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류의 탄생을 훨씬 앞지르는 미생물의 출현과 진화의 역사는 아직도 인간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대부분이다. 수질, 토양, 암반, 대기 및 생물체 내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미생물의 존재를 인식하고 종류를 확정하려는 과학자의 연구와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전체 규모를 모른 체 그때그때 출현하게 되는 미생물의 실체와 생태를 확인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미생물의 존재 자체도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규명하게 된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683년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인 안토 판 레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을 통한 미생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미생물의 활동과 작용, 생태에 관한 과학계의 인정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세균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이르러서야 정립되게 된다.
파스퇴르 이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이라는 속설이 지배하며, 공기 중에 세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를 1861년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유명한 백조목(Swan Neck) 플라스크 실험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미생물)에 의해 부패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으로 미생물의 존재가 확인되고 이를 생명속생설(Biogenesis)이라 하여 2,000여 년의 근거 없는 자연발생설의 맹신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 지구 환경 내에는 수없이 많은 생물종이 존재하고 있다. 육안으로 보이는 동물계는 120만 종, 식물계는 50만 종 정도로 추정할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미생물계의 원생동물, 진균, 세균(Bacteria), 바이러스 등은 전체 종의 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예측할 뿐이다.
얼마 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 19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백신으로 극복을 했으나, 그 바이러스의 원천과 생성, 전파 과정은 아직도 미궁의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어디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유해성 미생물이 인류를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미생물이 인류에게 유해한 것만은 아니다. 인체에는 1만여 종의 미생물이 존재하고 이중의 15% 정도가 병원성 미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를 이겨내는 면역체계가 구축되어 있어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안정적인 생체 활동을 유지하게 된다. 자연계에도 인류에게 유익한 미생물 특히 진균류와 세균이 존재한다.
“신이 인간에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칭송받는 와인의 출현도 우연이 아닌 자연계 내 미생물 생태의 산물인 것이다. 떨어진 포도 열매 주변에서 알코올 발효된 액체를 최초의 인류가 맛보고 느꼈던 것이 지금까지 다양한 양조기술로 발전하여 현재의 다양한 알코올음료로 정착하게 된다.
비록 20세기 이르러 알코올 발효가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효모의 생리작용의 부산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미생물의 존재를 모르면서 그저 하늘이 내려 주신 자연의 섭리로만 믿고 와인을 빚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미생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과학적인 규명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와 열정 그리고 애국심에 기인하게 된다.
우리에게 우유와 관련된 인물로 인식될 정도로 친숙한 프랑스 생화학자이며 발효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는 효모의 존재와 발효과정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한 인물이다. 학창 시절에는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고, 중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다 1849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화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1854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릴 대학 화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당시 지역사회의 주력 산업이었던 와인 양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알코올 발효에 관한 연구에 심취하게 된다. 당시에는 당에서 알코올 전환되는 과정을 화학적인 변화라는 과학계의 지배적인 가설을 미생물(효모)에 의한 생리 활동에 따른 발효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수용되기에 어려웠으나, 이를 수많은 실험으로 증명하게 된다.
그리고 1860년에 이르러서는 프랑스 곳곳에서 대규모로 와인이 부패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나폴레옹 3세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며, 파스퇴르는 원인 파악과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비로소 1864년에 와인의 발효과정에 알코올 발효과정에서 발생하거나 잔재했던 다양한 유기산(Organic Acid)류를 먹고 자라는 다른 미생물류로 젖산균, 초산균 등이 와인에 악영향을 미치고, 급기야 과도한 초산발효가 결국 와인을 식초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식초(Vinegar)의 어원의 프랑스어 Vin Aigre(신 포도주 sour wine)도 와인 양조 과정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렇게 알코올발효, 젖산발효, 초산발효에 관한 과학적인 개념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파스퇴르의 도전과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와인의 산패(초산발효)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 1866년 파스퇴르 살균법(Pasteurization)을 창안하여 재료 본연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불필요한 미생물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열탕보다 낮은 55~60℃의 온도로 살균하는 법을 제안하게 된다. 즉 효모의 알코올 발효가 완료된 시점에 온열 중탕 방식으로 열을 가해 불필요한 잡균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현재에도 우유를 비롯한 다양한 식품산업 분야에서는 저온살균법은 광범위하게 응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이 우유의 생산에 적용한 것은 20년 뒤 독일의 농화학자 속슬렛(Franz Ritter von Soxhlet)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와인 양조에서는 저온살균법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열탕보다는 낮은 55~60℃ 정도의 온도이지만 포도 본연의 풍미와 미세한 액체 질감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어 고급스러운 와인을 빚기가 어려웠다.
이후 20세기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이산화황을 첨가하여 잡균을 제거하는 양조 방법이 정착되어 현재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와인의 발효과정 또한 파스퇴르는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만이 유효한 역할을 하고 젖산균과 초산균에 의한 발효는 와인 품질을 저하시킨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와인의 풍미를 향상시키는 2차 발효 과정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게 된다. 효모의 알코올 발효 과정이나 원래 존재했던 다양한 유기산 중에서 사과산(Malic acid)이 과도한 신맛을 발산하여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를 젖산균이 젖산(Latic acid)으로 전환시키게 되면 훨씬 세련된 향과 맛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를 알코올 발효 이후에 일어나는 말로라틱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라고 명칭 하여 고급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해야 하는 공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현대의 와인 양조 기술은 발효과정을 섬세하게 상황에 맞게 과학적인 지식과 관능을 동원하여 일관성 있게 재현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 해졌다, 아마도 현재 우리가 즐기는 와인의 평균적인 품질이 과거 파스퇴르의 시절보다는 훨씬 더 맛있을 것으로 예측이 된다.
파스퇴르가 프랑스 섬유산업에 기여한 업적도 크다. 당시 고급 원단인 실크의 생산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주력 산업이었다. 1865년 누에병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던 프랑스는 파스퇴르에게 원인과 해결책을 의뢰하게 된다.
5년여 긴 연구 끝에 노제마병(Nosema disease)와 연화병(Flacherie)의 원인이 미생물에 감염된 나방과 주변 환경에서 전이되는 세균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을 밝혀내고, 현미경으로 감염 누에를 분리하는 법과 생장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누에병을 극복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이후 파스퇴르의 연구 성과는 인간에게 전염되는 병원성 세균과 관련된 질병의 원인과 전파 과정을 규명해 가는데 중대한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최근 전 세계의 섬유패션산업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확보를 위한 노력과 실천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은 해를 거듭할수록 가중되고 있다. 대량 탄소 배출의 근원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지목하고, 유해화학물질의 생성과 활용 잔류를 엄격하게 법적으로 규제하려고 하고 있으며, 제한된 수자원의 과도한 사용과 오염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체재 사용이나 재활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과 요구는 실물시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실용화된 대표적인 바이오매스(Biomass) 기반 섬유 소재는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만들어진 1.3 Propanediol을 사용하여 합성한 PPT(PolyPropylene Terephthalate = PolyTrimethylene Terephthalate) 고분자로 가장 많이 알려진 상품명으로 ‘소로나(Sorona)’가 있다.
이 섬유의 제조 과정을 살펴보면, 공업용 대장균(Engineered Escherichia coli – 제조사의 특허 기술)을 이용해서 혼합유기산 발효를 거치고 정제하여 프로판디올(Bio PDO)을 얻는 과정이 핵심기술이며, 이를 석유계 테레프탈릭산(Terephthalic acid)과 중합하여 섬유고분자를 얻게 된다.
또한 Bio PDO는 폴리우레탄의 일부 원료로도 사용이 되어, 스판덱스 섬유나 인조가죽용 코팅소재, 신발용 자재, 기능성 멤브레인 및 접착제 등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기존 100% 석유 기반 화학물질에 의존한 모노머를 합성하여 얻었던 고분자 플라스틱에서 평균 30~60%까지 자원순환형 식물유래 원료로 대체하게 되는 효과는 환경 유해요소 절감에 큰 공헌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섬유고분자를 대체해서 사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플라스틱 성형품이나 포장재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생분해성 고분자인 PLA (Poly Lactide)도 옥수수 전분을 기반으로 젖산 발효를 통해서 원료를 얻는다. ‘Ingeo’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세계적인 농산물 기업 Cargill의 자회사 NatureWorks 회사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량의 옥수수를 투입하고 당화 공정을 거쳐 젖산균으로 발효를 시켜 젖산(유산균 Lactic Acid)을 얻고 이를 연속공정으로 고순도 Lactide를 정제하여 개환중합으로 폴리락틱산을 생산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열적/물리적 취약성으로 일회용 포장재 위주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분자 개질을 통한 물성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다양한 생활소비재로 용도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외에도 발효과학을 기반으로 한 식물유래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석유화학 기반 화학제품을 대체하고자 하는 연구 개발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여 전에 탄생한 루이 파스퇴르가 없었더라면, 와인을 기반으로 한 미생물의 발효과정을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실크를 생산하는 고질적인 누에병을 미생물 관점에서 해결하지 못했더라… 가정의 역사는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현재의 와인과 섬유 그리고 미래의 길은 더욱더 불확실성이 가중되지 않았을까!라는 두려운 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발효라는 생각지도 않은 단어에서, 생활 밀착 소비재인 와인과 섬유의 과학적인 연관성을 루이 파스퇴르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는 것에 “세상에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늘 저녁은 소로나 원사로 만든 재킷을 걸치고 PLA로 만든 플라스틱 잔으로 레드 와인 한잔을 나누며, 루이 파스퇴르에게 감사하는 성배를 올려야 할 것 같다.
메르시! 루이 파스퇴르(Merci! Louis Pasteur)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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