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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업계는 지금
외환위기 이후 20년 ‘섬유패션 현주소’
규모 경제를 넘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변모
기사입력: 2017/11/28 [10:00]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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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외환위기 한파에 섬유재벌 자취 감춰

1997년 30대 그룹 중 효성 1곳만 잔류

 

▲     © TIN뉴스

 

올해는 외환위기 이후 20년 되는 해다.

1997년 재계 순위 14위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의 대기업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총 17개 그룹 46개사 등이 회사정리하고, 한라나산 등 11개 그룹 37개사가 화의, 쌍용거평 등 30개 그룹 80개사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정리 수순을 밟았다.

 

이 중에는 단일 업종 100억불 달성 금자탑을 주도했던 주역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대우, 효성, 코오롱, 대농, 쌍방울 등 승승장구하던 섬유기업들은 외환위기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화섬, 면방 등의 주력산업이 무리한 투자와 공급과잉을 맞았고, 경공업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산업의 흐름과 정부 시책이 변모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에 주력사업인 섬유의류 외에 무리한 사업 확장이 기업경영 부실화를 촉발시켰다.

물론 대우, 고합, 새한그룹 등은 외환위기를 맞으며 구조조정과 계열사 통폐합 등의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체 수순을 밟는다. 이외 기업들은 과거의 영화에 비해 비록 규모를 축소됐지만 섬유의류사업의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30대, 100대 기업에 포함됐던 섬유패션기업들은 20년이 지난 현재 사라지거나 또는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반대로 대기업들의 몰락으로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은 오늘날 국내 의류수출업체 빅 3로 부상했다. 이때 많은 섬유 관련 중견중소기업들도 함께 성장하며 섬유 전성기를 구가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30대 기업에 포함된 섬유기업은 효성 하나뿐이다. 특히 국내 섬유역사의 기록을 써왔던 코오롱은 지난해 대기업집단에서 밀려나는 치욕까지 맛보며 현재 30대 기업에서도 밀려나며 주춤하다. SK그룹 역시 최근 주력사업인 패션사업부문을 현대백화점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 빈자리를 대형 유통망을 기반으로 면세점과 백화점, 대형 복합몰 등을 앞세운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3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요즘 “유통해야 돈 번다”라는 말을 실감한 만큼 대형 유통업체들의 급성장이 눈에 띈다.

 

◆ 대우 → 해체(계열사 대우인터내셔널 → 정산인터내셔널)

1967년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으로 출발한 대우실업(주)은 창업 초기부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수출 주문을 받으며 명실 공히 동남아시아에서 제일의 와이셔츠수출업자가 된다. 특히 창업주인 김우중 회장은 섬유제품 주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대미 섬유쿼터에 대비한 안정적 물량 확보로 탄탄대로를 달린다.

그리고 창업 1년 만인 1968년 제5회 수출의 날 산업훈장을 수훈한다.

 

1970년대 이후 경공업과 금융업체 진출하며 중화학부문·중장비·철도·엔진·조선 등의 공업구조의 고도화에 주력한다. 1980년부터는 해외자원개발 참여, 해외건설 및 조선 수주, 대한전선 가전 분야 인수 등 전자분야는 물론 자동차업계에도 본격 진출한다.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대우는 그룹 40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이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 주력핵심기업과 세계화 전초기업을 각각 계열사를 통폐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9년 부도를 맞으며 그룹의 해체된다.

 

이후 정리 과정에서 살아남은 2000년 대우(舊 대우실업)가 대우,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로 분할된다. 무역 업무를 전담하는 법인으로 출범한 대우인터내셔널이 탄생하고 동시에 대우 부산공장이 대우인터내셔널 부산으로 개칭한다. 과거 대우실업의 인조피혁, 시트원단 및 시트커버, 자동차 부문 등의 기술력과 시설을 기반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2013년 태광실업(당시 태광글로벌)이 대우인터내셔널 부산을 인수하면서 2014년 신설법인인 ㈜정산인터내셔널로 새롭게 출범한다. 

 

◆ 선경그룹 → SK그룹

선경그룹은 현재 SK그룹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SK그룹 계열사인 SK네트웍스는 지난해 말 SK그룹의 모태인 직물 사업에 뿌리를 둔 패션 사업을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한섬에 넘기면서 사실상 섬유기업으로서의 명맥이 끊어진다.

선경은 1953년 선경직물로 출발하여 1956년에 선경직물(주)로 개편, 법인 전환한다. 1960년대 선경합섬(주)·해외섬유(주)를 설립하여 섬유류 수출입에 주력한다. 국내 최초로 섬유 수출을 한 SK는 석유화학, 정유, 석유개발 분야에 진출하여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룩한다는 계획 하에, 1973년 선경석유(주)를 설립한다.

 

1976년 선경(주)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종합상사로 지정받았고, 건설·목재·금속·기계·화학·관광호텔업·산림·농산·조경공사 등에 진출한다. 1980년대에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함으로써 석유정제 및 석유화학산업 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한다. 이어 정보통신산업에 진출하여 1989년 미국에 현지법인인 유크로닉스(YUKRONICS)를 설립하였고,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현재 SK텔레콤) 경영권을 인수한다. 

 

1998년 SK그룹으로 그룹명을 변경하였으며, 1999년 생명과학분야에도 진출하고, 핵심 주력사업인 에너지·화학, 정보통신을 비롯하여 금융, 건설·물류, 서비스 분야에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신규 사업으로 IMT-2000사업과 생명공학부문를 육성하는 등 ‘세계화된 혁신적인 종합마케팅 회사’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 고합그룹 → 해체 및 폐업

1966년 1월24일 8명의 주주와 함께 설립한 고합(주)은 섬유사업으로 시작해 석유화학, 보험, 전기·전자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1990년대 중후반 연매출 4조원이 넘는 재계 17위로 성장한다. 

침장류의 대명사인 ‘HAPPYLON’ 생산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나일론 및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품을 생산하였으며, 화섬산업을 중심으로 업스트림에서 다운스트림까지 포괄하는 제품라인을 구성함으로써 화섬 및 화학회사로 성장한다.

 

1960년대 수입에 의존해왔던 플랜트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도 등 동남아에 화섬플랜트를 수출하는 한편 연구개발분야에도 적극 참여, 생명공학과 신합섬 개발 등에도 주력한다. 또한, 정보통신사업, 신소재 및 에너지 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최첨단산업에도 진출,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1987년 구조개혁을 단행하여 울산에 구조재구축 공장을 건설, 자동화·무인화·성력화를 실현, 사양사업이라는 섬유사업을 최첨단사업으로 끌어올렸으며, 이어 폴리에스테르필름 및 폴리에스테르병의 원료 등을 만드는 제2공장을 1997년 말 완공한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제1호 워크아웃 기업’으로 결정된다.

고합은 회생의 기회는 있었다. 고합, 고려종합화학, 고려석유화학, 고합물산 등 4개 계열사를 합병하는 조건으로 신규 자금 지원과 대출금출자전환 등의 워크아웃 방안이 제시됐지만 

주주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다.

 

계열사는 대부분 청산됐고 유화부문을 핵심 사업으로 화섬부문을 비핵심사업으로 분리하는 기업분할안이 이사회 승인을 받으며 2001년 ㈜KP케미칼을 설립했으나 2004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가 인수한다. 화섬부문의 고합물산은 고합으로 통합되어 한때 영안모자가 인수를 시도하다 무산된다.

 

고합물산은 1995년 전신인 고합상사가 사명을 개칭하면서 고려합섬의 화학영업과 직물사업을 이관 받아 영위한다. 화학제품 수입판매와 플랜트 수출을 주력으로 하던 고합물산은 1994년 의류 내수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의류내수팀을 신설, 1995년 20대 직장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의류 ‘예씽’을 런칭하며 본격적인 내수시장에 진출한다. 이후 2004년 고합물산은 폐업한다.

현재는 고합의 명맥은 배우 김태희가 모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침구 브랜드 알레르망이 잇고 있다. 2009년 설립된 알레르망은 2014년 고합물산(주) 출신의 김종운 대표이사가 최대주주인 ㈜이덕아이앤씨에 흡수합병 된다.

 

◆ 대농그룹 → ㈜대농

1955년 박용학 등이 대한농산(주)를 창업, 1968년 금성방직(주)와 태평방직(주)를 인수한다. 1973년 대한농산, 금성방직, 태평방직, 한일제분을 통합하고 ㈜대농으로 상호를 변경한다. 1993년 관악컨트리구락부를 인수해 골프장 경영도 겸하게 된다. 

이후 반월 나염공장 인수와 반월 조염공장 준공 등 섬유사업부문에 주력하던 중 1993년 미도파를 모기업으로 기업 체제를 전환한다. 1994년 메트로프로틱트 설립 및 ㈜카틱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 유니콤 인수 등을 추진한다. 그러나 1997년 신동방의 미도파 인수 과정에서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경영 위기를 맞는다.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몰렸으나 1997년 부도방지협약 가입, 회사정리절차 등을 거쳐 2002년 상장폐지, 2004년 산은캐피탈(주)에 인수된다. 이후 안산화성조치원 등 주요 공장들을 매각하며 재무개선에 나선다. 2009년 ㈜일신디앤피를 인수하며 ㈜대농텍스타일로 상호를 변경한다. 섬유산업 불황으로 위축된 원사와 의류사업 외 새로운 수익 창출사업으로 부상한 부동산개발사업을 주력하고 있다. 부동산개발사업은 전체 매출의 56.9%를 차지한다.

 

◆ 갑을(甲乙) → 갑을상사, 갑을 분할

1958년 신한견직합명회사로 출발해 대구를 근거지로 성장해온 대표적 섬유종합그룹이다.

1974년 창업주인 박재갑․재을 형제의 이름 뒷글자를 딴 갑을을 서립한다. 그러나 1982년 창업주인 박재갑이 회장 타계 후 동생인 박재을 회장이 경영을 맡다가 1997년 조카인 박창호 회장에게 갑을그룹을 물려준 뒤 갑을상사그룹을 설립한다. 

이 과정에서 갑을방적과 ㈜갑을은 갑을그룹에, 갑을합섬은 갑을상사그룹 계열사로 각각 편입된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두 회사의 운명이 갈린다. 

계열사인 갑을방적은 1989년 국내 면방업계에서 최초의 해외투자로 스리랑카에 갑을랑카(주)를 설립한다. 이는 해외투자를 촉진시킨 계기이기도 하다. 이후 갑을랑카를 시작으로 이후 중국의 연길, 남통, 상숙, 연운항 등지에 진출해 있으며, CIS의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도 대규모의 섬유공장을 건립, 섬유사업은 해외에서, 국내에서는 유통업에 진출해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갑을상사그룹은 주력사업이던 섬유사업에서 자동차부품, 건설, 환경, 의료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현재 계열사 중 갑을합섬이 유일하게 섬유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최근  박재율 회장의 3남 박한상 사장이 최근 대구시와 전기자동차, 의료, 화장품 등의 사업 협력을 위해 포괄적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계열사인 동국실업이 멕시코 법인을 설립하며 자동차 부품시장 투자에 나서고 있다.

 

◆ 새한그룹 → 계열사별 매각

1967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씨가 모태인 삼성그룹 제일합섬을 모태로 새한미디어를 설립한다. 1991년 혈액암으로 사망하자 이창희 회장의 장남 이재관 부회장이 새한그룹을 승계하고 삼성그룹이 보유한 제일합섬 지분을 넘겨받아 1995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수년간 구미공장에 1조원을 투자하였지만 섬유/필름사업의 침체로 그룹 위기를 맞는다. 삼성에서 분리될 당시 흑자0 기조를 지키던 제일합섬이 ㈜새한으로 바뀐 뒤, 1998년까지 구미2공장의 화학섬유필름 부문에 1조원을 퍼붓는 등 설비투자를 늘리면서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그러다 시장침체로 가격이 하락하자 1999년 일본 도레이에 이 부문을 6,000억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된다.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며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린다. 2000년 이사회가 나서 구조조정 단행을 결정하고, 이후 워크아웃을 신청, 계열사 모두를 매각 또는 청산한다.

㈜새한(舊 제일합섬)은 웅진그룹에 피인수 후 웅진케미칼(주)로 사명을 변경했으나 도레이첨단소재에 재 매각되어 현재 도레이케미칼(주)로 사명을 변경한다.

패션사업부문의 에리트베이직은 패션그룹형지에 인수돼 현재 형지엘리트로 사명을 변경한다.

도레이첨단소재(주)는 새한과 일본 도레이가 4:6 합작법인 도레이새한을 설립했으나 이후 일본 도레이가 새한 지분을 전량 인수한다. DSI(주)는 새한과 인비스타가 스판덱스 생산 및 판매 법인으로 합작 설립했다가 청산한다.

 

◆ 삼도그룹 → 폐업

삼도그룹은 1960년 4월 창업한 삼도물산이 모체 기업이다. 

창업 초기부터 봉제품 보세가공수출의 길을 개척해 국내 최초로 의류를 수출하는 등 의류수출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한다. 1974년 9월 지퍼공장을 설립했고, 1979년 의류 단일 품목으로는 국내 최초로 1억불 탑을 수상한다. 1987년 이후 레저용품·미술품 및 잡화제품 제조·판매업, 해산물 판매업·조림업·목축업·유실수 및 관상수 식재업에도 참여하여 삼도그룹을 이루었다.

1980년 (주)서우에 이어 1983년에는 삼양섬유(주)·대흥섬유(주)·동도의류(주)를 삼도물산에 흡수, 합병하고 미국 Engushtown Sportswear Ltd.사로부터 Sergio Valente 기술을 도입한다. 1984년 압소바를 인수한다.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삼도전기, 동해터미널, 삼도화학을 연이어 인수한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1995년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1998년 회사정리절차 계획안 인가를 받아 그룹이 해체된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인 삼도물산은 2001년 11월 에스비파이낸스코리아와 에스비파이낸스코리아가 주관하는 투자조합과 인수합병(M&A)을 위한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재기를 노린다. 2002년 2월 법정관리를 탈피해 성공하며, 2003년 7월 베트남 지퍼공장 인수 및 회사 브랜드인 에이샵과 수입 브랜드인 쇼콜라의 중국 유통망을 구축한다. 이후 삼도물산은 2004년 폐업한다.

 

◆ 진도그룹 → ㈜진도

1973년 설립된 진도(주)는 국내에 모피 판매가 허용된 1988년 이후 줄곧 모피 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인정받으며 패션모피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며 1998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돼 그룹 계열사 중 진도와 진도물산, 진도종합건설 등 3개 계열사가 구조조정 협약 대상이 된다. 이후 2006년 진도의 의류사업부문을 분할해 ㈜진도에프엔 설립한다. 2009년 최대주주 변경으로 주방용품 전문기업 임오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2010년 ㈜진도로 사명을 변경한다. 현재 진도모피를 비롯해 홈쇼핑 전문 브랜드 런칭, 중국 시장 내 직영점 개설 및 의류사업을 비롯해 홍콩 최대 부동산 재벌인 야윙그룹과 광저우 인근의 난사항 물류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국 내 해상․육송 운송과 화물 창고용역, 통관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 나산그룹 → ㈜인디에프(內 나산실업)

나산그룹은 1971년 건설업체인 영진건설로 출발해 부동산을 발판으로 의류, 유통업에 진출하며 1990년대 신흥재벌 그룹으로 급부상하며 계열사를 17개까지 늘리며 몸집을 키운다.

특히 1980년 ㈜문화데스크가 설립, 1982년 나산실업(주)로 상호를 변경하며 국내 토종 의류브랜드 '조이너스, 꼼빠니아, 혼성캐주얼 메이폴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조이너스, 꼼빠니아 등 여성의류매출 하락과 건설경기 불황 그리고 무리한 유통업 진출로 자금난 악화에 시달린다. 특히 1995년부터 대단위 백화점 건설을 시작으로 부도 처리된 영동백화점을 인수하며 1천억원대 차입금을 떠안았고, 외환위기 이후에도 로즈데일백화점 개점을 강행하는 등 무리한 투자로 결국 부도 처리된다. 

이후 2006년 세아상역(주)이 나산실업을 인수했고, 2007년 계열사인 ㈜인디에프에 편입된다.

 

융합 기반한 고부가치산업 변모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한 눈을 잃은 것이고 과거를 망각하는 자는 두 눈을 잃은 것이다.”

과오를 반추하고 내 것으로 삼되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과거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앞서 소개한 기업들은 새로운 사명을 달고 섬유패션산업의 역군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사이 탄생한 중견․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섬유패션산업의 수출 역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재 많은 섬유패션기업인들이 세계 부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만큼 섬유패션산업은 무한한 잠재력과 시장성을 갖춘 산업임은 분명하다. 단순히 얼마를 더 팔고 더 이익을 남기겠다는 과거 방식의 경영 패러다임만 고수한다면 더욱 산업은 위축될 것이고, 반대로 타 산업과 융합, IT 기술 접목 그리고 고객 중심의 경영전략이 균일하게 돌아간다면 또 한 번 섬유패션산업의 재도약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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