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의 컨셔스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와 만나 패션과 현대미술, 개인의 기억과 공간을 연결한 특별한 협업을 선보였다.
래코드는 서울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서도호 작가와 협업한 ‘움직이는 스튜디오(The Moving Studio)’ 팝업 전시를 열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워크웨어로 재해석한 캡슐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번 협업은 단순히 서도호의 작품 이미지를 의류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공간과 기억, 개인의 역사’를 패션이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도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했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뉴욕 휘트니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 서펜타인갤러리, 베니스비엔날레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국제 미술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자신이 거주했던 서울의 한옥과 뉴욕의 아파트 등 실제 건축공간을 반투명한 섬유로 재현한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이 머물렀던 집과 공간을 이동 가능한 섬유 구조물로 바꾸면서 장소와 이동,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래코드는 이러한 서도호의 작품 세계에서 출발해 이번 컬렉션의 핵심 개념을 ‘건축으로서의 의복’과 ‘기억을 담는 포켓’으로 설정했다. 사람이 장소를 옮겨 다니듯 옷 역시 몸과 함께 이동하고, 그 안에 개인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다는 생각이다.
협업을 구체화한 또 하나의 출발점은 래코드의 개인 맞춤형 리폼 서비스 ‘MOL(Memory of Love)’ 프로젝트였다.
MOL은 고객의 추억이 담긴 옷을 상담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서비스다. 서도호 작가는 가족들이 입었던 옷을 래코드에 맡겼고, 래코드는 작가의 어머니가 사준 재킷을 바탕으로 딸들의 추억이 담긴 옷가지를 활용해 내부에 포켓을 구성했다.
서로 다른 세대의 옷과 기억을 하나의 의복 안에 중첩시킨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MOL 작업물은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열리고 있는 서도호 개인전에도 실제 전시됐다.
‘기억을 담는 포켓’…작품과 재고 원단이 옷으로
‘The Moving Studio’ 컬렉션은 총 14종의 워크웨어 스타일로 구성됐다. 워크재킷과 팬츠, 포켓 티셔츠, 롱슬리브 티셔츠, 숄더백 등에 서도호의 섬유 작업과 래코드의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결합했다.
워크웨어를 선택한 이유 역시 이번 협업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시간이 지나고 착용할수록 사용자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워크웨어의 특성을 통해 창작자가 장소를 이동하더라도 자신의 도구와 기억을 지닌 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움직이는 작업실’을 표현했다.
컬렉션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디자인 요소는 ‘Memory Pocket’이다. 서도호 작품 특유의 섬유 원단과 정교한 자수에 래코드가 보유한 재고 원단을 활용한 포켓을 결합해 기억을 보관하고 이동시키는 작은 공간으로 표현했다.
메인 아이템인 ‘Moving Studio Work Jacket’은 이러한 개념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빈티지한 감성의 워크재킷이지만 뒤집으면 서도호의 ‘Myselves’ 드로잉을 자수로 새긴 안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재킷 내부에는 서도호의 실제 작품에 사용된 원단과 래코드의 재고 원단으로 제작한 포켓을 배치했다. 작품을 단순히 프린트하거나 그래픽으로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구성했던 소재 자체를 의복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Airbag Pocket Work Jacket’과 ‘Airbag Pocket Work Pants’에는 에어백 원단을 활용했다. 탄탄한 면 소재에 에어백 소재의 포켓과 디테일을 결합했으며, 워크재킷에는 형광색 원단을 레이어드한 포켓을 더해 서도호 특유의 작업 방식을 패션으로 표현했다.
‘Memory Pocket T-Shirt’에는 서도호의 ‘Nest/s’에 사용된 원단과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래코드의 재고 원단을 함께 적용했다.
‘Memory Pocket Long Sleeve Tee’는 래코드의 시그니처인 ‘인사이드 아웃 포켓’을 겹쳐 주머니 속에 또 다른 주머니가 들어가는 구조를 구현했다. 포켓을 단순한 수납공간이 아닌 개인의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로 확장한 디자인이다.
‘Multi Pocket Long Sleeve Tee’와 오더 메이드 방식으로 제작되는 ‘Multi Pocket Limited T-shirt’는 서도호의 ‘Time Pockets’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양한 재고 원단과 ‘Nest/s’에 실제 사용된 원단으로 서로 다른 형태와 색상의 포켓을 겹쳐 시간과 기억이 축적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리미티드 티셔츠는 사이즈에 따라 포켓의 개수와 배치도 달라진다.
‘Wrinkled Inside-Out Shoulder Bag’은 내구성이 높은 에어백 원단에 ‘Myselves’ 드로잉 자수와 노방 원단으로 만든 인사이드 아웃 포켓을 적용했다. 몸에 지니고 이동하는 가방 자체를 하나의 ‘이동하는 작은 공간’으로 시각화했다.
15인의 아티스트가 완성한 ‘움직이는 작업실’
이번 프로젝트는 캡슐 컬렉션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한국 아티스트들의 실제 창작 현장으로도 확장됐다.
래코드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15인의 아티스트와 함께 특별한 룩북 캠페인을 진행했다. 참여 아티스트들이 ‘The Moving Studio’ 컬렉션을 직접 착용하고 자신의 작업 공간에서 사용하는 도구와 개인적인 기억, 창작의 순간을 함께 담았다.
일반적인 패션 화보처럼 완성된 옷과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보다 ‘옷은 하나의 이동하는 건축이자 작업실’이라는 이번 컬렉션의 메시지를 실제 창작자들의 모습으로 풀어낸 것이다.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의 팝업 역시 컬렉션을 단순히 진열하는 판매 공간을 넘어 패션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연결하는 전시 형태로 꾸며졌다. 방문객들은 현장에서 컬렉션을 직접 살펴보고 착용해보며 소재와 포켓, 자수 등 사진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세부적인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재킷을 뒤집었을 때 드러나는 ‘Myselves’ 자수와 작품 원단으로 제작한 내부 포켓 등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이번 협업의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옷의 안과 밖을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작가와 착용자의 기억을 차곡차곡 담아내도록 한 것이다.
래코드와 서도호의 인연은 2024년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개인전 당시 래코드가 업사이클링 굿즈를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MOL 프로젝트를 거쳐 올해 ‘The Moving Studio’ 캡슐 컬렉션으로 협업의 범위를 확장했다.
래코드 관계자는 “이번 협업은 단순한 컬렉션 출시를 넘어 개인의 삶과 기억을 입고 이동하는 매개체로서 패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라며 “입는 입체 공간으로 만나는 패션과 예술의 만남이 많은 분들에게 색다른 영감과 울림을 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The Moving Studio’ 팝업 전시는 오는 13일까지 래코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이어진다. 이번 협업은 버려질 소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온 래코드의 업사이클링을 넘어, 옷에 개인의 기억과 시간, 창작의 흔적까지 담아내며 지속가능 패션의 의미를 ‘오래 입고 기억하는 옷’으로 확장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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