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우회 수단으로 ‘퍼스트 세일 룰(First Sale Rule)’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CNBC의 5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퍼스트 세일 룰은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인 2018년 대중국 25% 관세 부과로 관세우회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관세 정책으로 다시 한 번 조명 받고 있다.
‘퍼스트 세일 룰’은 1988년부터 시행 중인 미국 세관법 조항으로, 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의 과세가격을 결정할 때 사용되는 규정이다. 즉 최초 구입가격에 따라 관세를 책정하는 조항이다. 이는 수입업자가 마지막 판매가격이 아닌 처음 판매 가격을 세관에 신고해 관세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즉 첫 판매가격을 활용해 과세 가격을 낮추고 관세 절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제조업체가 대미 수출 시에는 사용할 수 없고 제3자 무역관계 시 적용된다. 한국 내 무역업체, 에이전트 또는 미국 내 자사 지장사의 경우 대미 수출품의 관세를 절감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중국 공장에서 만든 티셔츠가 5달러에 홍콩 중간 유통업자에게 판매되고 이후 이 중간업자가 미국 소매업자에게 10달러에 재판매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미국 소비자에게 40달러에 팔려도 미국 세관은 기본적으로 10달러를 기준으로 관세를 매긴다. 이 때 퍼스트 세일 룰을 적용하면 최초 판매가인 5달러를 기준으로 관세를 산정할 수 있어 수입업자는 상당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로펌 Miller & Chevalier Chartered의 브라이언 글라이허(Brian Gleicher) 수석 변호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제도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공장과 유통업자 간 거래가격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중간 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마진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퍼스트 세일 룰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충족 요건이 있다. ▲해외 생산자와 중간 판매자 간 최소 두 건 이상의 독립된 판매 거래가 있어야 하며, 이 거래들이 서로 무관한 제3자 간의 정상적인 거래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해당 물품이 미국 수입용이라는 사실과 최초 판매가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래 상대방이 최초 가격 정보 공개를 꺼려야 할 경우 수입자가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제조원가와 소매가격 간 격차 큰 상품군에 유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세일 룰은 고가 소비재나 명품처럼 제조원가와 소매가격 간 격차가 큰 상품군에서 특히 유용하다는 평가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는 4월 16일 실적 발표 당시 “퍼스트 세일 룰을 통해 비용 구조에 큰 이점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루치아노 산텔 몽클레르 최고기업책임자(CCSO)는 “공장도 기준 가격은 소매가에 비해 절반 수준이고, 중간 거래가보다도 낮아 매우 큰 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스위스 제약기업 쿠로스 바이오사이언스는 5월 13일 실적 발표에서 자사의 공급망 거점을 취리히로 옮기며 퍼스트 세일 룰 적용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으며, 미국 바비큐 제조업체 트레이거와 제조 스타트업 픽티브도 각각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이 제도를 ‘공급망 리스크 완화’ 또는 ‘관세 절감 수단’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퍼스트 세일 룰은 합법적인 제도지만 관세 수입 확대와 제조업 회귀(리쇼어링)를 장려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수출업체, 마진 노출 우려해 활용 기피 한국 수출업체가 미국 바이어로부터 오더를 받아 생산자(한국, 중국 등 소재 위치와 관계없음)에게 생산(하청)을 하고 수출할 경우 퍼스트 세일 룰이 성립된다. 단 생산 공장이 한국 수출업체의 본 공장일 경우는 매부자 거래로 인정되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미국 통상관련 변호사들은 판단하고 있다.
퍼스트 세일 룰은 생산자가 한국 수출업체에게 발행한 송장금액(Invoice Amount)이다. 생산자 인보이스를 칭한다. 미국 세관의 관세 책정법은 ‘수입품 가격×관세율’로, 이 부분에서 제3자 무역을 하는 업체들은 수입품 가격을 중간업체들의 실제 구입가격으로 대체시켜 관세를 절약할 수 있다.
미국 바이어는 한국 수출업체에게 한국 수출업체가 발행한 인보이스 금액을 지급하지만 수입 통관 시 생산자가 한국 수출업체에게 발행한 인보이스(First sale)를 기준으로 통관하기 때문에 한국 수출업체가 중간에서 취한 이익에 대한 관세를 절약할 수 있다. 섬유제품이 가장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어 섬유제품 수입 시 많이 사용되고 있다.
※ 섬유제품 관세 절약 예시1) 면의류(셔츠 및 바지류) 경우 중간 수출업체의 마진을 최대 15%로 볼 때 관세율이 16.5%이기 때문에 2.475%(15%×16.5%)의 관세를 절약할 수 있다. 한국산 가격 경쟁력이 2.475% 생겨남. 예시2) 폴리에스터 제품의 경우 관세율이 평균 32%이기 때문에 바이어는 4.8%(15%×32%)를 절약할 수 있다. 한국산 가격경쟁력이 4.8% 생겨난다.
그러나 한국 수출업체들은 퍼스트 세일 룰 활용을 꺼려한다. 우선 한국 수출업체들의 마진이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바이어들은 이미 중간 수출업체들의 마진율을 알고 있어 노출되지 않는다. 만일 모르고 있다 해도 12~15%마진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노출이 돼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유는 수출업체들이 중간에서 은행 수수료, 파이낸싱, 출장 경비, 품질관리, 회사 운영비 등을 부담해야 제대로 오더를 처리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들은 수출업체와 이미 FOB 가격으로 합의된 가격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중간 수출업체 마진에 관심이 많지 않다. 만일 20% 이상의 높은 마진을 취해도 품질관리와 딜리버리 등 모든 진행사항이 만족스러울 경우 이를 빌미로 FOB 가격을 낮추자고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음으로는 생산자 정보가 노출되어 미국 바이어가 생산자와 직거래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바이어와 직접 거래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 능력, 마케팅 능력, 제품 개발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있는 중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 바이어와 직접 거래하고 있다.
한국 수출업체로부터 생산 오더를 받는 중국 생산자들은 금융, 마케팅, 무역업무, 커뮤니케이션, 제품 개발 등의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생산자 정보가 노출돼도 미국 바이어가 직접 거래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다. 존 레너드 前 CBP 무역부 부국장보, “한 수출기업, 퍼스트 세일 룰 활용” 권유
한국패션협회 주최로 열린 ‘관세 컨퍼런스’에 참석한 존 레너드(John Leonard) 前 미국관세국경보호국(CBP) 무역부 부국장보는 “현재 많은 의류업체들이 입력하는 물품의 가치를 법적인 한도 내지 법적 테두리 안에서 낮추기 위해 이에 따라 관세를 적게 납부하는 방법을 지금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First Sale’이라는 제도는 특히 의류사업에서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는 그 수입자가 실제로 수입하는 가격이 아니라 또 그 보다 낮은 가격인 예를 들어서 해외 공장에서 수출자에게 판매된 그 First sale value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한 번 검토해보는 것을 추천 드린다”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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