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변(宿便), 머무르는 변이라는 뜻입니다. 장 속에 오래 머무르며 독소를 뿜어내는 건강에 좋지 않은 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스키나 와인은 오크통 속에 오래 숙성되어 맛과 향이 좋아집니다만, 변은 장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고 하여 결코 몸에 좋진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숙변은 장의 주름에 끼인 채 달라붙어 빠지지 않는 변이고 이것 때문에 독소가 생겨 피부도 안 좋아지고, 당뇨와 고혈압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만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들께 장을 천 번 이상 열어 본 외과전문의로서 한 번 질문하고 싶습니다. “혹시 숙변 보신 적 있으셔요?”

 

사람의 장 속에 숙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소장과 대장에서 점액질이라고 불리는 끈적끈적한 물질이 분비됩니다. 장은 음식물이 지나는 통로입니다. 점액질이 분비되지 않으면 음식물과 마찰되어 장벽은 심각한 손상을 받고 너덜너덜해지겠으나, 다행히 우리 몸은 점액질을 장벽에서 계속 분비합니다.

 

숙변 뿐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가 장 주름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상황은 없습니다. 우리 몸의 대장 속에는 숙변이 아닌 그냥 변이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본인이 불편하지 않다면 주 3회부터 하루 3번까지의 배변 횟수는 정상이라고 봅니다. 황금색 바나나 같은 변을 반드시 매일 아침마다 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숙변이 몸에 좋지 않다는 내용이 참 많이 나와 있습니다. 숙변을 제거했을 때 우리 몸이 얼마나 건강해지는지에 관한 내용도 넘쳐납니다. 숙변 때문에 건강도 나빠지고 피곤해진다며 소위 말하는 “공포마케팅”을 일삼는 이들은 숙변이 독소를 뿜어낸다고 주장합니다.

 

숙변으로 인해 면역력도 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독소 마케팅”, “면역 마케팅” 이 2가지는 피곤한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아주 설득력 있는 스토리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은 대부분 정상입니다. 내 몸에 독소가 많다면 혈압이 떨어지고 열이 나는 등 입원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몸속에 독소가 있다고 해도 무시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피곤한 증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입니다. 피곤한 것은 내 몸이 내 생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뿐, 내 몸 속에 제거해야 할 독소가 많거나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 몸 속에 숙변이 많아서 피곤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우나 화장실에 앉는 순간 광고 사진 하나가 문 앞에 걸려 있습니다. 숙변 사진입니다. 사람의 장인지 동물의 장인지 알 수 없는 장을 사진 찍어 놓고 장에서 방금 꺼낸 것 같은 시커먼 숙변 덩어리를 찍어 놓았습니다. 제가 봐도 끔찍합니다. 끔찍한 사진을 걸어 놓고 숙변 제거를 위한 제품을 판매합니다.

 

대장 속의 변이 숙변이라고 생각하여 굳이 제거하고 싶다면 대장 내시경을 할 때 사용하는 설사약을 2리터 마시면 대장 속의 변은 1g도 남지 않고 빠져나와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만, 숙변을 제거하기 위한 장세척은 어떤 형태로든 검사나 수술의 목적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는 처치입니다. 2일 후면 원래대로 변이 차 있는 대장의 모습으로 돌아올 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숙변은 없습니다. 그냥 변이 있을 뿐입니다. 불필요한 곳에 돈과 시간을 쓸 이유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변이 있어서 피곤하다고 믿는 분들은 숙변 제거를 위해 힘쓰고 사시면 됩니다.

 

▲   배상준 외과전문의  ©TIN 뉴스

 

 

 

  

배상준  

대아의료재단 한도병원  

 

외과 전문의  

bestsurg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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