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섬유 ‘메인드 인 코리아’ 길 열렸다

민관군 합동위원회, 국산화 전제 군복의류 체계 개선 나서
원사‧제직‧염색‧봉제 스트림 컨소시엄 구성 입찰 방식 변경
업계 갈등 해소와 수요자 우선의 획기적인 조달 체계 리셋

TIN뉴스 | 기사입력 2021/10/13 [12:04]

▲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관군 합동위원회 대국민 보고 및 해단식에서 공동위원장인 서욱 국방부 장관(왼쪽)과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TIN뉴스

 

연간 500억 원대의 전투복을 포함해 방한피복, 정복, 체육복 등 연간 6,800억 원이 넘는 각종 군 피복류 조달시장에서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던 국방섬유 국산화의 길이 열리면서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둔 섬유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아울러 경찰복·소방복 등 공공부문 근무복 소재의 국산화 확대는 물론 더 나아가 해외 수출까지 이어져 코로나로 어려워진 섬유산업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지 기대감도 몰리고 있다.

 

병영문화 혁신을 위해 지난 6월 말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합동위’)는 10월 13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병영문화 개선 종합대책 대국민 보고회를 개최하고 섬유가 들어간 모든 군수품의 국내생산을 원칙을 전제로 한 장병 피복 착용체계(Layering System) 및 군 피복류 조달체계 개선을 위한 대책안을 발표했다.  

 

中企간 경쟁제품 조항 없애

대기업 참여 및 국내 OEM 가능

 

병영생활 만족도 향상을 위한 고품질 피복․침구류 보급을 목표로 이날 발표한 대책안에는 장병들이 선호하는 고기능성 및 착용감이 좋은 피복류가 보급될 수 있게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국한되어 있던 입찰 규제를 폐지했으며, 대기업까지 참여폭을 확대해 중견‧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OEM 방식의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대기업 허용에 대해 중소기업의 반발이 우려됐으나 국방섬유 국산화라는 큰 틀 아래 컨소시엄 구성이 확대되면 오히려 더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더 크다는 점에서 국방부와 중기청이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국방부와 환경부의 폐PET병 재활용 시범사업을 통해 투명 PET병으로 만든 기능성 운동복을 시범 구매하는 등 대기업 같은 민간기업이 참여한 성공사례도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선 대책안으로 대기업 참여가 허용되면 노스페이스나 네파 등의 아웃도어 업체에서 만든 방한복이나 BYC나 쌍방울 등 내의업체에서 만든 속옷까지 고품질의 다양한 제품을 장병들이 제공받을 수 있고 또 선택의 폭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투복 입찰 방식도 개선됐다. 국내에 생산 기반을 둔 원사방적-제직-염색가공-봉제 밸류체인(Value Chain) 4개 스트림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계약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경쟁 과열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데 힘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경쟁 제약 및 기술발전 저해의 원인이 되는 관련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이․보훈단체의 피복류 수의계약은 점진적으로 줄이고 대체 지원 방안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 프리뷰인대구 2018을 찾은 주행식 당시 육군본부 전력지원체계사업단장이 한국섬유개발연구원 홍성학 국방섬유사업총괄에게 원단과 관련해 질문을 하고 있다.  © TIN뉴스

 

국방규격 간소화로

고품질 고기능 IT 접목 등 기술혁신 기대

 

또한 일반 피복류의 국방규격을 현실에 맞게 간소화해 필수규격만 반영하여 다수의 공급자 계약(MAS)으로 조달해 상용화의 폭을 넓혀 전반적으로 군 생활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착용감에 대한 문제가 있어도 전시 동원 품목의 특성상 정부에서 정해준 국방규격에 따라 제작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이외에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해 IT 스마트 같은 최첨단 기술이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고기능성의 첨단 섬유 소재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제품의 제안도 활발해져 차세대 국방력 강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개선 대책안에 따라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고기능성의 첨단 섬유 소재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제품의 제안도 활발해져 차세대 국방력 강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TIN뉴스

  

또 피복 선택권 보장을 위해 현금(성) 지원도 추진해 면도기, 면도날은 현금으로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런닝, 팬티, 면 수건은 쿠폰 형태로 지급하며 상병 진급 시 현품 1회에 한해 보충 보급하도록 했다.

 

이번 합동위의 개선 대책안 추진 배경에는 좋은 민간제품을 사용하다가 입대한 장병들이 복잡한 사양에 맞춰 조달하는 군용물자의 품질에 불만족하고 또 비리,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업체를 입찰하지 못하게 제재한다 하더라도 집행정지 가처분 제도를 악용하여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은 점에 있다.  

 

전투복 등 군 피복류 같은 군수품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국내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최종 공정만 국내에서 이루어지면 국내 생산품에 해당한다는 허점과 최저가 입찰제도 탓에 대부분 중국, 베트남 등 외국산 원사·원단을 수입한 후 국내에서 제작해 군에 납품해왔다.

 

값싼 해외 원단을 수입해 국내에서 임가공이 가능하도록 변경된 것에 배경에는 업계 로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공물품 조달에 참여한 업체들이 값싼 외국산을 국산으로 속이고 기준 규격에 못 미치는 질 낮은 원단으로 제작한 불량 제품을 납품하는 등 문제가 계속 끊이지 않았다.

 

또 국내기업이지만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가 입찰하는 등 교묘히 법망을 피하거나 편법을 악용하면서 오히려 법을 지키는 기업들만 피해를 받는다는 불평도 많았다.

 

그동안 국방부, 군과 방위사업청은 군용물자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개선을 추진해왔으나 여전히 업체들의 비리나 담합 등으로 인해 장병들이 입고 먹는 군용물자는 품질이 낮다는 인식이 잦아들지 않았다.

 

▲ 2015년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관계자가 무단으로 제작된 신형 전투복 원단을 들어보이고 있다. © TIN뉴스

 

특히 중국산으로 국내 홈쇼핑에서 팔린 의류가 실제는 북한 봉제공장에서 만들어져 대북제재 위반 문제가 제기된 된 바도 있다. 군 피복류에 사용하는 중국산 원단 역시 북한에서 만들어졌다는 의심을 완벽히 지울 수는 없는 만큼 입찰 조건에서 국내 생산 기반은 반드시 적용될 사항으로 이번 위원회에서 논의되어 왔다.

 

무엇보다 국내 섬유산업의 숙원사업이었던 국방섬유의 국산화는 전략물자의 품질과 공급 안정은 물론 관련 산업의 국내 생산기반 강화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등 자주국방과 국내 산업발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식량, 의복, 텐트, 섬유제품 등 특정 제품을 구매 시 미국산 구매를 의무화한 베리수정법(Berry Amendment)을 시행하고 의복의 경우 소재까지 미국산을 요구하고 있다.

 

▲ 2018년 3월 2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국방섬유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정책 토론회에서 군과 섬유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TIN뉴스

  

국내에서도 국방섬유 국산화 입법 추진을 위해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대한방직협회, 한국화학섬유협회 등 관련 업계와 단체들을 중심으로 2009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예산 문제 등 방사청의 반대 속에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며 번번이 실패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국회 입법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은 법안을 책정해 실질적으로 상정이 불가했거나 입법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명분 쌓기나 체면 세우기 위한 수단에 이용됐다며, 진정성에 대한 의심과 노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국내 섬유업계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오자 최근에 다시 섬산련 등 섬유업계가 국방섬유 국산화 추진을 위한 국산소재 활성화 위원회를 발족하고 국산섬유소재 인증제도를 운영하는 등 해결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전투복을 만드는 섬유·원단 수입 차질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방섬유의 국산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올해부터 첫 시범사업으로 전투복 10% 정도에 한해 국산화를 추진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참여 문턱 낮추고 공정 경쟁구조로

장병 생활여건 개선 이바지

 

▲ 10월 13일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관군 합동위원회 대국민 보고 및 해단식에서 공동위원장인 서욱 국방부 장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비롯해 박재민 국방부 차관,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박인호 공군참모총장,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TIN뉴스

  

합동위는 2014년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이후 7년 만에 민관군이 함께 참여하는 형식의 위원회로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민간이 참여하는 병영문화 개선 대책 기구다.

 

박은정 前 국민권익위원장과 서욱 국방부 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장병 인권보호 및 조직문화 개선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개선 ▲장병 생활여건 개선 ▲군 사법제도 개선 등 4개 분과에 민간전문가, 시민단체 등 80명의 위원들을 구성해 대책을 논의해왔다.

 

이중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는 그동안 장병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생활여건을 향상시키고 근무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의를 갖고 문제를 집중 논의해왔다. 급식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주요 이슈가 됐지만 의식주의 식만 문제가 아니라 의도 문제라는데 국방부와 위원들이 공감하면서 피복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 9월 15일 임시회의에서는 많은 피복을 겹쳐 입고 있음에도 충분한 보온력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겨울철 피복 착용 개수를 9겹에서 6겹으로 줄이면서도 보온력과 기능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개선했다.

 

특히 기존 ‘방상내피’(일명 ‘깔깔이’)를 환절기 및 봄과 가을에 착용할 수 있도록 가벼우면서도 일정수준 보온력을 갖춘 경량 보온재킷으로 대체 보급하는 ‘장병 피복착용체계 개선’ 안건을 권고하도록 의결한 바 있다.

 

또 지난 7월 21일 제2차 정기회의에서는 ‘장병 선호 침구류 교체 추진’으로 현재 실내와 야전에서 병용하고 있는 만족도가 낮은 모포 형태 침구류의 장병 만족도 향상 및 위생여건 개선을 위해 육군․해병대 침구류를 상용 침구류로 교체하고, 야전숙영용 4계절 침낭을 보급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적극 확보해 나가는 것을 과제로 상정했다. 

 

▲ 민관군 합동위원회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 위원(섬유∙의류 전문가)으로 참여한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박은정 공동위원장과 함께 장병들의 생활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군부대를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 ©TIN뉴스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에 위원(섬유∙의류 전문가)으로 참여한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섬유산업 관련 기관들이 국방섬유 국산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입법 과정에서 번번이 무산됐다”며 “이번 합동위에서는 국방부가 직접 중기청, 조달청, 보훈처 등 이해관계 기관들을 수차례 설득하고 이해시켜 국방섬유 국산화를 처음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산화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턱도 낮아진 만큼 국내 섬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20년간 군 피복류 조달체계는 스트림간 이익 창출을 두고 벌어진 이해상충으로 업계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군 조달체계를 악용해 8개 업체가 1~5년 사이에 군에 납품한 182억 원 규모에 달하는 불량 제품을 납품해 애꿎은 장병들만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2개 업체가 납품한 봄·가을 활동복은 납품 기준보다 변형과 변색이 빨랐으며, 5개 업체가 납품한 여름 활동복은 땀 흡수가 잘 안되거나 쉽게 찢어지는 등 원단에 이상이 발견됐다.

 

이런 점에서 합동위가 발표한 개선 대책안은 라벨갈이, 불량 납품, 담합 등 지금까지의 불합리한 조달체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리셋하는 획기적인 개선안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대책안은 국방부에 권고사항으로 제출돼 올해는 재고 소진과 기존의 시범사업으로 계속 추진된다. 장관 고시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국내 섬유산업의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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