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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패션산업의 미래, 테크놀로지로부터
패션산업의 미래, 테크놀로지로부터
김성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기사입력: 2019/10/22 [11:38]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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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고대 이집트의 직기 그림, 산업혁명기의 증기 방적기, 인터넷 의류 쇼핑  © TIN뉴스

 

 

대부분의 비즈니스에서는 먼저 시작한 쪽이 가장 앞서나가는 것이 상식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조업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패션 산업이다.


인간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 이외에 처음으로 만든 도구는 실을 잣고 천을 짜는 도구였고, 최초의 산업혁명도 섬유산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국경을 초월한 인터넷 쇼핑도 패션 산업 덕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패션 산업이 오늘날 가장 앞서가는 첨단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주·항공, 바이오, 전자·컴퓨터 분야를 첨단 산업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견이 없는데, 어째서 패션 산업은 지나간 시대의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혹시 다른 산업과 달리 이미 모든 기술이 완성되어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패션 분야에 필요한 기술, 즉 패션테크놀로지의 대부분이 다른 첨단 산업 분야에 못지않게 복잡하여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해를 받는 이유는, 그 복잡함에 비해 말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쉽기 때문이다.


‘우주선에 연료를 채우고 달을 향해 발사한 다음 역분사 로켓을 써서 달에 착륙하면 된다’라든가 ‘체세포에서 핵을 추출해서 인공 수정하면 애완동물을 복제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아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수긍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일상생활에서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니, 당연히 마술과 같은 복잡한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체를 측정해서 잘 맞는 옷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라든가 ‘봉제 작업을 도와주는 로봇 개발’ 같은 일은 직접 겪어봤음직한 일이다보니 어쩐지 쉽게 구현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마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기술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필자는 2년 전부터 국내의 한 중견 패션 업체가 서울대학교와 함께 추진 중인 봉제공장의 스마트팩토리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함께 연구 중인 공과대학의 기계공학, 컴퓨터공학과 교수들도 처음에는 ‘패션산업 분야에 뭐 별다른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연구를 시작하면서 봉제 공정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에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술이 없어 인력으로 해결하려다보니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 (왼쪽부터) 검단기, 직물 그리퍼(출처 www.semanticscholar.org), 봉제 로봇(sewbo)  © TIN뉴스


패션테크놀로지가 해결해야할 난제를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봉제공정의 첫 단계는 원단에 결함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인데, 이는 이후의 모든 공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정이지만 지금까지 오로지 작업자의 육안검사에 의존해왔다.


처음에는 ‘카메라 몇 대로 원단을 촬영하고 딥러닝으로 결함을 학습시켜서 찾으면 될 것이다’라고 쉽게 생각했었고, 사실 이런 식의 시각적 결함 검출은 반도체 공정같이 검사 범위가 좁고, 정상과 결함이 확실히 구분 되는 경우에는 큰 성공을 거두어왔다.


그러나 원단의 경우 광범위한 영역을 정밀하고 빠르게 촬영하는 하드웨어의 제작, 정의 불가능한 형태와 크기를 갖는 결함의 학습, 찾은 결함의 위치를 기록하여 이후 공정에서 활용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어지는 재단 공정은 그나마 상당히 자동화가 된 공정으로 컴퓨터가 컨트롤하는 커터가 의복 패턴 형상을 자동으로 잘라내는 것 까지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잘라낸 원단 조각을 집어서 다음 공정으로 전달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데, 이 작업 역시 ‘로봇 팔에 집게를 달아서 직물을 집어 들어 다른 곳에 옮겨 놓으면 될 것이다’고 쉽게 생각했지만, 쌓여있는 직물을 한 장씩 정확하게 집어내는 기구를 만드는 것, 집어올린 직물을 다른 곳에 옮겨서 원래대로 반듯하게 펼쳐 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본격적인 봉제 공정은 척 봐도 복잡해 보여서 ‘카메라가 달린 사람 팔 모양 로봇을 만들어서 봉제를 하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고, 소매를 달거나 안감을 대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수 십년 내로 가능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패션테크놀로지가 직면한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익숙해진 작업이기 때문에 이미 해결되었거나, 해결이 쉬울 거라는 오해를 사게 된 것이다.


최근의 산업 발전 트렌드는 개인 맞춤형 생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정체기에 있는 글로벌 패션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개인 맞춤형 생산이 가장 필요한 분야 중 하나가 패션 산업인 데다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가 프로슈머로서 패션 제품의 설계 생산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역시 말로 해보면 ‘소비자의 인체를 측정해서 꼭 맞는 옷을 만들고,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서 바로바로 생산하면 된다’처럼 쉽게 들린다.

 

▲ 1910년에 프랑스 화가 Villemard가 그린 ‘2000년의 최신 패션’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 TIN뉴스


놀라운 것은 이 사업 모델은 이미 100년전 프랑스의 한 화가가 상상했었고, 20년 전부터 QR(Quick Response) 이나 MTM(Made-to-Measure)이라는 이름으로 당장 실현될 것 같았지만 아직도 시장에 안착한 비즈니스가 없다.


이런 사업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동안 사업자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테크놀로지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량 생산 패션 산업은 경제적 원자재 수급, 방대한 저가의 노동력, 대규모 유통망 등으로 그럭저럭 유지가 가능해왔고, 다들 ‘이정도면 됐다’며 지내왔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으로는 다가올 소비자 맞춤형의 생산에 대응하기 어렵다.


패션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소비자, 디자이너, 생산자, 유통업자 모두를 포괄하는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진보된 생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봉제 공정 자동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존의 기술을 바탕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패션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신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3,000년 이상 사용됐던 북(셔틀)없이 공기와 물로 천을 짜는 직기가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 했을까? 마찬가지로 복잡한 봉제과정 없이 옷을 찍어내는 프린터가 발명되어 지금의 모든 봉제 공정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패션테크놀로지는 보다 품질 좋고 저렴한 의복을 원하는 소비자, 자신의 꿈을 쉽게 펼쳐 보이고 싶은 디자이너, 효율적 설비 운영을 원하는 생산자 모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안심하는 순간 더 이상 미래는 없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 ‘제자리에 멈춰서 있으려면 계속 뛰어야 하고, 어디론가 가려면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 ‘Square Wheel Syndrome’을 Lego로 나타낸 예     ©TIN뉴스


누군가 바퀴를 발명했는데도, 갈아 끼울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네모난 바퀴를 계속 굴리면서도 ‘이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명심해야겠다.

 

 

▲ 김성민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김성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sungmin092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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