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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융합의 시대, 전공의 벽에 문을 내야한다
융합의 시대, 전공의 벽에 문을 내야한다
김성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기사입력: 2018/04/16 [11:32]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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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아무리 참신한 슬로건도 몇 번 듣다보면 진부해지는 법이다. 과학기술계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한데 문제는 슬로건만 앞서 나가다보니 관련 기술이 꽃피기도 전에 피로가 쌓여서 정작 필요할 때 추진력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나노테크놀로지’, ‘신재생에너지’, ‘가상현실’,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등 하루아침에 세상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것이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수많은 과학기술 관련 신조어들이 어느새 진부한 표현이 돼버렸지만 과연 그런 기술들이 그만큼 범용 화되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 범용화된 기술의 예 (왼쪽부터 증기기관, 전기, 자동차, 컴퓨터)     © TIN뉴스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의 예는 18세기의 증기기관, 19세기의 철도와 전기, 20세기 초의 자동차, 20세기 후반의 컴퓨터와 인터넷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전대미문의 신기술이었고 아직도 더 연구할 것이 많긴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은 분야에 적용되면서 대중들이 점차 당연한 기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비약적인 정보 확산속도 증가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어제 나온 신기술도 범용기술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생겨났다.

 

▲ 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불필요한 두려움의 문제(왼쪽부터 우주 엘리베이터, 자기조립 나노기계, 인공지능 킬러로봇)     © TIN뉴스

 

나노테크놀로지의 유행기에는 대량생산 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를 외면한 채 ‘우주엘리베이터’나 ‘자기조립 나노기계’ 등이 금방이라도 실용화 될 것이라 믿었고, 3D 프린팅으로 5시간에 걸쳐 주먹만 한 인형도 한번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제조업의 시대는 갔다”며 흥분했다.

 

심지어 인간 챔피언을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계산능력만 충분하다면 컴퓨터에게 바둑은 체스처럼 인간에게 이기기 가장 쉬운 게임이란 냉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인공지능에게 내일 당장 직장을 빼앗길 거라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통해 창업을 하려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킥스타터(Kickstarter)나 인디고고(Indiegogo)에 넘쳐나지만 크게 성공한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 일반적인 수중 산소호흡 장치와 인공 아가미(Triton)의 개념 비교     © TIN뉴스

 

심지어 ‘실시간 전기분해로 물속에서 산소를 추출해서 숨 쉴 수 있는 휴대용 인공 아가미’처럼 기본적인 물리법칙마저 무시한 황당한 아이디어에도 100만 달러 가까운 투자가 몰릴 정도로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을 가지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을 고려할 때 신 기술의 범용화 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당연할 텐데 앞서 예를 든 최첨단 기술의 범용화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증기기관은 무한한 동력 공급, 자동차는 이동시간 단축, 컴퓨터는 계산 자동화와 같이 기술의 목표가 뚜렷했으며 비교적 원리가 단순했다.

 

이들은 기반 기술로서 여러 분야에 적용하기 쉬웠기에 대규모 분산 연구투자를 통해 범용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최근의 기술은 비전공자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렵다. 그러다보니 연구 분야별 고립이 일어나 기술 개발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이를 응용한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미 진부해진 과학기술계의 키워드 중 ‘융복합 연구’라는 것이 있다. 학문간 칸막이를 없애고 융합 연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자는 개념이다. 쇼팽의 피아노곡들은 ‘노래하기에 가장 쉽지만 제대로 노래하기는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융복합 연구도 마찬가지로 시작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기는 가장 어려운 연구이다.

 

의류학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류학, 섬유공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주 만나서 회의를 하고 각자의 연구결과를 교류하면 당장이라도 최첨단의 스마트 의류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만나면 일단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이 안 통하는데 기술이 융합될 리 없고, 시너지는커녕 각자 일할 때보다 일은 더 늦어진다. 아무리 가까워 보이는 두 학문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엄연히 존재한다.

 

필자는 의류학과 대학원에서, 미래의 연구 환경에서 지금의 영어와 같은 위상을 가질 것으로 여겨지는 프로그래밍 강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수강생 대부분은 그야말로 컴퓨터의 ‘K’자나 프로그래밍의 ‘F’자도 모르고 평생을 지낸 학생들이다. 따라서 전공자들과는 다른 수준의 강의가 필요하여 이에 맞춘 교재를 어렵사리 만들었지만 뜻밖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의류학 서적 출판사는 “의류학과에서 왜 프로그래밍을 배우냐”고 하고, 컴퓨터 서적 출판사는 “의류학과에서 프로그래밍을 왜 가르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의류학 연구자가 프로그래밍을 배워봐야 어차피 전공자 수준이 될 리 없으니 시작조차 하면 안 된다는 논리이다. 연구 분야 간에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융복합 연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전공간의 벽은 불가피하며 이를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과격한 생각이다. 다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만 있어도 된다. 융합 연구를 원하는 연구자들은 최소한 그 문을 드나드는데 필요한 통행료 수준의 다른 분야 지식을 가져야한다. 스마트 의류 개발팀의 일원이라면, 의류학 연구자는 섬유, 기계, 컴퓨터 분야 지식을, 기계공학 연구자는 의류, 섬유, 컴퓨터 분야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식이다. 

 

‘나비의 비유’로 일약 가상현실의 아이콘이 된 장자(莊子)는 ‘융복합 연구’의 선구자였기도 하다. 어느 날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당신의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놀리자 장자는 “천지에 당신이 딛고 서있는 것은 발밑의 땅 한조각이지만, 쓸모없는 주변의 땅덩어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라고 되물었다.

 

한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가능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배타적인 학문간 벽에 문을 내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만큼의 지식을 배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진정한 융합연구의 시작이 가능할 것이다.

 

▲ 김성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김성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sungmin092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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