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미국의 역할은 끝났다”

제5회 K섬유혁신포럼, 글로벌 질서 변화 진단
박현도 교수, 중동 리스크와 공급망 재편 경고

TIN뉴스 | 기사입력 2026/05/26 [17:33]

▲ 제5회 K섬유혁신포럼 강연자 박현도 서강대학교 교수와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TIN뉴스

 

국내 섬유·패션·소재 산업의 미래 전략과 글로벌 산업 환경 변화를 논의하는 ‘2026 제5회 K섬유혁신포럼’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스카이홀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국내 섬유산업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산·학·연 관계자 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섬유·패션 업계 기업인과 학계,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산업 현안과 미래 방향성을 공유했다.

 

포럼 개회사를 맡은 배진석 K섬유혁신포럼 이사장(경북대 교수)은 “K섬유혁신포럼은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지역과 분야를 넘어 산업 전반이 함께 논의하는 열린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며 “특히 세대 간 장벽을 허물고 젊은 인재들이 보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배 이사장은 이어 “섬유산업은 수십 년간 매년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그 속에서도 제조업을 지켜온 기업인들이 결국 산업의 버팀목”이라며 “포럼 역시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글로벌 정세 변화와 중동 리스크가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섬유산업 역시 원자재와 에너지, 공급망 측면에서 중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관련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특별강연은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교수가 맡아 ‘중동 정세 변화와 글로벌 경제 및 산업 환경’을 주제로 진행했다. 박 교수는 글로벌 질서 재편과 중동 리스크 확대가 국내 산업 전반에 가져올 구조적 변화를 경고하며 기업들의 전략 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 제5회 K섬유혁신포럼 특별강연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 TIN뉴스

 

“세계 경찰 역할 끝”…미국 전략 변화 본격화

“중국 견제가 최우선…과거 국제질서 기준으로는 위험”

 

박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며 국제질서를 관리해왔지만 지금의 미국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의 최우선 전략은 이제 중국 견제이며 동맹국들 역시 과거처럼 미국의 무조건적인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2017년 이후 미국의 대외 전략 변화가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국제 분쟁과 지역 질서를 미국이 직접 관리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자국 이익 중심의 선택적 개입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중동 역시 예전처럼 미국이 책임지고 안정시키는 구조가 아니다”며 “기업들이 과거 국제질서를 기준으로 사업 전략을 세우면 상당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안정성과 공급망 안전성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는 지정학이 곧 원가가 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변수 부상

“한국 경제의 생명선…봉쇄 시 제조업 직격탄”

 

박 교수는 최근 중동 정세와 관련해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를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그는 “한국은 하루 약 289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이 가운데 약 70%가 중동산”이라며 “대부분의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이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나 봉쇄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 경제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한국 경제의 생명선과 같은 곳”이라며 “만약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국제유가뿐 아니라 물류비, 제조 원가, 해상 운임까지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국제유가는 각국 정부 정책과 시장 개입으로 일정 부분 억제되고 있지만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산업계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은 최소 연말까지 고유가 기조와 물류비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제5회 K섬유혁신포럼 특별강연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 TIN뉴스

 

셰일혁명 이후 달라진 미국

“에너지보다 기술 패권…미·중 경쟁은 장기전”

 

강연에서는 미국 셰일오일 혁명 이후 변화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 구조도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박 교수는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고 그 결과 중동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며 “과거 미국이 중동 안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에너지 확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 중심축은 이제 에너지 안보보다 기술 패권 경쟁에 맞춰져 있다”며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첨단 제조업을 둘러싼 경쟁이 앞으로 세계 질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2040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장기 경쟁 구도로 봐야 하며 기업들도 단기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인 공급망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 이후 준비하는 중동”

AI·수소·첨단 제조업 중심 산업 전환 가속

 

박 교수는 중동 산유국들의 산업 다변화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석유만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AI와 스마트물류, 수소 산업, 관광, 바이오, 첨단 제조업 등으로 산업 구조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동 국가들은 단순한 자본 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가져오기를 원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에도 단순 수출을 넘어 기술 협력과 공동 프로젝트 참여 기회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제5회 K섬유혁신포럼 특별강연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 TIN뉴스

 

“중동은 새로운 기회 시장”

기능성 히잡·고부가 소재 분야 경쟁력 주목

 

국내 섬유·패션업계와 관련해서는 중동 시장의 전략적 가치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중동은 단순 소비시장이 아니라 기능성·친환경·고부가가치 소재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며 “특히 기능성 히잡 소재와 냉감·항균 원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빠른 추격에 대한 경계도 당부했다.

 

그는 “과거에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 우위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생산 속도가 매우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며 “가격 경쟁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만큼 결국 차별화된 기술과 브랜드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동 국가들이 한국 기업에 기대하는 강점으로 ‘유연한 대응력’을 꼽았다.

 

박 교수는 “중동에서는 일본 기업보다 한국 기업과 협업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현장 대응 속도와 의사결정, 기술 협력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융통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은 변화 대응 속도가 빠르고 현지 요구에 맞춰 조정하는 능력이 강하다”며 “이런 강점은 앞으로 중동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견국 협력 시대 열린다”

인도·중동·동남아 연결한 공급망 전략 필요

 

이날 강연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다자 협력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 교수는 “앞으로는 특정 국가 하나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중견국 간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한국 역시 인도·중동·동남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공급망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세계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국제 질서 자체가 바뀌는 전환기에 들어섰다”며 “기업들도 이제는 가격과 생산성만 보는 시대에서 벗어나 지정학과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은 더 이상 단순한 산유 지역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에너지 전략이 교차하는 핵심 지역”이라며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제조업의 원가 구조와 물류 환경도 빠르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산업계 역시 단순한 가격 경쟁력만 볼 것이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와 공급망 안정성까지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섬유·패션 산업은 국제 정세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서는 업계 관계자 간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특히 만찬은 독일 도른비른 GFC 아시아 프로그램과 연계해 운영되며 국내외 섬유 관계자들의 교류 확대에도 힘을 보탰다.

 

K섬유혁신포럼 측은 올해 하반기 추가 포럼과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11월 제2차 포럼 개최를 비롯해 6월과 9월에는 별도의 네트워킹 행사도 추진할 예정이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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