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 불씨를 키워라

원사~봉제 전 스트림 국내 제조 기반 공동화 가속
협력공장 폐업에 중국·베트남으로 공장 찾아 삼만리

TIN뉴스 | 기사입력 2025/09/19 [02:26]

# 부산에 소재한 의류수출업체 A사는 국내에서 원사, 편직, 염색, 봉제를 거쳐 미국 하와이에 여름 셔츠를 수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Made in Korea’ 제품(가먼트) 수출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제조기반이 점차 붕괴되고 있어 앞으로 FTA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A사 대표는 내년 시즌에 맞추어 11월 선적을 준비 중이다. 편직을 마치고 염색 작업을 앞둔 상황. 소량의 모달 원단 염색이 가능한 곳을 물색 중이다. 수출 물량이 줄면서 염색도 대부분 소량이다. 대량 염색에 특화된 국내 염색공정 환경에서100~200㎏ 소탕기를 취급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보니 요즘 소탕염색 또는 샘플 염색이 가능한 염색공장에 사람들이 몰린다.

 

A사 대표는 봉제공장과 염색공장 등 협력공장 찾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서울 출장도 잦아졌다. 바이어들도 이 점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실제 한국 제조 상황에서 대량 물량을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바이어는 매년 물량을 줄여 나가고 있다. 실제 올해 주문량은 작년의 10분의 1수준에 그쳤다.

 

# 동대문 생산 기반의 의류제조업체 B사는 최근 사염공장의 주 3일 단축 통보를 받고 걱정이 태산이다. 협력 봉제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자 매달 1회 중국, 베트남 등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B사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원사부터 편직, 염색, 봉제까지 최종 제품을 받기 까지 한 달이 걸린다. 결국 국내와 비교해 낮은 가격에 다양한 아이템 생산이 가능하고 납기도 빠른 중국으로 생산(봉제)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Made in Korea’의 근간인 염색, 봉제 등 국내 제조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협력 공장이 폐업했다며, 취재진에게 업체를 소개시켜달라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 수십 년 동안 거래해온 협력공장 폐업 소식에 눈앞이 깜깜했다.

 


한국 vs 중국 봉제 산업


 

 

‘Made in Korea’의 최전선에 있는 봉제 산업이 쇠락하고 있다. 1960~70년대 지금의 반도체, IT에 버금가는 주력 수출품목 1위였던 봉제 산업. 국내 브랜드들은 저렴하게 생산하고 싶지만 국내 봉제는 더 이상 이것을 맞춰줄 수 없다. 저렴한 가격은 이미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밀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성비 또는 비교적 쉬운 봉제 그리고 스피드(납기)가 요구되는 제품을 굳이 한국에서 만들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올해 6월 중구 신당동 봉제공장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공장 경영 어려움과 임금 체불로 갈등을 빚던 공장주가 불을 질러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어쩌다 한국 봉제 산업이 경쟁력을 잃었을까? 중국 봉제공장과 비교해 보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의류제작 플랫폼 운영사 스티치잇(Stitch-it)이 ▲Q(품질) ▲D(리드타임) ▲(생산비용) ▲(커뮤니케이션) 4가지 기준으로 중국과 한국 봉제공장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① 품질의 경우 한국은 평균적으로 의류 제작과 숙련도가 높다. 기본 품질에 맞추어 생산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생산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한국보다 높은 퀄리티의 공장들도 많다. 중국은 저가 수준에서 에르메스와 같은 고가 제품 생산까지 수많은 그레이드가 존재하며, 원사, 원단, 편직, 염색 등 전방위적으로 커버가 가능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즉 기본적인 표준 품질은 한국이 우위지만 절대적인 품질에서는 중국이 퀄리티 있게 잘 만들 수 있다.

 

② 리드타임(제작기간) 면에서는 양국 모두 전 세계적으로 매우 짧다. 한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경우 생산속도로는 비슷하거나 중국이 빠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헤비 아우터처럼 손이 많이 가는(공정이 많은) 제품은 중국의 생산라인이 크기 때문에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③ 생산비용 면에서는 당연히 중국이 월등하게 저렴하다. 물론 제품마다 다르다.

원가 부분에서는 중국이 싸지만 중국에서 생산할 경우 물류비용, 관세가 추가로 발생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중국 생산 시 생산라인을 원활하게 컨트롤하면서 불량을 미연에 방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④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중국보다는 한국 봉제공장과의 소통이 원활하다. 다만 서로를 존중해주고 파트너로서의 측면에서 한국은 대부분의 사장들이 나이가 많다보니 내가 너를 도와준다는 식의 파트너십이 약한 반면 중국은 파트너이자 바이어로 대접을 해준다는 점이 큰 차이다. 이는 중국은 전 세계 원부자재의 중심이며, 수요가 많기 때문에 원부자재비용과 인건비가 상승하더라도 단가 방어가 가능하다. 즉 마진이 크다. 반면 한국은 반대다.

 


전성기 시절 매몰…기술 개발은 뒷전”


 

 

대다수의 한국 봉제공장들은 여전히 과거 전성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봉제기술도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규 기술 개발보다는 만들기 쉽고 마진이 큰 대량 오더를 고집하고 있다.

 

물론 봉제공장 입장에서 현재 공임 수준으로는 소량 생산은 높은 생산단가 대비 수익성이 낮다. 특히 요즘 대세인 온라인 브랜드는 얼마나 팔릴지 예측이 어려워 초도물량이 적기 때문에 양은 적고, 스타일은 다양해 손이 많이 간다. 또 기존 브랜드(6개월 단위 생산 스케쥴)와 비교해 4~5주 납기를 요구해 봉제공장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코로나를 겪고 2022년 찾아온 인플레이션으로 원부자재와 인건비가 상승했다. 특히 생산 임가공은 공장이 부족해 급등했다. 국내에서 봉제를 하는 대형 브랜드들이 임가공을 20~30% 올리자 저가공임까지 동반 상승했다. 여기에 국내 원단 가격도 야드당 6,000원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소량 생산 대신 해외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해외로 봉제오더를 돌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3~5년 후면 대부분의 공장은 살아남기 어렵다. 앞서 제시한 초소량, 초고가, 기능성 의류 봉제에 특화된 소수 공장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의류 제조 하우스 비에파의 윤순민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고퀄리티나 고단가 옷은 국내에서 일부 진행을 해 이익을 내는 브랜드들이 있는 한 봉제공장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면 대물량을 기획해서 한 번에 풀어버리는 방식은 줄고 대부분 반응형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막상 생산 시기에는 모든 공장에 병목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성수기 때 생산을 안정적으로 해내는 브랜드가 이익을 내고 아닌 브랜드는 점점 힘들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본 역시 고임금에 따른 생산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저가 경쟁대신 일본 장인정신으로 만든 제품이 제값을 받고 있다. ‘Made in Japan은 다르고 확실히 품질이 좋다’라는 인식을 업계 스스로 만들어 냈고, 이는 국민들의 정서 속에 자리를 잡았다.


염색, 소탕 염색공장에 대기 줄


 

 

가먼트 오더 감소는 편직과 염색 물량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염색공장들의 가동일 수 단축으로 이어졌고, 현재 국내 10개 섬유염색단지 입주기업(섬유염색가공업체)들은 대부분 주 4일만 공장을 돌린다.

 

주 4일 물량을 다 합쳐봐야 고작 이틀 치 수준이다 보니 주 3일만 돌리는 곳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구 지역의 가동률은 40%를 밑돌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앞서 언급한 업체처럼 특수 아이템의 소탕 염색이 가능한 곳들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지난 달 열린 프리뷰 인 서울(PIS)에 반월염색단지 내 10개 섬유염색가공업체가 공동관 부스로 참여해 바이어 상담에 나서 값진 경험을 했다. 수주상담 과정에서 국내 바이어들은 가공단계에서의 안정성과 품질 확보 및 염색공단 입주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한 염색/후가공 공장 및 가공 품질 개선에 대한 니즈가 높았다. 이는 저비용 생산보다 차별화된 가공 기술력 확보는 물론 대량 OEM보다는 소량 다품종, 그리고 기술 특화형 생산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편직, “빚내서 돌린다”


염색공장과 한 몸인 편직공장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치상 편직 공장 가동률이 높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 빚이다.

편직업체 C사 대표는 “편직공장 특성상 주문이 들어보면 신속하게 출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재고 물량을 확보해 두는 데 이게 다 은행 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토로했다.

 

이미 저가의 중국산 원사와 생지가 국내 원단시장을 잠식한 지 오래다. 편직공장들도 가격 경쟁 때문에 중국산 원사를 수입해 원단을 짠다. 이는 곧 국내 화섬 산업의 입지를 좁혔다.

 


후가공, 日·中에 낀 샌드위치 신세


후가공 산업은 벨벳, 번아웃, 워싱, 또는 자수 등으로 노멀(Normal)한 원단 아이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품질 면에서는 중국보다 우위, 가격 면에선 일본보다 우위를 메리트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시장에서 품질(일본>한국>중국)과 가격(중국>한국>일본)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끼여 있는 샌드위치 신세다.

 

이대로 튕겨져 나갈 것인지 아니면 변화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심천, 상해 등 중국 시장에서 한국의 후가공 기술력은 우수한 품질과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가격을 앞세운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 수준만큼 올라선 데다 콧대 높던 일본 업체들도 소량 주문까지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은 소량은 사절이다. 여전히 대량 오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후가공업체들이 5인 미만, 부부가 운영하는 영세한 규모여서 언제까지 버티어 줄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다”

3040대 젊은 CEO, 혁신과 변화 앞장


 

▲ 의류 하우스 비에파  © TIN뉴스

 

◆ ㈜아람인더스트리

양주시에 소재한 컴퓨터 자수·DTP 전문 업체 ㈜아람인더스트리(대표 이건우)는 30대 젊은 사장은 강한 추진력과 비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산 저가제품에 밀려 우수한 원단들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이건우 대표는 ‘패브릭 허브(Fabric Hub) 즉 동대문 원단을 해외로 수출하는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특히 메인 거래처인 동대문 원단종합시장 내 100여 개 이상 원단업체들과 단순히 원단(생지)를 구매해 재판매하는 것이 아닌 협력 파트너로 컴퓨터 자수와 DTP을 이용한 후가공기술을 가미해 원단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동대문 원단 시장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 비에파

의상 디자인과 개발, 메인 생산이 한 공가에서 이루어지는 8년차 의류 제조 하우스 비에파의 윤순민 대표는 30대의 젊은 감각과 혁신적인 의류제조시스템을 구축해 의류 봉제와 내수 브랜드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디자인~생산까지 협력 기반 통합 관리형 생산시대를 열며, 100곳 이상의 브랜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소수 직원이 한 팀을 구성해 한 가지 아이템을 처음부터 끝가지 공정을 담당해 왼제품을 생산하고 품질에 책임을 지는 ‘1:1 셀(Cell) 생산방식’을 도입해 다품종 소량 생산과 반응형 생산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2022년 런칭한 여성 OMB 브랜드 ‘EAAH(이아)’는 미니멀한 실루엣에 고난도의 디테일 그리고 고감도의 옷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키운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 ㈜라잇루트(텍스닉)

올해로 9년차에 접어든 ㈜라잇루트의 신민정 대표는 폐 2차전지 분리막(폴리에틸린 필름)을 의류와 산업용 소재로 재활용해 주목받고 있다. 자체 개발한 투습방수방풍 등의 고기능성 리사이클 원단 브랜드 ‘텍스닉(TEXNIC)’은 천안아산 직영 공장에서 일 1만7,000야드를 양산하고 있다.

 

아울러 필름막을 미세하게 절단해 원사를 만든다는 개념의 ‘마이크로 슬릿(Micro Slit) 기술을 자체 개발하며, 원사 개발에 성공했다. 분리막을 재활용한 익스트림 기후 대응 원단(문스톤), 투습방풍 기능 특화원단(윈드코어), 고감성 뉴발란스 원단(하이파이브) 등 6가지 소재도 출시해 브랜드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 ㈜삼우DTP

1987년 설립된 실크 나염 전문기업 ㈜삼우실크(폐업)의 자회사인 ㈜삼우DTP는 고급 섬유 염색고 디지털 프린팅 분야의 선두주자다. 2009년부터 디지털 프린팅 기술(DTP)을 본격 도입하며 성장해왔다. 전통적인 염색 노하우와 첨단 DTP 기술을 융합해 천연 섬유에 정밀한 프린트와 염색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량 맞춤형부터 대량 오더까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고객 맞춤형 조색 서비스를 제공하며, 2,000종 이상의 독창적인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자체 운영 중인 디지털 텍스타일 플랫폼 ‘실크랩’을 통해 커스텀 염색 및 디지털 프린트 원단 주문 서비스를 제공,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윤호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기존 무역업체 의존형 B2B 구조에서 벗어나 엔드 바이어와 직접 소통하는 B2C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처리, 프로파일, 침투 공정 등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함께 AI 기술을 활용한 패턴 개발·데이터 관리로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남 대표는 “장비 성능이 크게 향상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소량 맞춤형 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해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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