 다니는 것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코닥’이 좋은 회사 이름이긴 하지만 그 회사 직원도 아닌데 유니폼처럼 회사명이 커다랗게 보이는 옷을 입는 이유는 뭘까?

 

만약 같은 단체명의 브랜드를 입은 사람을 길에서 마주친다면 쑥스러울까? 아니면 동료 직원의 친근함이라도 느낄까? 도대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브랜드명에 집착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 하남 스타필드 내 아웃도어 의류 매장 전경  © TIN뉴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고, 완벽을 추구하지만, 기준을 남에게 두고 있어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최고의 스펙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다.

 

자신을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상황이 바뀔 때마다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는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체적이지 못하니까 특정한 대상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브랜드 정체성을 자신에게 투사하여 정체성을 세우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집단주의라고 정의하는 사회학자들도 있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 좋아한다.

 

종교생활도 종교 자체보다는 관계를 위해서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적으로 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개성이 뚜렷하고 기존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는 ‘옳다’는 정의의 의미보다는 ‘네가 되면 나도 되고, 내가 안되면 너도 안된다’는 평등의 의미가 크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개성과 상관없이 같은 조건, 같은 수준에서 같은 규칙을 지키며 소속된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도 소속된 단체에서 얻으려고 한다.

 

회사 명찰을 퇴근한 후에도 걸고 다니거나, 중고등학생까지 학교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집단 성향이 나쁘기만 한건 아니다. 외부로부터 공격받으면 똘똘 뭉쳐 대항하기도 한다. 월드컵도 임진왜란처럼…… 하지만 반대로 자기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특별한 이유 없이 공격하고 폄하하고 차별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체성 세우기 위해 소속감을 원하고,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소속집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집단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어야 한다.

 

패션은 소속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시그니처다. 의복, 장식구, 헤어스타일까지 패션 스타일은 소속된 집단의 일원으로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가 자기가 소속되고 싶은 집단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특정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수준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매욕을 느낀다.

 

▲ 다양한 패션 브랜드 로고  © TIN뉴스

 

요즘 2030세대의 명품소비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 브랜드의 이미지라면 내가 추구하는 수준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형편에 맞지 않게 무리해서 명품을 구매한다. 결국 명품이 나의 정체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결과다.

 

옷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구하기 어려운 비싼 원단, 고급 기술자가 만든 옷이라고 강조만 해도 충분이 제품의 가치가 증명되었다. 지금은 무슨 재료로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브랜드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제품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유명한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이 가장 명확하다.

 

사회가 발전하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도 변화한다. 처음에는 새 옷, 그다음 단계는 브랜드 옷, 옷이 풍족해지면 그다음은 큰 차, 그다음은 큰 집, 정원이 있는 멋진 집을 소유하면 그다음은 취미생활이다.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수준 높은 취미생활을 즐기길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사회활동을 하거나 기관에 기부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정말 멋진 집보다는 집값이 오를 것을 우선 따지는 것으로 봐서 아직은 ‘큰 차’를 사는 수준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진짜 수준 있는 문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정체성이 확고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 비싼 집에서 비싼 물건을 쌓아 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가 견고한 정체성을 갖고 소신에 따라 더불어 살아가는 높은 문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는 인간이 저지른 환경에 대한 반성과 변화도 느껴진다. 아직 ‘큰 차’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잘 사는 사람의 정체성도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몇 달치 급여를 모아 비싼 물건을 사면서, 꼭두새벽부터 줄 서고 대접도 못 받고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대신 확고한 정체성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 가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심상보

피리엔콤마 대표

씨씨컴퍼니 상무이사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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