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패션산업에 대한 분석과 정책의 오류들

[칼럼] 심상보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TIN뉴스 | 기사입력 2020/02/17 [18:08]

 ▲ 2000년대 이전의 패션산업과 지금의 패션산업은 굉장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패션산업 정책은 잘못된 분석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정책을 시행해도 패션산업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 TIN뉴스

  

“우리나라의 패션산업은 과거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맞을까? ‘패션산업’이라는 같은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2000년대 이전의 패션산업과 지금의 패션산업은 굉장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환경이 다르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기술수준에 비해 인건비가 낮은 나라였고 지금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가 되었다.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패션업계가 판매한 제품은 낮은 인건비를 이용한 OEM 제품이었다.

 

이런 산업은 후진국 시절에만 호황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지금 우리가 ‘패션산업’이라고 지칭하는 산업이 ‘브랜드산업’이라는 것이다.

 

팔다리만 들어가면 패션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현대 소비자들은 구매하려는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얼마나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만들어진 제품인지도 궁금해 한다.

 

더불어 어떤 역사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제품인지가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이런 제품을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번도 ‘패션브랜드산업’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패션산업이 쇠락했다는 분석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영업하는 수많은 국내브랜드가 모두 브랜드 같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동대문시장 옷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시장에서 사용하는 원부자재를 사용하고, 시장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제작한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하이서울쇼룸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박 시장은 하이서울쇼룸을 찾아 매장을 둘러본 후 손님을 모으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관계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 TIN뉴스

 

동대문시장은 브랜드가 아니라 생필품과 유사한 적절한 수준의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시장 상인들의 궁극적인 목적도 장사이지 사업은 아니다.

 

당연히 시장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원자재나 공장은 딱 시장에서 필요한 수준만 유지하면 된다. 그래서 누구나 구매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 원자재와 공장을 사용하면서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요즘은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시장 제품이 브랜드처럼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는 더욱 혼란스러워하지만 브랜드가 아닌 제품은 계속 같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라진다.

 

동대문 제품과 글로벌 SPA형 브랜드를 비교하는 분석자료들도 많고, 동대문이 SPA형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체성이 없는 동대문 제품이 브랜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대문 제품이 브랜드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책들은 성공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제품 생산기반은 대단히 훌륭한데 해외 바이어가 오더하지 않는다”는 분석자료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생산기반이 상대적으로 훌륭했을 때는 앞에서 얘기한 패션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을 때다. 그 당시 바이어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는 낮은 인건비를 이용하여 가격대비 훌륭한 퀄리티의 제품을 생산하는 거래처였다.

 

그런 거래처는 지금 동남아시아에 많이 있다. 이미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바이어가 기대하는 것은 특별한 제품을 생산해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특화된 생산자다.

 

한국이 아니면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이 있어야 높은 가격의 제품을 취급하는 바이어가 찾아온다. 구매할 상품이 없는데 바이어가 오더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해외 바이어가 오더를 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적절하지 않다. 당연히 해외 바이어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도록 마케팅을 하겠다는 정책도 잘못되었다.

 

 ▲ 브랜드는 생산자를 의미한다. 그냥 생산자가 아니라 특별한 생산자를 의미한다. 어떤 지역에서 지정된 생산자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제품을 ‘브랜드’라고 한다. © TIN뉴스

 

브랜드는 생산자를 의미한다. 그냥 생산자가 아니라 특별한 생산자를 의미한다. 어떤 지역에서 지정된 생산자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제품을 ‘브랜드’라고 한다.

 

‘코냑’은 코냑 지방의 증류주 브랜드다. 코냑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포도주로 만든다.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증류주로 스카치 위스키 협회의 까다로운 규정을 준수하여 생산된 제품만 스카치 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각각의 이름으로 개별적인 홍보를 하고 있지만 ‘한국소주’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가 만든 까다로운 규정을 통과한 소주만 ‘한국소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한국소주’는 ‘스카치위스키’가 될 수 있다. 엄선된 강원도 감자만을 사용하는 특별한 소주가 있다면 ‘코냑’이 될 수도 있다.

 

패션제품도 마찬가지다. ‘해리스트위드’처럼 지역이 브랜드가 된 경우도 있고, 발명가의 이름이나 기술적인 특징으로 브랜드명을 정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까다로운 규정과 특별히 관리된 원료가 없고 기술적인 특징이 없는 우리나라 생산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각 지역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들려는 정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결과를 낼 수 없다.

 

현대 패션제품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새로 구입해야 하는 ‘시즌상품’에서, 개인의 만족과 행복한 생활을 위해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수십년간 생활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소비자가 요구하는 패션제품의 선택 기준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패션제품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는 자료들은 과거에 사용하던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며 “정장보다 캐주얼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개인의 성취가 사회집단의 목적보다 중요해진 현대는 소속감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정장류의 복장보다 편리함과 기능성 갖춘 스포츠의류에 대한 요구가 더 많다.

 

▲ 현대 소비자는 터무니없이 비싼 고가의 제품이나 한번 쓰고 버려야 할 것 같은 저급한 제품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되팔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윤리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소장할 가치가 있는 제품을 원한다. 그래서 특이하기만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   © TIN뉴스

 

현대 소비자는 터무니없이 비싼 고가의 제품이나 한번 쓰고 버려야 할 것 같은 저급한 제품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되팔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윤리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소장할 가치가 있는 제품을 원한다. 그래서 특이하기만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패션산업 정책은 잘못된 분석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정책을 시행해도 패션산업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정책 수혜자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정책에 따라 헛짓을 했고 정책 입안자는 안 좋은 결과를 분칠하기 바빴다.

 

지금껏 우리나라 패션산업을 위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운 적이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진짜 계획을 세워 열심히 한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 심상보 건국대 교수  ©TIN뉴스

 

 

 

 

 

 심상보

피리엔콤마 대표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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