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의무적 섬유 분리수거 제도와 에코디자인 규제, 재생원료 사용 확대 정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섬유 재활용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러나 섬유를 다시 섬유로 재활용하는 ‘텍스타일 투 텍스타일(Textile-to-Textile·T2T)’ 재활용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규모의 가치사슬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 폐기물관리협회(FEAD)와 리사이클링 유럽(Recycling Europe)은 최근 공동 분석을 통해 섬유 재활용 산업의 다음 과제로 ‘가치사슬(Value Chain) 구축’을 제시했다.
양 기관은 안정적인 원료 확보와 수거·선별 인프라 구축, 추적성 시스템, 섬유 가공 기술, 정책 지원, 재생섬유 수요 확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만 유럽 전역에서 섬유 재활용 산업의 대규모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가치사슬 전반 협력 필요
리사이클링 유럽 섬유분과 회장인 마리스카 보어(Mariska Boer)는 유럽이 이미 섬유 재활용 성공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은 강한 의지와 산업적 노하우,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제품 설계와 수거, 선별, 재활용, 최종 시장 활용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아우르는 일관된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리사이클링 유럽은 유럽 전역의 섬유 수거업체와 선별업체, 재활용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섬유 순환경제와 재활용 시스템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T2T 재활용이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유럽 21개 국가 협회와 약 3,000개 기업을 회원으로 둔 FEAD는 대규모 폐섬유 처리 현장의 현실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FEAD는 유럽 민간 폐기물 및 자원관리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다.
FEAD의 주니어 기술 담당자인 줄리아 카롤리(Giulia Caroli)는 모든 폐섬유가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산업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섬유(Post-industrial Textiles)와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폐섬유(Pre-consumer Textiles)는 일부 제조 공정에 다시 투입되고 있다”며 “반면 소비자가 사용한 후 배출하는 폐섬유(Post-consumer Textiles)는 종류가 다양하고 처리 난도가 높아 효율적인 수거·선별·재활용 시스템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구분은 재생원료 함량 의무화 등 재활용 원료 사용 기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재생섬유 가격 경쟁력 확보가 최대 과제
양 기관은 섬유 재활용 산업의 경제성이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현재 재생섬유는 품질이나 활용 가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규 원료(Virgin Fiber)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시장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가격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보어 회장은 규제가 재생원료 시장의 수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규 원료가 계속 더 저렴한 선택지로 남아 있는 한 T2T 재활용은 유럽이 필요로 하는 속도로 확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리사이클링 유럽은 안정적인 수요 창출과 재활용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해 법적 구속력을 갖춘 재생원료 함량 목표 도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소비 후 폐섬유(Post-consumer Waste)에서 생산된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FEAD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목표 설정 과정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롤리는 “섬유 제품의 재생원료 사용 기준은 소비 후 폐기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섬유나 판매 이전 단계의 폐섬유까지 확대할 경우 실제 사용 후 폐의류 재활용에 대한 투자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의는 유럽 섬유산업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점에 이뤄지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섬유 분리수거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수거 물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초고속 패스트패션(Ultra-fast Fashion) 확산 등의 영향으로 수거되는 의류의 평균 품질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FEAD는 의류 품질 저하가 재사용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시장이 이를 충분히 흡수할 준비가 되기 전에 더 많은 물량이 재활용 공정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프라 구축 없이는 재활용 확대도 불가능
이 같은 과제는 수거와 선별 인프라를 섬유 순환경제 전환의 핵심 요소로 부각시키고 있다. 보어 회장은 “적합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면 어떤 재활용 산업도 규모를 확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섬유 분리수거 의무화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유럽이 섬유를 효율적으로 선별하고 전처리해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용도로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재사용과 재활용 물량을 명확히 구분하고 제품 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추적성(Traceability) 체계 강화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FEAD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미래 재활용 기술 개발뿐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수거·선별 역량을 유지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카롤리는 “유럽 전역에서 섬유 분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기존 수거·선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한시적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FEAD는 재사용·수선·재활용 활동에 대한 세제 혜택과 부가가치세(VAT) 감면, 재활용 인프라 투자 지원 등 전환기 지원 정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활용 확대 위해서는 연결된 생태계 구축 필수
업계는 섬유 재활용 산업의 다음 성장 단계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가치사슬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섬유 재활용 시장 성장을 이끌 핵심 요소로 ▲소비 후 폐섬유 기반 재생원료 수요 확대 ▲수거·선별 인프라 투자 ▲선별·재활용·추적성 기술 발전 ▲섬유 가치사슬 전반의 협력 강화 ▲순환 생산을 지원하는 정책 체계 구축 등을 꼽고 있다.
현재 수거와 선별, 섬유 가공, 재활용, 방적, 추적성 관리, 제조 공정 통합 등이 하나의 순환 생산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재활용 기술 자체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순환형 섬유 생산을 산업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의 여러 단계에 걸친 동시다발적인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화는 재활용 기업뿐 아니라 선별 자동화 기술 기업, 디지털 추적성 플랫폼 기업, 섬유 가공업체, 제조 공정 통합 솔루션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순환경제 시장 조성 위한 정책 역할 중요
양 기관은 섬유 재활용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또 다른 핵심 요소로 정책과 제도를 꼽았다. 리사이클링 유럽은 규제가 단순히 폐기물 관리에 머무르지 않고 순환 원료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어 회장은 효과적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과 강화된 에코디자인 규정,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재생원료 및 재활용 가능성 기준, 폐기물 종료(End-of-Waste) 기준에 대한 법적 명확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과 제도는 단순히 폐기물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순환 원료가 섬유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FEAD 역시 에코디자인 규정이 섬유 순환경제 확대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기존 EU 폐기물 관련 법규와의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롤리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재생원료 사용 의무 제도가 실제 폐의류 처리 문제 해결보다는 생산 공정 효율화에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섬유산업이 직면한 진정한 사용 후 폐기물 관리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준비됐다…이제는 산업화 단계
양 기관은 기술이 섬유 재활용 확대의 핵심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기계적 재활용(Mechanical Recycling)은 일부 섬유 분야에서 이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화학적 재활용(Chemical Recycling) 기술도 혼방 소재와 복합 소재 처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섬유 선별 기술 역시 고도화되고 있다. FEAD는 섬유 단위까지 소재 성분을 식별할 수 있는 근적외선(NIR) 기반 분석 기술을 유망한 기술로 평가했다. 다만 상당수 기술은 아직 시범사업 또는 초기 상용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카롤리는 “실제 병목 현상은 재활용 기술 자체보다 일정한 품질과 규격을 갖춘 원료 확보, 그리고 재활용 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시장 수요 부족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어 회장도 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제품 설계 기준과 인프라, 시장 수요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다행스럽게도 T2T 재활용에 필요한 핵심 기술 상당수가 이미 상용화됐거나 빠르게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선별, 소재 식별, 섬유 재생, 방적 공정 개선, 추적성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의 관심이 기술 개발 자체보다 실제 적용과 확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 기관은 유럽이 섬유 순환경제를 선도할 충분한 기회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T2T 재활용이 단순한 순환경제 목표를 넘어 전략적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소비 후 폐섬유 재활용을 장려하는 정책과 수거·선별 시스템 지원, 재생섬유 수요 확대, 재활용 기술 투자 촉진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향후 성공 여부는 기술 자체보다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과 시장 형성, 그리고 산업 간 협력 체계 마련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재활용 기업과 제조업체, 브랜드, 기술 공급업체들은 이제 검증된 기술을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순환 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양 기관은 “가치사슬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협력 체계가 구축돼야만 환경적 효과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섬유 재활용 산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술 기업과 제조업체, 재활용 기업, 브랜드, 연구기관, 정책 입안자 간 협력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지식 교류와 파트너십 확대가 산업화 속도를 높이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2027년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섬유·의류 기계 전시회인 ITMA 2027은 글로벌 섬유·의류 제조 생태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ITMA 2027이 가치사슬 전반의 대화를 촉진하고 T2T 재활용의 상업화와 대규모 확산을 위한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TMA 2027, 순환 혁신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자동화, 첨단 소재가 글로벌 섬유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면서 제조업체와 브랜드들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 영향을 줄이며 새로운 사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ITMA 2027은 변화하는 시장 수요와 강화되는 규제 환경, 생산 현장의 다양한 과제에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는 글로벌 섬유·의류 산업 의사결정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회다.
섬유기계와 자동화, 디지털화, 소재 혁신, 재활용, 품질관리, 시험·인증, 제조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은 ITMA 2027을 통해 자사의 혁신 기술을 선보이고 실제 투자와 구매 의사를 가진 고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섬유 및 의류 제조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참관객이 방문하는 만큼 참가 기업들은 신규 비즈니스 창출은 물론 산업 파트너십 확대와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 제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업계는 ITMA 2027이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섬유·의류 산업의 미래 혁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만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 주최 측은 “ITMA 2027은 세계 섬유·의류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플랫폼”이라며 “순환경제와 첨단 제조 기술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들에게 최적의 비즈니스 무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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