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건강이 몸에 스며드는 느낌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소고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습니다. 마트에 가서 계란을 두 판씩 사서 냉장고에 쟁여 놓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맛 집을 찾아다니지만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음식을 맛으로 먹지 못하고 끼니를 때우고 살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엔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이 있었습니다. 못 먹고 살던 시절이므로 잘 먹기만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래 동화에 자주 출연하는 시름시름 앓던 노모의 의학적 진단은 영양 결핍입니다. 단백질, 지방은커녕 탄수화물로 겨우 끼니를 때우던 노모가 결국 앓아눕습니다.

 

효심 깊은 아들이 잉어나 가물치 한 마리를 구합니다. 흰 띠를 머리에 싸매고 앓아누운 어머니를 억지로 앉게 하여 잉어를 푹 고와 먹입니다. 그녀는 금방 원기를 회복합니다. 잉어나 가물치의 특별한 효능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해서 기력을 회복한 것입니다. 복날에 개고기를 먹었던 이유는 개고기의 특별한 효능 때문이 아니라 소고기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었습니다. 굶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밥, 빵, 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히려 영양 과잉으로 인한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음식점에 가면 음식의 효능에 대해 깨알같이 적어놓은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코다리찜을 먹으러 가면 코다리의 효능이, 다슬기 해장국집에 가면 다슬기의 효능이 적혀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는 기본이고 각종 성인병과 암을 예방한다는 내용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코다리와 다슬기는 단백질일 뿐입니다. 단백질을 먹어서 얻는 효과 이외에 다른 특별한 효능이 있는 식재료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음식점 사장님이 부도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그 음식의 효능을 강조한 판넬 액자를 보면 마케팅이라고 기분 좋게 이해하면 됩니다.

 

음식의 효능은 좋은 마케팅일 뿐입니다. 어떤 음식에 건강에 좋은 성분이 있다고 해도 효과를 보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을 먹어야 합니다. 살이 쪄 오히려 건강을 잃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보약이라는 밥도 많이 먹으면 건강을 잃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밥을 언급한 김에 쌀 이야기를 짚고 넘어갑니다. 현미가 백미보다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현미의 바깥층에 미네랄과 비타민, 특히 비타민 B1이 많아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타민 B1 부족으로 인한 각기병이 드문 세상입니다.

 

굳이 쌀로 비타민 B1을 섭취하지 않아도 다른 음식을 통해 비타민 B1을 충분히 섭취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현미의 깔깔한 식감이 좋으면 현미를, 쫀득한 백미의 느낌이 좋으면 백미를 먹으면 됩니다.

 

음식은 맛과 향, 그리고 식감으로 먹으면 됩니다. 건강을 위해 억지로 싫어하는 음식을 먹고 살 이유가 없습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굳이 따지자면 마트에서 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 생선, 계란 등의 단백질이 많은 식재료입니다.

 

2018년에 ‘약식동원’을 강조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20년 전 생각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음식은 맛으로 먹으면 충분하고 혹시 지병이 생기면 약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다음 칼럼 주제는 “지병은 약으로”입니다.

 

▲   배상준 외과전문의  ©TIN 뉴스

 

 

 

  

배상준  

대아의료재단 한도병원  

 

외과 전문의  

bestsurg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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