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동일은 1950년대 전후 복구 시기, 국내 최초의 민간 면방직 기업 중 하나로 출발했다. 당시 열악한 원자재 환경 속에서도 면사와 직물을 대량 생산해 국내 의류 수요를 충족시키며 ‘섬유산업화’의 문을 열었다.
수출 1세대 효자산업으로 자리매김
1960년대 들어서는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궤를 같이하며 섬유 수출을 본격화했다. 동일방직의 제품은 동남아·중동·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며 “한국 경제의 외화벌이 효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방직공장의 방적기 소리는 산업화 시대 한국인의 귀에 가장 익숙한 성장의 소리이기도 했다.
1970년대 동일방직은 수출 확대와 설비 현대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섬유산업은 당시 국가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했는데, 동일방직은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동일방직은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며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동일방직은 단순한 면방직 제품을 넘어 원사·직물의 품질을 고급화했고, 해외 시장에서 ‘코리아 텍스타일(Korea Textile)’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부가가치화·글로벌화의 길
1980~90년대 이후 동일방직은 값싼 인건비를 앞세운 신흥국과의 경쟁에 직면했다. 이에 대응해 산업용 원사·특수사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고, 글로벌 패션·스포츠 브랜드와 협업을 확대했다.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충족하며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 진출에 성공했고, ‘품질 중심 경영’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2019년, DI동일로 새 출발
창립 64주년을 맞은 2019년, 동일방직은 ‘DI동일(DI DONGIL)’로 사명을 변경했다. 전통적인 방직 기업의 이미지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를 위해 ESG 경영을 토대로 재활용 원사, 친환경 인증 섬유 등 지속가능 섬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춘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흡습발열의 기능성 섬유인 ‘Warmfresh’ ▲흡한속건의 기능성 친환경 코튼소재 ‘TransDry’ ▲대나무를 소재로 한 ‘BamBooSil’ ▲해초를 소재로 한 ‘SeaCell’ 등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소재 개발에 주력하며 각종 의류에 상용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한 100% 무공해 재생섬유인 텐셀(Tencel)과 모달(Modal)의 소비 확산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DI동일은 섬유소재산업 뿐만 아니라, 2차전지 소재산업, 환경플랜트 및 복합소재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장 확대를 통해 기업역량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을 통해 사업 확장과 미래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8월 4일 동일알루미늄과의 합병을 완료하면서 ▲동일씨앤이 ▲디아이비즈 ▲플라즈마텍 ▲디아이시스템 ▲P.T 동일인도네시아 ▲DIB-이집트 ▲동일알루미늄-인디아 ▲동일-베트남 ▲DIVISION MARKETING PROVENCE(DMP)▲플라즈마환보유한공사 등 모두 비상장사인 총 10개의 연결대상 종속회사이자 계열사를 두고 있다.
주요 사업분야인 알루미늄 사업부문은 2차전지용 알루미늄박, 식품 및 약품 포장재, 건축재를 생산하며 DI동일의 1분기 매출(연결기준) 중 섬유 소재(53.6%) 다음으로 많은 37.9%를 차지하고 있다.
DI동일은 지난해 11월 동일알루미늄의 2대 주주였던 KB국민은행으로부터 지분 9,38%를 307억 원에 사들이면 현재 99.77%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그룹 차원의 경영 효율화를 실현하는 한편 자회사 중복 상장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함으로써 주주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I동일의 사업부문은 크게 ▲섬유소재 ▲알루미늄 ▲환경플랜트 및 복합소재 ▲가구도소매 ▲패션 등 5개로 나뉜다.
섬유소재 부문에는 ▲DI동일㈜ ▲P.T.동일인도네시아 ▲동일-베트남 ▲DIB-이집트 등 4개 회사가 있으며 섬유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DI동일은 오랜 기간 섬유제품 생산 및 영업을 바탕으로 의류의 필수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섬유종합기업이다. 다양한 국내외 원사 공급선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은 물론 안정적인 물류, 재고관리, 금융서비스를 제직, 편직, 원단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올해 시화공장(가공사)의 1일 평균 가동시간은 22시로 평균가동률 91.7%를 기록하고 있으며, 반월공장(재봉사, 자수사)의 1일 평균 가동시간은 19.7시로 평균가동률 82.1%를 기록하고 있다.
동일-베트남 법인은 2014년 4월 설립되어 COMBED, COMPACT, SLUB Yarn을 생산하고 있으며, BCI, OEKO-TEX 등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 판매를 통하여 환경보호를 실천 하고 있다.
1991년 설립된 P.T.동일인도네시아는 폴리에스터 재봉사 및 침구용 고강력사, 나일론 재봉사, 폴리에스터 자수사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그동안 적극적인 투자 및 연구로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과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여, 고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DIB-이집트는 1997년 10월 카이로에 설립한 이집트 현지법인으로, 주로 면직물 및 의류 생산과 수출을 담당하며, 2005년에는 이집트 국영 방직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알루미늄 부문에는 ▲DI동일㈜ ▲디아이시스템㈜ ▲동일알루미늄 인디아 등 3개 회사가 있으며, 알루미늄제품, 열교환기 등을 제조·판매한다.
DI동일 알루미늄사업부문은 1989년 설립된 국내 알루미늄 박 시장의 선두주자로 2차전지용 알루미늄박, 식품포장재, 건자재, 에어컨 자동차 핀재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2차전지 시장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충북 청주하이테크밸리 산업단지내 5만3554㎡(약 1만6200평) 부지 규모의 소재 전용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디아이시스템은 에어컨 열교환기 생산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열교환기 사업영역을 확보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사업 분야를 확대하고 신성장 동력구축으로 열교환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일알루미늄-인디아는 과거 DI동일이 에어컨용 열교환기의 해외시장 개척을 목적으로 출자하여 2004년 설립됐다.
인도 MUMBAI시 인근 PUNE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년 상반기 공장 및 설비투자가 완료되어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현재 열교환기 3개 생산라인을 설치 가동 중에 있으며, 인도 내수시장에 열교환기를 판매하고 있다.
환경 플랜트 및 복합소재 부문에는 ▲㈜동일씨앤이 ▲플라즈마텍㈜ ▲플라즈마환보유한공사 등 3개 회사가 있으며, 기체여과기와 환경오염방지시설을 제조해 판매한다.
동일씨앤이는 환경 플랜트 및 복합소재 전문업체로 환경오염방지시설의 제작부터 시공까지 완벽한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라즈마텍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생산공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및 유해백연을 플라즈마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습식전기집진설비 제조기술과 플라즈마를 활용한 POU Scrubber 제조기술(소형화, 규격화), MLCC용 나노파우더 생산 설비 등을 제작, 설치, 납품하고 있다. 플라즈마환보유한공사는 환경오염방지 시설을 제조하고 있다.
가구 부문의 ㈜디아이비즈는 65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전 세계 60여 개국에 3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덴마크 모던 디자인 가구 브랜드 BoConcept과 이탈리아 하이엔드 가구 및 오브제 브랜드를 전개하는 LIA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패션 부문의 ㈜동일라코스테는 프랑스의 라코스테(LACOSTE OPERATIONS S.A.)와 DI동일이 각각 50%의 지분으로 공동지배하는 회사로 피케 폴로셔츠로 유명한 프랑스 프리미엄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LACOSTE)의 남성복과 여성복, 가방, 신발 등을 국내 패션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에서 친환경·혁신 향해 제2의 도약
DI동일의 70년은 단순한 기업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섬유산업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동일방직 시절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수출산업화 시대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며, 사명 변경을 계기로 친환경·혁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DI동일은 한국 방직산업의 상징적 기업이자 산업화 시대와 미래 혁신을 잇는 연결고리”라며 “그 역사 자체가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라고 평가한다.
DI동일의 CI에서 DI를 감싸고 있는 ‘ㄷ’은 동일의 첫 자음으로 넓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며, DI동일이 힘차게 뻗어 나갈 진취적인 기상과 글로벌 기업으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동일그룹의 기업철학은 ‘인간존중’ ‘정도경영’ ‘가치창조’다. 이는 인간의 풍요로운 생활 창조와 튼튼한 경영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적이며, 혁신적인 사업 추진을 의미한다. DI동일은 창립 7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며, 더 큰 도전에 나서고 있다.
국내 섬유산업 토대 다진 산증인 DI동일 창업자 정헌 서정익
DI동일의 창업자 정헌(靜軒) 서정익은 국내 섬유산업의 토대를 다진 산증인이다. 정헌은 1932년 일본 나고야(名古屋) 고등공업학교 방직과(紡織科)를 졸업하고, 1933년 인천에 설립된 동양방적공사(東洋紡織)에 창설 사원으로 입사했다.
동양방적공사는 1932년 인천부(仁川府)의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 만석동 해안 일대를 매립하여 1934년에 인천공장을 준공했다. 약 1,200명에 달하는 인원을 모집할 만큼 대규모의 공장이었다.
결혼 후 중국에 본사를 둔 일본 국책회사 북지개발공사에 근무하기도 했으나 1946년 광복과 더불어 인천으로 돌아와 당시 상공부로부터 국유관리기업체인 동양방적공사의 차장으로 복직하여 공장장과 이사를 거쳐 1949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복직 당시 방직기술에 통달한 방직기술인이 드문 때여서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에서 방직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사장 재임시절이던 1951년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1.4 후퇴 때 사변에도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동양방적공사 1만추를 부산에서 가져다 동아방직을 설립했는데 훗날 이 시설은 내외방의 모체가 됐다.
6·25 전란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1955년에 정부의 국유관리업체 민영화 정책에 따라 동양방적공사를 불하받아 동양방직㈜을 9월 1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사세를 계속 확장시켜 1960년에는 동인염색가공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의류 염색 분야에도 기술향상과 양산화를 꾀했다.
평소 대주주가 주식을 독점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오던 정헌은 동양방직 설립 당시 92.3%의 주식을 보유했는데 직원들의 애사심으로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돌파하자 임원진에 32.5%, 유공사원 34명에 9.85%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본인은 32.5%만 가졌다. 동양방직은 196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국내기업 중 16번째로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며 1966년 1월에 상호를 ‘동일방직㈜’로 변경했다.
한국 최초 ‘섬유 전문 엔지니어’
정헌은 한국 섬유업계를 대표하는 엔지니어 출신답게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선도했다. 1955년 솔선해서 직물 가공공장인 동인천공장을 설립했고, 1969년에는 안양공장을 건설, 가공시스템을 도입하여 방적부터 가공사까지 일관생산 체제를 갖춰 재봉사를 다양하게 개발해 국산화하는 등 수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특히 안양공장은 정헌의 필생의 작품이자 자부심으로 인천공장처럼 일본의 적산을 불하받지 않았기에 모든 정열을 쏟아 자신이 염원하고 구상해오던 것들을 완성시켰다. 당시 안양공장의 일관생산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후일 대우그룹의 의류제조 수출이 아예 불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969년에는 수출의 날에서 신장률과 시장 개척의 공을 인정받으며 국내 16개 방직공장 중에서 유일하게 유공훈장인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방직업체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케냐와 나이지리아 시장을 개척해 면포, 면사 등을 수출했는데 1961년 수출 첫해 25만 불에 이어 매년 100% 신장률을 보이며 1969년에는 300만 불 이상을 수출했다.
‘협동’과 ‘창의’를 모토로 경영에 정진해온 정헌은 1962년 제9대 대한방직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었다. 이사장 재임 기간 몸을 아끼지 않고 자기 사업보다는 섬유산업 전체의 문제 해결을 더욱 중요시하고 우선해야 한다는 훌륭한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때로는 서로 엇갈리던 동업자 간의 문제가 아무리 어려웠어도 언제나 온화스러운 미소와 여유 있는 태도, 문제 해결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업계를 지도해왔다. 훗날 장남인 서민석 회장이 26대, 29대 회장을 역임했고, 장손인 서태원 부회장이 2023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어 3대가 회장(이사장)직을 수행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정헌은 국내 기업인들의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의 신망도 두터웠다. 1963년 10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인과의 합작으로 모방업계와 면방업계 22인이 공동 참여한 국내 최초의 폴리에스터 생산업체 대한합성섬유㈜(現 대한화섬)를 설립을 주도하며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새로 등장한 폴리에스터는 강도, 내마모성, 탄력성, 열고정성, 촉감 등에서 다른 화학섬유보다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이미 의류용은 물론 산업용으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급증하는 수요량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정헌은 우리나라 화섬시대의 막을 연 개척자이자 선구자로 이런 상황을 일찍부터 예견하며 화섬의 국내 생산, 개발에 전력해왔다. 한편으로는 화섬이 동일방직 단독으로는 힘겨운 사업이라는 것을 항상 강조하며, 섬유업계의 공동과제라는 점을 업계에 일깨우고 격려했다.
미국 켐텍스(Chemtex)사와 합작했지만 공동 투자에서 오는 경영의 난맥과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설립 5년 만인 1968년 3월 부산 반여공장에서 하루 6톤 생산량의 폴리에스터 스테이플 방사설비를 구축하고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폴리에스터는 섬유산업의 플라스틱이라 불릴 만큼 유망 섬유 원료로 가장 각광받던 소재였다. 1963년 대한합성섬유 설립 당시에도 면방업자들은 면방업자들대로 모방업자들은 모방업자들대로 공장 추진을 서둘러 공장이 두 개가 생길 상황이었지만 합의를 이끌어 하나의 공장으로 만들어졌다.
대한합성섬유 설립 당시 제일모직 사장으로 20%를 투자한 성상영 대성모방 사장이 1968년 제11회 증자 때 증자분의 50%를 초과하는 8천5백70만 원을 불입해 15만 주중 8만5천7백주로 33명의 주주 중 제1위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동일방직이 5만6천주로 2위, 경성방직과 전남방직이 각 5만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면방업계가 자금난으로 한창 어려울 시기라 증자를 포기했다.
화섬시대 도래로 대한합성섬유는 미래가 약속된 기업이었지만 정헌은 공장 건설 지연 사태, 품질 불량, 투자자의 기피 등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일과성 뇌허혈성 뇌졸중이 발병해 사장직을 사양했고, 그러면서 성상영 대성모방 사장이 대한합성섬유 대주주이자 사장으로 실권을 갖게 되었고 정헌은 회장으로 물러앉게 된다.
성상영 사장이 운영하던 대한합성섬유는 이후 1968년 지금의 사명인 대한화섬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폴리에스터가 수입대체 산업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삼양사, 선경합섬 같은 후발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어려움을 겪다 1975년 태광산업이 인수 경쟁에서 효성을 이기면서 대한화섬을 인수하게 된다.
한국 최초 ‘섬유 전문 엔지니어’로 평가받는 정헌은 1973년 5월 25일 서울 성동구 신당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였다. 다음 해인 1974년 4월 동일방직 인천공장 정원에 정헌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손에 관사(cop)를 쥐고 있는 정헌의 동상은 너비 90cm 길이 3m로 한국 구상조각의 거장 백문기 조각가(이대 교수)에 의해 세워졌다.
1979년에는 DI동일과 정헌의 부인 이영숙여사의 사재를 출연 받아 정헌재단을 설립했다. 정헌재단은 설립 이후 장학금, 연구비, 문화예술 지원 등 각종 지원금으로 약 70여 억 원을 지급 했으며, 수혜자는 약 3,0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섬유업계 중추적 역할 담당
동일방직은 1970년대 초부터 면 80수, 100수, 120수 등 극세번수 생산 및 신소재 기술개발을 통하여 제품의 다양화, 고급화, 기능 강화에 주력해왔다. 제직 부문에서는 다양한 직물을 개발, 생산하여 의생활을 향상시켜 국내 섬유업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1971년부터는 재봉사의 국내 판매 전개와 홍콩지사를 중심으로 해외 판매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홍콩 시장에 재봉사와 심지를 선보였다. 소량 주문으로 만족할 만한 실적이 없었던 동남아 시장도 1973년부터는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 재봉사 중심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정헌의 천거로 1973년 동일방직 2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출된 정종화 사장은 1978년까지 5년 동안 동일방직의 매출액과 수출액의 경이적인 신장을 가져왔으며, 안양공장 확장, 계열사 설립 및 투자 등 사세 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당시 한국 유일의 KS 표시 제품이자 해외시장에 수출되는 국내 최초의 재봉용 실을 표방하는 동일방직의 마라톤표 재봉사는 매출액의 20% 이상을 점유하기도 했다. 또한, 전국대리점 확대 정책으로 서울의 대영상사와 동일상사를 승계한 마라톤상사와 부산 삼염상사, 마산 정한상사, 대구 대일상사, 대전 공영상사, 인천 대진상회, 그리고 뜨개실 총판으로 서울의 쌍마기업 등 모두 8개 대리점을 확보해 내수시장의 기반을 확고히 구축했다.
1973년부터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해온 결과 1976년 중소 P/C봉사 생산업체인 동영㈜을 인수로 P/C봉사 시장점유율을 80%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1973년 48만 달러, 1974년 110만 달러, 1975년 105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게 되었으며, 수출 이익률도 1973년의 경우 50% 이상으로 유망 수출품으로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마라톤 재봉사의 트레이드마크인 ‘횃불’이 외국 바이어 사이에는 ‘Torch’로 불리게 되어 상표등록까지 하게 되었다. 1974년에는 태남산업을 인수하면서 조직을 확대하였다.
1979년 이란 FTC(Foreign Trading Corporation) 입찰방식에 의한 재봉사 14만 달러어치 수출을 시작으로 이란의 재봉사 구입은 2차, 3차, 4차인 1974년까지 동일방직의 독무대로 이어졌다.
호메이니의 집권 후 TPDC를 통한 입찰도 1, 2, 3차 모두 낙찰되어 그 물동량은 점차 늘어났고 아울러 수단 조달부국의 입찰에도 참여, 1978년 3월 재봉사 13만 달러에 이어 1980년에 2차로 25만 4,000달러를 수출하는 등 국제적인 입찰에서 동일방직의 가치를 확고히 했다.
이와 더불어 수출시장도 다변화하여 중남미, 호주, 아프리카 등지에 마라톤 브랜드를 확산시켰으며 1981년에는 660만 달러의 직수출 실적을 올렸다.
동일방직의 매출은 1977년의 271억 원에서 1979년에는 349억 원, 1980년 473억 원, 1981년 572억 원의 실적으로 신장세를 나타냈으며, 수출도 크게 늘어나 1980년 5,600만 달러에 이어 1981년에는 6,300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수요자의 패션 경향에 따라 독자적인 선염가공 기술을 만들어낸 ‘마라톤’ 선염사, 비단 같은 광택과 매듭이 적고 유연성이 좋아 높은 편직성을 자랑하는 최고급 실켓사인 ‘실크라운’과 ‘콘실사’는 바로 전통 있는 동일방직의 대표 품목들이 되었다.
1970년대 초부터 극세번수 생산 및 신소재 기술개발을 통하여 제품의 다양화, 고급화, 기능 강화에 주력한 결과 ▲신소재 기능성 섬유인 Coolmax ▲환경친화적 섬유인 Lyocell ▲가볍고 보온성이 탁월한 Air-rich 등은 동일방직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70년간 이어온 ‘전통과 혁신의 조화’ 서민석 회장 든든한 버팀목 역할
DI동일 서민석 회장은 오너 2세 경영자로 한국 섬유산업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민석 회장은 1943년 정헌의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 경기고등학교와 1966년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동일방직에 입사해 무역과장, 차장, 기획조사실장을 거쳐 1973년 2월 주총에서 이사로 취임한 후 1978년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1982년 홍콩사무소를 개설하여 해외시장으로도 진출했으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1985년 청주공장을 신설했다. 1989년 사업다각화 목적으로 동일알루미늄을 설립해 비철금속업종인 알루미늄사업에 진출했다.
1991년 인도네시아에 현지법인 P.T.동일인도네시아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해외 생산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장항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997년에는 동일Y&K 전신인 삼리염직을 인수하고 이집트 현지법인 DIB-이집트를 설립해 민영화 대상 국영 방직공장을 10년간 임대 후 2005년 700만 달러에 지분을 100% 인수했다.
2000년에는 동일드방레를 설립하여, 패션브랜드 라코스테를 유통하고, 2004년에 동일알루미늄 인디아 법인도 설립하여 현재 열교환기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2014년 동명길광을 인수하여 동일씨앤이를 설립하였고, 인도네시아와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 해외 진출로 베트남 법인을 설립했다.
서민석 회장은 경영체질 선진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부문별 Profit 센터를 구축하고 생산혁신, 품질혁신 활동을 전개해 장항공장의 생산성이 업계 1위를 유지하고, 품질경쟁력을 세계수준인 USTER기준 상위 5%이내에 포함되는 수준으로 향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제33회 상공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또한, R&D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여 신기술 차별화 제품, 첨단 기능성 제품을 계속 개발해 특화된 부가가치 제품을 상품화함으로써 동종업계를 선도하는 리더역할을 해왔다. 이집트에 정방기 53,000추 규모의 현지법인을 설립, 중동 및 EU 지역 등에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섬유선진국 등에 수출확대를 위한 마케팅기지를 마련하여 제품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고부가가치 제품의 시장개척을 실천해왔다.
이외에도 대한방직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국제섬유제품제조업자연합회(ITMF)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섬유업체와의 기술 교류, 정보교환, 수급조절 협의 등으로 위상 강화 및 국위 선양에도 크게 이바지해왔다.
같은 해 제20회 섬유의 날에서 섬유업계 사상 최초로 동일방직 이항평 사장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꾸준한 설비투자 단행과 동일섬유연구소를 통해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서 최고 성적을 내는 등 세계적 수준의 품질을 인정받았으며, 특히 신제품으로 출시된 염착성이 우수한 아크릴계 흡습발열 섬유가 최적의 기능성 소재로 평가를 받은 점에서 공적을 인정받았다.
동일방직은 2007년 5월 경제적 성장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할 것을 다짐하며, 이해관계자인 고객, 주주, 협력사 및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자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COP)에 가입하여 인권, 노동규칙, 환경, 반부패의 4개 분야 10대 원칙을 준수해 왔다.
상공명가 5대 명맥 100년 기업으로 서태원 부회장 첨단소재기업 청사진
2021년 동일방직에서 사명을 변경한 DI동일은 현재 서태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 체제로 운영 중이다. 지난 2019년 오너 2세인 서민석 회장이 41년 만에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아들인 서태원 부회장이 입사 11년 만에 대표이사직에 올라 고조부 때부터 이어온 상공명가의 5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태원 부회장은 최근 전기차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를 겨냥해 2차전지용 양극박 분야 국내 1위인 동일알루미늄을 흡수 합병하며 70년 역사를 가진 1세대 섬유기업에서 축적한 소재 기술과 생산 역량을 기반으로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을 갖춘 이차전지 등 고부가가치 첨단소재 중심 회사로의 청사진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DI동일의 섬유사업부문 별도 매출액은 2955억 원, 영업이익은 12억 원, 같은 기간 동일알루미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910억 원, 53억 원에 달해 이번 합병으로 단순 합산 시 DI동일의 매출액은 4868억 원, 영업이익은 65억 원까지 각각 늘어날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전통 섬유기업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차세대 에너지 소재와 친환경 산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서태원 부회장의 구상이 DI동일의 100년 기업 도약에 주춧돌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민석 회장이 쌓아온 정도 경영과 신뢰 기반의 경영 철학이, 서태원 부회장이 제시하는 첨단소재 중심 청사진과 시너지를 이루며 DI동일의 100년 기업 비전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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