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구속이었다. 함정웅 전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이 3월30일 대구교도소에 전격 수감됐다. 17년간 대구섬유업계는 물론 한국 섬유산업을 좌지우지(?)한 함정웅씨이기에 그의 구속은 대구경북과 섬유업계를 온통 들쑤셔 놨다.
1992년 대구섬유산업을 위기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끌겠다는 포부로 대구염색공단 이사장에 취임한지 17년만인 2009년 자리를 내놓았으나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담았던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직은 꼭 유지한 채 차디찬 감옥으로 갔다. 그가 구속된 3월30일은 우연이라고 돌리기엔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함정웅 전 이사장이 대구염색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1992년 3월30일로부터 꼭 19년 만의일이다. 같은 날에 영광과 굴욕을 맛본 것이다. 1994년 12월 20일 산자부로부터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설립허가가 나면서 대구염색공단 이사장 함정웅씨는 섬유업계의 기린아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게 오늘의 함이사장 암운의 시작이다. 염색기술연구소는 당시 채병하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이 김영삼대통령의 대구상의 방문시 설립의 필요성을 건의하고 조해녕시장의 30억 원 특별자금 청탁으로 95년 6월16일 건설에 들어가, 97년 1월27일 준공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지원한 6800억 원 규모 밀라노프로젝트 자금이 대구염색공단 이사장과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에 있던 함정웅씨 손에서 휘둘리게 된다. 그는 이것도 모자라 비자금 창구로 공단을 활용한다. 당시 함정웅 이사장의 말이면 정부 기업등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치권과 법조계, 공무원, 언론계 등등 그의 몸이 움직이면 무엇이든지 해결이 되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의혹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의 힘이 아직도 작용했다는게 일반적인 정서다. 세월은 흘러 이제 그의 시대는 부끄러운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함 이사장의 그날 밤은 참으로 괴로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 아부 아닌 아부를 펼쳤을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구속을 지켜봤을 정황은 이를 웅변한다. 앞으로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원죄의 대부분은 함정웅씨의 몫으로 돌아갈게 뻔하다. 세상의 정리가 그렇다. 누구도 나서서 함정웅씨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고 나설 사람은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의 승리였고 잘못된 것은 누구가 보아도 잘못 그 자체였다. 대구섬유산업이 최근 재도약의 기운을 얻으면서 힘을 모아 나가는 시기에 함 이사장의 구속은 얼핏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자신만의 힘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해 나가는 대구 섬유산업 발전의 쓰디쓴 약이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때다.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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