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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창의적인 소비, 패션산업에의 함의는?
[기고] 창의적인 소비, 패션산업에의 함의는?
추호정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기사입력: 2019/01/07 [18:38]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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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 아디다스가 독일에서 선보인 팝업 프로젝트 Knit4you    © TIN뉴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 가치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한다.

침해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은 무엇인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은 무엇인가. 창의성은 오랫동안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 여겨져 왔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라는 뜻의 라틴어, “creo”로부터 유래한 창의성(creativity)은 자연으로부터 새롭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인간 활동의 근간이 되는 능력이다.

 

창의성은 오랫동안 생산자의 덕목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자는 대량화된 생산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고 이를 소비시장에 공급하여 왔다.

 

보다 새롭고, 보다 유용하고, 보다 흥미로운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생산자에게 시장은 열광했다.

 

애플이나 픽사와 같은 창의적 기업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기존의 제품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새롭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소비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패션 시스템에서 창의성은 천재적인 디자이너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능력으로 여겨졌다. 특출난 창의적 능력의 소유자인 디자이너가 창조한 스타일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일반 소비자의 선택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시대의 패션으로 인정받았다.

 

반면, 이미 생산되어 나온 재화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자로 정의된 소비자는 지난 세기 내내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시장에 소개된 제품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혹은 느리게 선택하는 차이가 소비자의 혁신성은 규정하는 기준이었다. 소비자의 적극적 역할과 역량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후반, 소비 창의성의 개념이 Hirschman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다. 이들은 소비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해결해내는 능력으로 소비자 창의성의 개념을 제안하고, 소비자가 일상에서 소비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상품을 구매하는 것 외 다양한 창의적 방법을 시도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창의성의 핵심 개념인 새로움(newness)과 기능성(functionality)은 소비 창의성에도 해당된다. 어떠한 소비행위가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방법과 다른 새로운 방법이어야 하며, 동시에 소비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유용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보다 다양한 소비자 창의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Burroughs와 Mick은 잠시 후 시작될 파티에 착용하고 가야하는 구두에 흠집이 난 것을 발견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참여자 응답의 창의성 수준을 분석하였다.

 

파티를 위해 2분 후 출발해야 하는 경우와 3시간 후 출발해야 하는 경우를 구분하여 시간제약의 효과를 측정하였고, 파티의 중요성에 차이를 두어 상황관여도 효과도 검증하고자 하였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 참여자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더 적은 경우에 보다 새로운 해결방법을 제안하였고, 상황적 관여도가 클 때 보다 기능적인 해결안을 제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의 예에서 보듯이 소비자의 창의성은 일상적인 소비상황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다. 간편식으로 설계된 인스턴트 음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리하여 근사한 요리로 만들어 내는 소비자를 떠올려 보자. 선물 포장재나 충전재를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장식하여 쓰기도 한다.

 

패션 소비자들의 옷입기는 어떠한가? 패션 소비자들은 매일 아침 옷장을 열고, 옷장 속에 걸린 옷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스타일링을 완성한다. 매일 아침, 창의적 디자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높고 낮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든 패션 소비자는 매일의 일상에서 창의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발휘하고 있다.

 

소비자 창의성이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로는 구매가 아닌 사용을 통한 소비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소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일찍이 Hirschman은 소비 창의성의 개념을 사용혁신성과 연결하면서 소비문제를 새로운 제품의 구매가 아닌 이미 보유하고 있는 제품을 새로운 방식과 용도로 활용하여 해결하는 능력으로 설명하였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제품의 구매를 통한 문제해결에 익숙해져 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새 외투를 구입하고, 송년회가 다가오면 화려한 외출복 쇼핑에 나선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생산과 폐기과정에서 다양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창의적 소비자는 이미 사용 중인 제품들을 새롭고 유용한 방법으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창의적인 소비의 과정과 결과는 물질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캡슐옷장(capsule wardrobe)이라는 개념이 있다. 1970년대 영국의 수지 폭스(Susie Faux)에 의해 소개된 개념으로 몇 벌의 기본적인 아이템으로 구성된 옷장을 의미한다. 캡슐옷장의 개념은 환경을 고려한 경제적인 의복생활을 지향하는 많은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였으며 다양한 소비실험이 시도되었다.

 

동료 연구자들과 유사한 실험을 수행한 적이 있다. 옷에 관심이 많은 5명의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7일 간의 기간 동안 창의적 옷입기 과제를 3회 이상 수행하면서 그 과정에서의 경험을 일지로 작성하도록 하였다.

 

실험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평소와는 다른 시도를 하면서 기존의 옷을 새로운 스타일로 착장하는 등 옷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주위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에 고무되어 과제수행자체를 즐기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한정된 아이템으로 구성된 작은 옷장을 가지고도 충분히 다양한 스타일의 연출이 가능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창의성을 발현하며 주체적인 소비자로서의 만족감도 경험할 수 있다.

 

창의적 소비의 두 번째 함의는 소비주체로서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와 힘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고 단절되어 있었으며 소비자들은 시장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이미 생산되어 시장에 전시된 제품이 소비생활을 지배하였다.

 

최근의 기술 발달은 창의적 소비자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지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된 개별 소비자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확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누구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 산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의 창의성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직접 활용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혁신적 패션기업들은 소비자 창의성을 시장 기회로 만들어 내고 있다. 단순한 디자인 요소나 주문자 아이디를 반영하는 마이아디다스(miadidas)와 나이키아이디(nikeID) 같은 개인화 서비스들은 소비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고도화된 개인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 아디다스가 독일에서 선보인 Knit4you라는 이름의 팝업 프로젝트는 소비자가 점포를 방문하여 자신의 치수를 3D 스캐너로 측정하고, 원하는 색과 모양의 스웨터를 디자인하면, 점포에 비치된 니팅 기계로 그 자리에서 제품을 완성하여 제공한다.     © TIN뉴스

 

아디다스가 독일에서 선보인 Knit4you라는 이름의 팝업 프로젝트는 소비자가 점포를 방문하여 자신의 치수를 3D 스캐너로 측정하고, 원하는 색과 모양의 스웨터를 디자인하면, 점포에 비치된 니팅 기계로 그 자리에서 제품을 완성하여 제공한다.

 

기본 디자인의 옷을 제시하고 소비자의 의견과 투표로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결정하는 방식의 크라우드 펀딩 리테일러들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의 발달은 시장과 거래의 많은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기술의 발달로 번거롭고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많은 소비 이슈들이 근본적인 문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 생산단위로부터의 압박이 없어지고, 수요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예측하는 것이 쉬워졌다. 애초에 생산은 소비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창의적인 소비자가 스스로 원하는 제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업의 자연스러운 소명이 된다.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던 기업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창의적인 소비를 지원하는 기업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소비자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파워풀하다.

 

추호정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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