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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은 12월 22일 섬유센터 2층 Tex+Fa 캠퍼스 라운지에서 열린 ‘2025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 시상식’ 초청 강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제조업과 섬유패션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와 생존 전략을 심도 있게 진단했다.
강 학장은 “지금 세계는 더 이상 국제조약과 법에 의해 움직이는 질서가 아니라, 힘과 경제 논리에 의해 재편되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며 “이 변화의 핵심에는 제조업과 에너지, 그리고 부국강병의 국가 전략이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의 시작에서 강 학장은 최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시즌 소비 동향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대형 세일 기간 매출 통계를 보면 작년 대비 약 4%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 곧 글로벌 경기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산업 전략을 선택하느냐가 생존을 가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이미 예고된 정책의 귀환
강 학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즉흥적 변화가 아니라 이미 예고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2024년 출간한 ‘2025 프로젝트(Mandate for Leadership 2025)’를 언급하며 “92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 거의 모든 청사진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보수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사회적 자유 이전에 경제적 자유가 우선”이라며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 기업과 개인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세정책(Tax Cut)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국정철학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예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감세 정책, 이른바 ‘레이건노믹스(Reaganomics)’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며 “감세를 하면 세수가 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세수가 증가한 것은 감세로 경제 활성화와 고용 확대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려 하기보다 시장을 살리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글로벌화의 종말, 관세와 보호무역의 시대
강 학장은 트럼프 2기의 핵심 키워드로 ‘관세’와 ‘보호무역’을 꼽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어 지지 그룹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은 지난 80년간 유지돼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체를 해체하고 ‘Make America Rich Again(MARA)’ 전략 아래 관세 장벽을 세워 제조업 강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70~80년간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지만,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이 질서를 유지할 생각이 없다”면서 “이제 새로운 국제질서 변화의 최대 리스크 국가가 될 수 있다”며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은 해체되고, 국가 중심의 블록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 정책이 제조업 경쟁력 결정
강연에서 가장 강조된 문제는 에너지 정책이었다.
강 학장은 “미국이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후 신재생에너지 지원을 중단하고, 세계에서 가장 싼 전기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며 “이는 제조업·AI·데이터센터를 동시에 키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에너지 가격이 낮아지면 제조업, AI, 데이터센터, 첨단 산업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다”며 “미국은 이를 위해 화석연료 규제를 완화하고 원자력 발전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 확대 정책에 대해 “한국은 시공 능력과 기술 경쟁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국내에서는 저평가 받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한국 원전 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AI, 이제 선택이 아닌 제조 경쟁력의 기본 조건
강 학장은 “AI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본 조건”이라며, 한국 산업 전략의 근본적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지역 특성에 맞는 미래 유망 제조업 중심의 ‘제조 파운더리(Manufacturing Foundry)’ 전략이 필요하다”며 “국가가 산업별로 공용 AI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제조 파운더리 기반의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파운더리는 설계(Fabless)와 생산을 분리함으로써 산업 생태계를 키웠다”며 “제조업 역시 전략 산업 분야별로 공용 제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각 산업 분야에서 AI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먼저 재정을 투입하고 산업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전통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해양 산업과 국방 산업 역시 국가 차원의 제조 파운더리 구축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제조 로봇 산업에 대해서도 강 학장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전환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보듯, 기계 중심 산업을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변화가 로봇 산업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 AI 로봇이 제조 현장에 투입될 경우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유연한 생산, 다품종 소량 생산, 고령화 대응까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제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AI 전략의 전제 조건으로 에너지 정책을 지목하며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의 전기 요금 구조와 에너지 정책으로는 글로벌 경쟁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에너지 정책, 특히 원자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AI 산업과 제조 혁신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패권 경쟁 장기전은 이미 시작됐다
강 학장은 미·중 패권 경쟁을 단기적 갈등이 아닌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충돌로 진단하고,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조기 달성, 2035년 첨단 제조업 패권 전략, 일대일로, 위안화 국제화, 천인계획 등을 언급하며 중국의 전략을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수십 년에 걸친 장기 국가 전략으로 분석했다.
또 “중국 봉쇄 전략의 풍선 효과로 이집트·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새로운 제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현실과 함께 중국의 남중국해 전략,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이 패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충돌이며,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구조적 위기 중심에 서다
강 학장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강하게 경고하며 매우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제조업 지수 하락 ▲저성장 고착화 ▲에너지 비용 부담 ▲노동 생산성 저하 ▲국가 경쟁력 순위 하락을 주요 위기로 꼽으며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GDP의 약 28~29%로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아 제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 경쟁력 순위가 5위에서 7위로 하락했고, 더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에너지 정책과 노동 생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반등은 어렵다”고 경고했다. 또 “여수·울산·포항 등 국가 전략 산업의 거점이 러스트벨트화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붕괴 신호”라고 강조했다.
DPP 정보는 ‘신뢰의 데이터’
강연 후반부에는 섬유패션산업이 맞닥뜨린 가장 중요한 구조 변화로 DPP(Digital Product Passport, 디지털 제품 여권)를 꼽으며, 이를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닌 산업 경쟁력을 되살릴 전략적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섬유패션산업은 가격 경쟁이나 생산량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고,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따지는 문화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를 신뢰성 있게 확인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DPP는 그 변화의 핵심 인프라”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면 원산지 논란을 사례로 들며 “수출된 면 제품을 유전자(Gene) 테스트하면 브라질산 면과 중국 신장 면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실제로 신장 면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증명이 불명확해 수출 기업이 곤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DPP 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기업은 억울해도 해명할 방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DPP에는 단순한 원산지 표시를 넘어 ▲디자인 주체 ▲제조 공정 ▲소재 구성 ▲공급망(Supply Chain) ▲재활용·환경 정보까지 제품의 전 생애 주기가 기록된다.
강 학장은 “DPP는 규제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하는 데이터베이스”라며 “누가 설계했고, 누가 만들었고, 어느 공장에서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브랜드와 소비자의 신뢰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투명성’”이라며 “한국 기업이 이를 선제적으로 갖추면 가격 경쟁이 아닌 신뢰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행히 국내 섬유패션기업들이 이미 RFID 태그를 상당 부분 도입하고 있다”며 “DPP는 전혀 새로운 투자가 아니라, 기존 RFID 시스템에 어떤 정보를 어떻게 넣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속에서 DPP가 갖는 전략적 의미도 강조하며 “미국과 유럽은 이미 중국을 공급망에서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DPP는 중국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을 봉쇄하는 글로벌 규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제품이 ‘중국산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DPP”라며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한국 섬유산업에 주어진 기회”라고 평가했다.
섬유산업의 방향 전환…‘소재와 신뢰’로 승부해야
강 학장은 섬유 시장의 구조적 변화도 짚었다.
그는 “코튼 비중은 과거 41%를 넘었지만 현재는 22%까지 하락했다”며 “폴리에스터 중심의 성장 국면을 지나, 울과 셀룰로오스계 섬유가 다시 주목받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이오셀, 모달 등 셀룰로오스계 섬유에 대해서는 “촉감, 인체 친화성,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으며, 방적·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활용 범위도 크게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소재 경쟁력 역시 DPP를 통해 제대로 증명될 때 비로소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덧붙였다.
“국가 전략 없이는 버틸 수 없다”
강 학장은 강연 말미에 섬유패션산업에 대해 “이제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지금은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시기”라고 단언했다.
그는 ▲에너지 가격 안정 ▲제조 설비 고도화 ▲공동 친환경 인프라 ▲인력 양성 ▲국내 생산 기반 유지 전략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섬유패션산업을 다시 국가 전략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려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의 전략적 역할로 “제조업 혁신과 선진 제조업 육성을 위한 과학·산업 융합 정책, 그리고 과감한 재정 투자가 없다면 산업은 더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면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느냐, 아니면 우하향의 장기 침체로 들어가느냐의 갈림길에서 산업과 경제를 최우선에 두는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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