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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림 디자이너
비빔밥 도시
비빔밥 도시
디자이너 이학림 칼럼
기사입력: 2016/06/27 [09:21]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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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 뉴스
▲  <사진 좌>  “Legue of Legends” 속에 “아리”  <사진 우> “Overwatch” “송하나”  © TIN 뉴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업체 중 하나인 Blizzard Entertainment는 얼마 전 새로운 게임을 하나 내놓았다.

 

“Overwatch”라는 타이틀의 이 FPS게임(First-Game Shooter: 1인칭 슈팅게임)은 출시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 PC방에서의 점유율 순위도 불과 며칠 만에 바꿔놓았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한국국적을 가진 캐릭터가 하나 등장한다. 혹시 이 게임을 아직 모르는 분이라면 한 번 상상해보시라.

 

어떤 캐릭터일까? 태권도를 하는 캐릭터일까? 혹은 홍길동? 전우치? 아니면 이순신 장군? 한국인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활약하는 일은 더 이상 그리 보기 힘든 장면은 아니다.

 

몇 년 간 가장 인기 많았던 게임인 “Legue of Legends” 속에도 “아리”라는 구미호 캐릭터가 등장하고 격투게임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태권도를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Overwatch”에서의 한국인 캐릭터는 역사 속 혹은 소설 속의 영웅들이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적인” 캐릭터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르다.

 

게임 속에서의 송하나의 설정은 19세의 스타크래프트6의 최연소 세계랭킹 1위이자 3년간 무패의 신화를 달성한 전 세계적인 스타 프로게이머로, MEKA(Mobile Exo-Force of the Korean Army, 중장갑 무인 조종 로봇부대)라는 육군 기동 기갑부대 소속의 영웅이다.

 

그녀는 게임 속에서 “Meka”라는 최첨단 로봇에 올라타 조국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머리에 비녀를 꼽고 있지도, 한복을 입고 있지도 않으며 고전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길거리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 한 현대적인 한국 소녀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앞머리를 귀엽게 내린 갈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장난스러운 토끼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푸른색과 핑크색의 타이트한 점프수트를 입고 자폭을 궁극기로 가진 핑크색의 메카닉을 조종하며 기관총과 광선총을 쏴댄다. 과연 그녀의 어느 곳이 우리가 말하는 “한국스러운” 캐릭터일까?

 

이 게임 속에는 한국 캐릭터 이외에도 중국과 일본의 캐릭터 역시 등장한다. 동아시아 3국의 이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송하나이다.

 

일본 캐릭터는 아직도 표창을 던지고 벽을 타는 식상한(?) 닌자의 모습이고, 중국의 캐릭터는 도대체 어디에서 중국을 떠올려야할지조차 난감한 엉성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반면, 송하나는 “현대의 한국”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세계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도,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국가도 아니고,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도, 88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시킨 도시를 만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모바일 기기를 생산하며 길거리에는 개성 넘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며 헐리웃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영화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잘하는 국가이자 가장 훌륭한 비보이 팀을 보유하고 있기도 한 국가이고, 빌보드 챠트 1위곡과 한국챠트 1위는 많이 다를 만큼 강력한 자국 내의 음악시장을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한, 굉장히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가진 나라이다.

 

2000년,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어딜 가나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내게 “나타카, 나타카”라고 말을 붙이곤 했다.(나카타 히데토시는 당시 유럽 리그에서 뛰던 유명한 일본의 축구선수.)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도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너는 북한사람이야 남한사람이야?”라던가, “한국은 어떤 언어를 써? 일본어?” 같은 어이없는 질문을 늘 받곤 했었다.

 

얼마 전, 거래처의 사장인 중국분이 따님과 함께 한국으로 여행을 와서 접대 차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며 그 날 고급 한복을 맞추기 위해 피팅을 했고, 저녁으로는 불고기를 먹었는데 그 분의 따님인 십대의 소녀는 “EXO”의 광팬이기도 했고, 한국의 대중문화 자체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으며 나중에 꼭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했다.

 

흔히 뉴욕을 가리켜 “MELTING POT” 혹은 “SALAD BOWL”이라 부른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인종들과 문화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에서(물론 자세히 어원을 따져 보면 저 둘은 살짝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붙은 애칭이다.

 

서울은 어떨까? 어떤 면에서 서울은 뉴욕보다도 더 복잡한 곳이다. 뉴욕이 그런 수많은 것들을 녹여서 뉴욕의 냄새가 나는 무언가로 만들어버리거나, 샐러드처럼 수많은 것들이 형태를 잃지 않은 채로 섞여서 제 역할을 하면서 조합을 이뤄내는 데 반해 서울은 수많은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이 뒤엉키고 충돌하면서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는 사실 샐러드 속의 올리브조각처럼 제 역할을 해내거나 녹아들기 보다는 제 멋대로 맛을 내곤 한다. 그래서 서울의 문화들은 사실은 가지런하거나 잘 정돈된 느낌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영등포나 이태원 뒷골목의 무질서한 네온사인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혼란스러움이야말로 서울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미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의 음식문화에서 재료들을 뒤섞은 후에 휘휘 저어 비벼먹는 음식은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비빔밥”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재료의 맛들이 앙상블을 이루기보다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섞여서 어떤 정신없는 맛을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지금의 서울은 용광로보다는 분명 비빔밥 같은 곳이다.

 

정확한 컨셉이나 뚜렷한 서울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하기 보다는, 수없이 무언가가 충돌하고 뒤엉키는 혼란스러운 도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매우 매력적이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빔밥은 분명히 맛있는 음식이듯이 말이다.

 

▲ 20CFBB CHIEF 디자이너 이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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