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I, 대한민국을 다시 ‘소재 소싱 국가’로

소재 개발 성공 사례 위해 산·학·연 어벤져스 출범
대량생산의 한계, ‘조금 다른 실’이 성패를 가른다

TIN뉴스 | 기사입력 2026/01/05 [17:57]

▲ 강태진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이 패션 원단 전문기업 더블유미션 성수동 본사를 방문해 섬유소재 국산화 포럼 ‘Korea Textile Initiative(KTI)’ 간담회에 앞서 더블유미션 서강임 대표와 함께 2026 S/S 시즌 패브릭 소재를 살펴보고 있다.  © TIN뉴스

 

강태진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은 12월 22일 섬유센터에서 열린 ‘2025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 시상식’ 초청 강연에서 국내 섬유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한 움직임으로 섬유소재 국산화 포럼 ‘Korea Textile Initiative(KTI)’에 대해 소개했다.

 

강 학장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에서 소싱을 하고 싶어도 소싱할 소재가 없다고 말한다”며 “업체 수가 줄면서 컨버터가 사라지고 생태계가 붕괴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행히 60~70년간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아직 남아 있다”며 “현존하는 국내 고급 기술 인력들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연결하고 활용해 최고의 국산소재 개발이라는 확실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학연이 묻고, 산업이 답하다

 

KTI는 국내 섬유산업의 구조를 다시 짜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산업·학계·연구기관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기술을 조합해 브랜드에 제안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고, 대한민국을 다시 글로벌 소재 소싱 허브로 복원하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출범했다.

 

단순한 친목 단체도, 일회성 포럼도 아닌 최상의 국산 소재를 개발하여 브랜드에 대규모로 공급하는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방적·직물·염색·가공·R&D·유통·브랜드까지 섬유산업 밸류체인을 실제로 경험해온 다양한 산·학·연 전문가들이 참여해 현장의 문제를 현장에서 풀어내는 실천형 네트워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강태진 학장을 비롯해 이상락 KOTITI시험연구원 원장, 이정기 한국섬유수출입협회 부회장, 김성찬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삼일방 노현석 사장, 영원무역 박재용 사장, 우주글로벌 길경택 사장, 글로벌패션네트웍스 김명호 대표, 유니아텍스, 렌징 등 15~16명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경계를 넘어 연대하며 실질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고 있다.

 

KTI는 국내에서 소싱을 할 수 있는 컨버터들을 키우기 위해 국산 소재로 패션 원단을 생하는 더블유미션(WMISSION), 우주글로벌(WOOJOO GLOBAL), 빅토리아 텍스타일(VICTORIA TEXTILE) 등의 성공사례를 확대 공유하고 있다. 

 

▲ 1988년 설립된 패션 원단 전문기업 더블유미션(W MISSION) 성수동 본사 쇼룸  © TIN뉴스

 

12월 23일에는 1988년 설립된 패션 원단 전문기업 더블유미션 성수동 본사를 방문해 다양한 개발 소재들을 둘러보고 더블유미션 서강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갖고 소재 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더블유미션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더블유미션을 입고 생활한다’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매 시즌 새로운 원단을 개발하고, 보유 원단은 색상과 품질을 강화하여 소비자에게 우수한 원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성수동 본사에 패브릭 쇼룸과 동대문종합시장에 6개의 직영 매장을 운영 중이다.

 

KTI의 이번 회의 역시 형식적인 발표가 아닌, 현실적인 고민과 생존 전략이 오간 자리로 대화의 중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키워드는 ‘다양화’와 ‘차별화’였다.

 

방적산업을 예로 아주 작은 변화가 흑자와 적자를 가른 사례를 공유하며 “50수·60수 코마사 중심의 같은 품종을 대량으로 생산할 경우 베트남·방글라데시와의 단순 가격 경쟁이 불가하다”면서 “오더 메이저 중심의 고부가가치 차별화 품종으로 가야 경쟁력이 있다”며 “같은 설비라도, 어떻게 섞고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소재가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단일 품종 대량 생산이 아닌 혼방 설계, 코어사(Core yarn), 멜란지·스트라이프 효과, 안티필링 구조, 트리코트 기반 대체 니트 등과 같은 ‘소재 설계’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울(Wool), 대량이 아닌 ‘프리미엄 전략’

 

울(Wool) 소재에 대한 논의도 깊었다. 울은 고가 소재로 대량 확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큰 만큼 대신 프리미엄·고급 라인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또 혼방 기준에 따른 울 가치 인정(면 17%, 화섬 36% 등)에 대한 명확화와 울마크 기준(30%)에 대한 산업적 이해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했다.

 

참석자들은 울은 물량이 아닌 설계력으로 접근해야 할 소재라는 데 공감하며 국내에 있는 리소스를 잘 조합해 2026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애슬레저 브랜드 납품을 목표로 성공 사례를 만들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국내 소재 사용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것이 납기인 반면, 다품종·소량·오더메이드 구조에서 납기 지연은 피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다뤘다.

 

샘플·테스트·R&D용 오더 별도 트랙 운영, 250~300kg 샘플 1주 이내 생산 가능한 체계, 대형 오더 사이에 끼워 넣는 방식 탈피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이제는 국산이니까 써달라가 아니라 국내라서 가지고 있는 강점을 내셔널 브랜드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KOTITI시험연구원 연구개발본부 김규호 본부장이 섬유소재 국산화 포럼 ‘Korea Textile Initiative(KTI)’ 간담회에서 과천 사옥과 평태 사옥, 베트남법인 등에 구비된 연구 인프라와 신뢰성기반활용지원사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TIN뉴스

 

KOTITI, 신뢰성바우처로 시험분석 지원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KOTITI시험연구원 연구개발본부 김규호 본부장이 과천 사옥과 평택 사옥, 베트남법인 등에 구비된 연구 인프라 등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평택 사옥의 경우 국내 유일 파일럿 규모의 방적설비와 편직기, 특수사 가공기, 복합 재료연구실 및 다양한 섬유소재와 제품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분석장비들이 구비되어 40~50kg 단위의 샘플 원사 생산이 가능하며, 방적–염색–가공 전 공정 실험도 가능하다.

 

또 국내 소부장 제조 기업에게 연구기관의 인프라(시험분석/테스트베드/컨설팅 등) 활용을 위한 바우처를 제공하는 신뢰성기반활용지원사업(신뢰성바우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신뢰성 바우처 사업 활용 시 기업 부담 2,500만 원, 정부 지원 7,500만 원으로 총 1억 원 규모 개발·시험·성적서 발급이 가능하다.

 

방적회사가 아닌 ‘종합상사’가 원사를 움직이는 일본

 

이날 회의에서는 일본 섬유산업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날카롭게 짚었다. 참석자들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인식의 차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장 먼저 언급된 차이는 원사 유통 구조였다. 일본의 경우 방적회사가 아닌 종합상사가 원사 비즈니스의 중심에 서 있다. 테이진, 아사히카세이 등 종합상사는 원료–원사–소재–브랜드를 관통하며 기획 단계부터 관여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방적사가 각자 원사를 생산·판매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고, 그 결과 비슷한 스펙의 유사 소재가 반복 생산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 기업 문화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테이진과 아사히카세이처럼 명백한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조차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면 경쟁으로만 보지 않고 분업과 협업을 통한 멀티 기능화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쟁사라도 서로 득이 되면 자연스럽게 콜라보하고 기능을 합치는 합종연횡을 통해 단일 기능 기업이 아닌 다기능·다소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각자도생 구조가 강해, 비슷한 설비와 제품을 두고 출혈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 1988년 설립된 패션 원단 전문기업 더블유미션(W MISSION) 성수동 본사 쇼룸  © TIN뉴스

 

‘파트너’로 대하는 일본, ‘하청’으로 보는 한국

 

브랜드와 소재업체의 관계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일본에서는 브랜드가 소재업체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시즌 기획 단계부터 함께 소재를 개발하고 방향을 논의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소재업체를 하청 또는 갑을 관계로 인식하는 문화가 강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같이 기획하고 같이 성공해야 하는데, 아직도 ‘사서 쓰는 관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 같은 인식 차이가 결국 국내 소재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회의에서는 특히 국산 원사의 역수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공유됐다. 국내에서 생산된 원사가 일본으로 수출된 뒤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이름으로 두 배 이상의 가격으로 다시 한국에 역수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내셔널 브랜드들조차 해당 원사가 국산임을 알면서도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선택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국산 소재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정부 차원의 국산 소재 사용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강태진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이 12월 22일 섬유센터에서 열린 ‘2025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 시상식’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TIN뉴스

 

붕괴 직전의 미들 스트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위기감도 제기됐다. 1990년대 1,300~1,500개에 달하던 국내 미들 스트림(염색·가공 등) 업체 수는 현재 300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감소가 아니라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을 잇는 산업 허리의 붕괴 위험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회의에서는 업스트림에 있는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미들·다운 스트림을 어떻게 지원하고 연결할 것인지에 대해 산업 전체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물량 부족을 겪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일본 도레이(Toray)를 사례로 들며, 생산기지의 글로벌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국산 소재를 국내 생산이라는 테두리 안에만 가두고 소재를 찾으려는 사고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핵심은 생산지가 아니라 기획·설계·소싱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KTI가 강조하는 ‘소재 소싱 국가’ 전략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KTI가 바라보는 미래 전략은 소재의 투명성이다. “앞으로는 품질보다 먼저 ‘누가 만들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며 RFID와 DPP를 한국 섬유산업의 방패이자 중국을 넘기 위한 실질적 무기로 보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 가격으로 급락한 RFID를 활용해 원사·직물·염색·가공 이력을 기록한 DPP(디지털 제품 여권)와 연계하면 미국·유럽 수출 시 원산지 증명에 대응하고, 중국산의 위장·우회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강 학장은 “더 이상 값싼 대량 생산 체재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며 “우리는 소재를 설계하고, 소싱을 주도하는 나라로 다시 가야 한다”면서 “제일 우선으로 국방섬유 국산화 달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산 섬유의 국방 품목 적용은 산업 보호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라며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밀어붙여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라면서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기술이 끊기기 전에 움직여야 하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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