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바이올린이 작품의 중심을 이끌었다.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가니니 역을 맡은 KoN(콘·이일근)의 바이올린 연주다.
KoN은 ‘Korean on the Note(음표 위의 한국인)’라는 의미로, 바이올리니스트를 기반으로 뮤지컬 배우와 싱어송라이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대에서는 연기와 노래, 바이올린 연주를 함께 소화한다. 특히 주요 장면마다 파가니니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을 단순한 소품이나 배경음악이 아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한다.
공연의 정점은 2막 후반부에 펼쳐지는 약 7~8분간의 바이올린 독주다. 대사와 노래가 멈춘 가운데 고난도 연주가 이어지면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KoN에게 집중된다.
전문 바이올리니스트의 실제 연주가 뮤지컬의 클라이맥스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파가니니’라는 작품의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가니니를 연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KoN이 파가니니 역에서 강점을 보이는 데는 그의 음악적 배경이 자리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비올라와 성악을 부전공한 그는 뮤지컬 ‘모비딕’, ‘페임’, ‘오필리어’ 등에 출연하며 연주와 노래, 연기를 함께 소화하는 액터 뮤지션으로 활동해왔다.
연주 영역도 클래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집시와 재즈, 탱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적 경험을 쌓았다. 이는 파가니니의 변화무쌍한 음악적 특성을 표현하는 데 강점으로 작용한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뛰어난 기교뿐 아니라 즉흥적인 연주와 독특한 표현으로 당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음악가다. 바이올린으로 다양한 소리를 표현하는 등 기존 연주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oN 역시 극 중 바이올린으로 동물의 소리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공연마다 변화를 주고, 2막 후반부 연주에서도 즉흥적인 요소를 더한다.
‘카프리스 24번(Caprice No.24)’과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 ‘마녀의 춤(Le Streghe)’ 등 파가니니의 주요 작품도 직접 연주한다.
고난도 곡을 연주하면서 노래와 연기, 무대 동선까지 함께 소화한다는 점에서 KoN은 이 작품이 내세우는 ‘액터 뮤지션(Actor-Musician)’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파가니니는 ‘악마’라 불렸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교와 독특한 연주법으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너무 뛰어난 실력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재능’이라는 소문까지 따라다녔다.
연주 도중 바이올린 현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남은 현만으로 연주를 이어갔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즉흥연주에도 뛰어났으며 자신의 기교를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쇼맨십까지 갖춘 연주자였다.
파가니니의 영향력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프란츠 리스트와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이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뛰어난 연주 기교를 앞세운 ‘비르투오소(Virtuoso)’ 시대를 연 대표적인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생전 따라다녔던 ‘악마’라는 소문은 죽은 뒤에도 이어졌다. 1840년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난 뒤 교회는 그의 시신을 공동묘지에 안장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아들 아킬레는 아버지의 명예와 안식을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야 했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이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다. 아킬레가 아버지에게 씌워진 오명을 벗기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중심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파가니니의 삶과 음악, 그를 둘러싼 욕망과 편견을 보여준다.
음악으로 되살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파가니니의 천재성을 대사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바이올린 연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공연에는 7인조 라이브 밴드가 함께한다. 파가니니의 클래식 선율에 기타와 드럼, 건반 등이 더해지면서 일부 곡은 록의 강한 리듬과 결합한다.
KoN도 일반적인 클래식 독주회처럼 한자리에 서서 연주하지 않는다. 무대를 이동하고 다른 배우들과 호흡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연주가 음악인 동시에 연기가 되는 셈이다.
특히 2막 후반부 독주에서는 다른 요소를 최소화하고 바이올린 자체에 집중하도록 한 무대 구성이 효과를 발휘한다. 파가니니가 왜 당대 사람들에게 특별한 연주자로 받아들여졌는지를 관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8년간 한 역할…100회를 넘어선 파가니니
KoN과 뮤지컬 ‘파가니니’의 인연은 2018년 시작됐다. 트라이아웃부터 파가니니 역을 맡았고 2019년 초연에서는 50회 전 공연을 원캐스트로 소화했다. 2024년 재연을 거쳐 올해 세 번째 시즌에도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본공연 기준 파가니니 역 개인 누적 100회 출연을 기록했다. 8년간 쌓아온 경험은 연주와 연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서 드러난다. 고난도 바이올린 연주를 별도의 볼거리로 내세우기보다 극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에 맞춰 사용한다. 공연마다 즉흥연주에 변화를 준다는 점도 특징이다. 같은 작품과 배역을 100회 이상 이어오면서도 연주자로서의 즉흥성을 남겨둔 것이다.
KoN의 파가니니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클래식 연주자로 출발해 집시와 재즈, 탱고 등 다양한 음악을 경험하고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를 쌓아온 이력이 한 인물 안에서 만난다.
KoN은 클래식과 뮤지컬뿐 아니라 패션 무대에서도 바이올린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제39회 섬유의 날’ 및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설립 50주년 기념 ‘이상봉 패션쇼’에서는 피날레 무대에 올라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바이올린 연주와 무대 퍼포먼스를 결합해 패션쇼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현장을 찾은 섬유·패션업계 관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당시 패션쇼에서 KoN을 접했던 섬유·패션업계 관계자들에게 이번 뮤지컬 ‘파가니니’는 그의 본업인 바이올린과 액터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8년간 한 작품과 함께해온 KoN에게 ‘파가니니’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과 무대 경험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 바이올리니스트와 뮤지컬 배우라는 두 영역을 오가며 구축해온 그의 강점이 파가니니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오는 8월 30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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