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완제품보다 앞서가야 한다”

이영관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
화학업계 최장수 CEO 50년 외길 인생이 던지는 메시지

TIN뉴스 | 기사입력 2026/04/14 [15:45]

▲ 이영관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의 회고록 〈소재가 경쟁력이다〉표지  © TIN뉴스

 

“남이 못 하는 것, 하지 않는 것, 없는 것을 만들어왔다” 

 

대한민국 화학섬유산업의 산증인이자 대표이사·회장만 26년을 지내며 ‘화학업계 최장수 CEO’로 불린 이영관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전 도레이첨단소재 회장)의 회고록 〈소재가 경쟁력이다〉 표지 뒷면에는 짧지만 강렬한 문장이 적혀 있다.

 

“소재는 완제품보다 앞서가야 한다.” 이 한 문장은 한국 산업이 지나온 지난 반세기의 압축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도 같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출발한 한국은 7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반도체·자동차·조선과 같은 눈에 보이는 산업의 성장 뒤에는 이를 떠받친 보이지 않는 기반이 있었다.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소재’가 바로 그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소부장 기업인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TIN뉴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국가적 화두로 떠오르며 소재의 중요성이 재조명됐지만, 이영관 회장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소재의 전략적 가치를 통찰해왔다.

 

그의 발자취는 곧 한국 화학섬유산업의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1970년대 초 삼성 제일합섬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평생을 섬유·소재 산업에 바친 그는, 맨손으로 시작된 국산 화학섬유산업이 첨단 소재 산업으로 도약하는 전 과정을 몸소 겪어낸 인물이다. 50년에 걸친 그의 경력은 산업의 변곡점과 궤를 같이한다.

 

이 회고록은 단순한 개인 성공담을 넘어, 한국 화학섬유산업이 위기를 돌파하며 축적해온 시간의 기록이다. 동시에 한국 제조업이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보여주는 산업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그가 현장에서 체득한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내가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회고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첫 번째 메시지는 분명하다. 주인의식 없는 조직은 지속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순간 일의 방식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 기사로 풀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인정신, 인내, 화합, 변화와 혁신, 역지사지’로 요약되는 그의 경영 철학은 한국 산업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 도레이첨단소재의 전신인 제일합섬의 1970년대 당시 경산공장 항공 사진. 제일모직은 내국인 투자 20억 원과 함께 도레이와 미쓰이물산의 각 100만 달러 등을 합친 총 28억 원의 자본금으로 제일합섬주식회사를 탄생시켰다. 1972년 7월 창립한 제일합섬은 설립 당시 총 자산규모 135억 원에 설비규모는 화섬방 3만 1,104추, 제직시설 348대, 염색가공 및 부대시설 각 1대, 폴리에스터 가공사 시설 2,752추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한 신입사원의 출발

월급쟁이가 아닌 주인으로

 

1973년, 한 청년이 삼성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제2차 오일쇼크를 앞둔 시기였고, 섬유산업은 여전히 한국 수출을 이끄는 핵심 산업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견인하던 중심에 의류와 섬유가 있었던 만큼, 제일합섬 입사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출발선은 남달랐다. 동료들이 “이제 월급쟁이가 됐다”며 안도할 때, 그는 그 표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월급쟁이라는 말은 제일 듣기 싫었다. 시켜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일의 주인’으로 규정했다.

 

그의 직장 생활은 철저한 주인정신에서 시작됐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자신의 일로 끌어안고 더 나은 해법을 찾으려 했다. 연공서열 중심의 당시 조직문화 속에서는 이례적인 태도였지만, 그는 스스로를 주인이라 여겼고 그만큼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움직였다.

 

▲ 1977년 7월 제일합섬 창립 5주년 기념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현장에서 길러진 경쟁력

 

첫 배치는 공장 현장이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 반복되는 공정,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수들. 많은 신입사원이 기피하던 자리였지만 그는 오히려 그 속에서 보람을 찾았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전율 같은 성취감을 느꼈다.”

 

현장은 그에게 단순한 근무지가 아니라 성장의 토대였다. 문제 해결을 통해 쌓은 경험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고, 훗날 경영자로서의 판단력으로 이어졌다.

 

승진은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임원에 오른 이후 그의 행보는 달라졌다. 1994년 이사보에서 출발해 불과 5년 만에 사장에 오른 이력은 당시에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그는 이를 특별한 기회나 운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공장의 공정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체득한 이해도가 결국 그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는 의미다. 

 

▲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973년 3월 구미공장 기공식, 1973년 제일합섬 구미공장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이병철(왼쪽 둘째) 삼성 창업주, 1973년 10월 구미공장 건설 전경.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인내가 만든 장거리 레이스

 

회고록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인내’다. 그의 삶에는 아버지가 강조했던 한 문장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일시지분면백일지우(忍一時之忿免百日之憂)”

한순간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

 

기업 조직에서 갈등과 부당함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길을 택했다. “분노는 더 큰 화를 부른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 인내는 결국 긴 시간의 경쟁에서 힘을 발휘했다. 자존심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버텨낸 결과, 그는 한국 화학섬유업계에서 ‘최장수 CEO’라는 평가를 얻게 된다.

 

짧은 순간의 승부가 아닌,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장거리 레이스. 그의 50년 산업 인생은 그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 1973∼1974년 제4차 중동 전쟁 시기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과 1978∼1980년의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공급의 부족으로 국제 석유 가격이 급등하여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는다. 각각 제1차 석유파동, 제2차 석유파동으로 칭하며 자원파동, 오일쇼크라고도 부른다. 제2차 석유파동은 1차 때와 달리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9년 경제성장률은 상반기까지는 10%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하반기부터 국내외 수요가 모두 급속히 둔화되어 6.4%로 낮아졌다. 사진은 에너지 10%절약 궐기대회(1977)   © TIN뉴스

 

위기를 기회로 국산화 성공

기술자는 애국자다

 

1970년대 후반, 한국 경제는 거센 외부 충격에 직면했다. 두 차례 오일쇼크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수출이 흔들리면서, 국가 성장의 핵심이었던 섬유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성장 곡선은 처음으로 꺾였고, 산업 전반에 위기의식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제일합섬의 젊은 기술자였던 그는 좌절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던 ‘폴리에스터 필름 국산화’라는, 무모해 보일 만큼 큰 목표였다.

 

▲ 1982년 7월 필라멘트 공장 준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해외 기술 길 막히자, 맨땅에서 시작

 

폴리에스터 필름은 당시 오디오·비디오테이프, 식품 포장, 전기·전자부품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던 핵심 소재였다. 특히 기존 섬유 공정과 기술적 연관성이 높아, 국내 기업들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주목받고 있었다.

 

1978년, 제일합섬은 일본 도레이와 기술 도입을 협의하며 국내 생산 기반 구축을 추진했다. 막대한 로열티를 감수하면서도 협약은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국내 화학기업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자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해당 기업은 ‘국산 기술 보호’를 이유로 해외 기술 도입 중단을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5년간 기술 도입을 금지했다. 수년간 준비해온 사업은 한순간에 멈춰섰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해내자.”

 

배울 곳도, 참고할 자료도 부족했다. 해외 기업들은 기술 공유를 꺼렸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연구소와 공장은 밤낮 없이 실험을 반복했고, 작은 단서 하나에도 매달렸다. 말 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한’ 기술 개발이었다.

 

▲ 1985년 7월 폴리에스터 베이스필름 공장 준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파단과의 전쟁

 

공장을 완공했다고 해서 생산이 곧바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난관은 ‘파단’, 즉 필름이 생산 과정에서 끊어지는 현상이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공정은 멈췄고, 원인을 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했다. 기술자들은 공장에 머물며 밤을 새우는 일이 일상이 됐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문제를 풀었다. 기술자의 일은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당시 한국은 매년 수천만 달러 규모의 필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단순한 기업 성과를 넘어 국가 경제에도 직접적인 기여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애국심’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산업 현실에서 비롯된 절박함이었다.

 

▲ 이영관(오른쪽) 전 회장이 1985년 제일합섬 재직 당시 비디오테이프 등에 쓰던 폴리에스터 필름 기술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 기술상을 받고 있는 모습.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불가능을 넘어서다

 

1983년 가을, 마침내 폴리에스터 필름 국산화가 성공했다. 수년간의 시행착오와 반복된 실패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국산 제품은 빠르게 수입품을 대체했고, 나아가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에까지 수출되기 시작했다.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기술을 수출하는 단계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수입을 대신하면, 그것이 곧 애국이다.”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실제 성과로 입증된 산업 현장의 언어였다. 이 성취는 포항제철의 첫 쇳물, 현대 조선소의 첫 선박과 함께 한국 산업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의 기반을 다져온 소재 기술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 2002년 4월 가공필름사업 자산양수도 계약 체결.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소부장의 뿌리,

그리고 현재진행형 과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지만, 그 본질은 이미 수십 년 전 현장에서 드러나 있었다.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은 흔들리고, 기술 주권이 없으면 경제 주권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우리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이영관 회장은 자신의 시간을 이렇게 정리한다. “못하는 것, 안 하는 것, 없는 것을 만들어온 과정이었다.” 그것이 곧 소재 산업의 경쟁력이며, 동시에 한국 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맨바닥에서 출발한 한국 화학섬유산업이 첨단 소재 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함께한 그는, 그 경험을 ‘행운’이라고 표현한다.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과제를 남긴다.

 

국산화는 과거의 성과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도전이라는 것.

 

그는 흔히 쓰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경계했다. 그 속에 담긴 체념을 읽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강조한 태도는 보다 직선적이다.

 

“정면으로 달려들어 즐겨라.” 위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돌파의 계기로 만드는 힘. 그의 산업 인생은 그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 2016년 9월 원면 LM(Low Melting) 준공식. LM섬유는 녹는 점이 낮아 부직포 등 각종 섬유 공정에서 화학접착제 대신 사용하는 친환경적 섬유로 주로 자동차용 내장재, 침구 및 가구용, 위생재 등의 소재로 사용된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실패가 남긴 교훈

실수를 딛고 성장하다

 

성공의 순간만큼이나 이영관 회장을 단단하게 만든 것은 실패였다. 그는 회고록에서 두 번의 뼈아픈 판단을 숨김없이 꺼낸다. 스판덱스와 편광필름. 훗날 세계 시장을 주도하게 되는 두 산업의 초입에서 기회를 놓쳤던 경험이다.

 

그는 이를 단순한 ‘판단 오류’로 치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대장간에서 하나의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의 담금질과 수백 번의 망치질이 반복되듯, 사람 역시 시행착오를 거쳐야 단단해진다는 인식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태도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 그 반복 속에서 그는 더욱 강해졌고, 실패는 결국 다음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딛고 성장하며 변화한다. 따라서 실수는 곧 기회다.”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직접 대가를 치르며 얻은 결론이었다. 

 

 

스판덱스, ‘고무실’의 전쟁

 

1980년대 후반, 글로벌 섬유산업의 중심에는 스판덱스가 있었다. 스타킹과 스포츠웨어 등 고기능성 의류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 장벽은 높았다. 초기에는 해외 기술자를 통해 습식 공정으로 생산을 시도했지만, 실이 끊어지는 문제가 반복되며 생산 안정성 확보에 실패했다. 수율은 60%에도 미치지 못했고, 1년이 넘도록 뚜렷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 문제 해결을 맡게 된 그는 공정의 근본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건식 공정 전환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자체 개발한 설비가 가동되면서 생산은 빠르게 안정됐다.

 

상황이 반전되자 세계 1위 화학기업이 협력을 제안해왔다.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합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변수 속에서 재무적 부담이 커졌고, 결국 지분을 넘기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훗날 이 결정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눈앞의 거대한 시장을 흘려보낸 것 같아 아쉽다.”

 

▲ 탁월한 표면형상 제어 및 코팅기술에 결점 제로화를 접목한 도레이첨단소재 디스플레이용 필름 © TIN뉴스

 

편광필름, 놓쳐버린 미래의 신호

 

또 하나의 아쉬움은 편광필름 사업이다. LCD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로, 이후 수십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한 분야다.

 

2000년대 초, 일본 경영진으로부터 해당 사업 인수를 강하게 권유받았지만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였고 설비는 노후화돼 있었으며, 인수 조건 또한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는 위험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했고, 결국 인수를 보류했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폭발적 확대와 함께 편광필름은 핵심 소재로 자리 잡았다. 그는 훗날 이 선택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시작했더라면 회사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기술 산업에서 ‘타이밍’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준다. 한 번의 판단이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 도레이새한은 선행투자가 이루어진 PP-5호기의 가동으로 총 연산 4만 9,000톤이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명실상부한 아시아 1위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5월 PP-5호기 준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실패를 자산으로 바꾸는 힘

 

스판덱스와 편광필름, 두 번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놓친 기회로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 경험을 통해 더 멀리 보는 눈을 얻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교훈을 끌어내며, 다시 도전으로 이어가는 힘. 그것이 그가 긴 시간 산업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음 결과가 달라진다.

 

결국 그의 산업 인생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실수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의 단계라는 것이다.

 

▲ 2023년 12월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이 도레이 그룹의 성장과 경영자의 리더십을 주제로 굿모닝 수요특강을 하고 있다. 구미시 제공  © TIN뉴스

 

한국 사회의 ‘실패 불감증’

 

이영관 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개인의 회고를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 입시, 취업, 창업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실패가 경력 전체를 규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낙오로 받아들여지고, 다시 도전할 기회마저 좁아지는 구조가 반복된다. ‘실패는 곧 뒤처짐’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의 시각은 다르다. Silicon Valley에서는 실패 이력이 오히려 경쟁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 번의 실패는 시장을 직접 겪어본 경험이며, 리스크를 감당해본 이력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력을 입증하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패의 횟수는 약점이 아니라 ‘실전 경험의 축적’으로 읽힌다.

 

이영관 회장의 경험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스판덱스와 편광필름에서의 좌절은 분명 아쉬운 판단으로 남았지만, 그는 그것을 후회로 묶어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가장 날카로운 기준으로 삼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넘어졌다는 결과보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실패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판단의 기준을 다듬으며, 다음 선택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이전보다 더 멀리 보는 눈을 갖게 되었고, 더 큰 산업과 더 먼 미래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결국 그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계기이며,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족쇄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여는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 2007년 3월 중국 부직포 공장 기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글로벌 무대로의 확장

인건비 대신 시장을 보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은 생존 전략을 근본부터 다시 짜야 했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수출 모델은 한계를 드러냈고, 기업들은 더 넓은 시장으로 직접 나아가야 했다.

 

이영관 회장은 주저하지 않았다. 부직포 사업을 앞세워 중국과 인도네시아, 인도 등 해외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생산과 판매를 현지에 뿌리내리는 ‘현지화 전략’이었다.

 

스펀본드 부직포는 위생용품부터 의료, 산업용까지 폭넓게 활용되는 소재로 ‘제3의 직물’이라 불렸다. 여기에 도레이첨단소재는 아시아 최초로 다층 구조 제품을 개발하며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고, 이는 글로벌 확장의 핵심 기반이 됐다.

 

그는 해외 진출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 “인건비가 아니라 시장성을 봐야 한다.”

 

당시 많은 기업이 낮은 인건비를 따라 해외로 이동했지만, 그는 수요가 있는 곳, 성장성이 있는 시장을 우선했다.

 

2006년 중국 장쑤성 난퉁에 생산법인 도레이폴리텍난통(Toray Polytech Nantong)을 설립했다. 초기 조직은 한국인 4명과 현지 직원 3명에 불과했지만, 철저한 품질 관리와 현지 맞춤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 2011년 12월 도레이폴리텍자카르타(TPJ) 1호기 기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인도 대신 인도네시아, 전략적 우회

 

그의 시선은 일찍부터 인도 시장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인도는 잠재력은 크지만 시장 환경과 구매력 측면에서 제약이 컸다. 그는 정면 돌파 대신 우회 전략을 택했다. 먼저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연간 수백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거대한 소비 시장이었다. 위생용품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였고, 향후 인도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교두보로도 적합했다. 이는 단순한 진출이 아니라, 시장의 ‘순서’를 설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 2019년 12월 구미 1공장 원면 생산 라인.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TIN뉴스

 

기술보다 중요한 것, ‘태도’

 

그는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기술이 아닌 태도로 봤다. “외국에서 일하려면 현지인이 되어야 한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고객의 요구를 읽고, 그 사회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식 경영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는 현지 인재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했고, 관계 형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 2011년 5월 도레이폴리텍난통(TPN) 2호기 준공식 및 3호기 기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글로벌 전략의 본질

 

2000년대 이후 많은 한국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지만, 본사 중심의 일방적 전략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영관 회장은 그보다 훨씬 앞서, 글로벌 전략의 본질이 ‘현지화’에 있음을 체득하고 있었다.

 

글로벌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각 시장의 조건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는 과정이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한국 소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 2010년 4월 22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사장과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첨단소재로 세계 선두기업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회사명을 도레이첨단소재로 변경을 밝히고 탄소섬유사업 신규 진출을 선언했다.  © TIN뉴스

 

미래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

철보다 강한 실 ‘탄소섬유’

 

이영관 회장의 시선은 늘 다음 산업을 향해 있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실패에서 얻은 통찰, 글로벌 무대에서 체득한 전략이 모여 그가 주목한 소재는 바로 ‘탄소섬유’였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볍다’는 특성으로 항공, 자동차, 풍력, 우주항공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그러나 높은 기술 장벽과 비용 문제로 시장은 일본과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가능성을 먼저 본 시선

 

2000년대 초, 일본을 오가며 글로벌 기업의 전략을 접하던 그는 탄소섬유의 미래 가치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당시 한국에는 생산 기반조차 없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 ‘공백’에서 기회를 읽었다. “지금은 수요가 없어도, 앞으로 반드시 필요해질 소재다.”

 

수요가 없다는 현실은 일반적으로 투자 회피의 이유가 되지만, 그는 반대로 ‘선점의 기회’로 해석했다. 탄소섬유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미래 산업 구조를 바꿀 핵심 소재라고 판단했다. 

 

▲ 2011년 1월 17일 오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도레이첨단소재 기자간담회에서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사장이 올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도레이의 닛카쿠사장은 도레이의 기술이전으로 한국에 탄소섬유 공장을 건설, 소재 국산화 실현에 기여하고 나아가 관련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나가는 한편 향후 아시아의 중핵 생산거점으로 성장시켜나갈 계획을 밝혔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설득, 또 설득

 

문제는 본사의 판단이었다. 당시 도레이 내부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우선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었고, 한국은 후순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출장을 갈 때마다 관련 사업 책임자를 찾아가 한국의 가능성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 기반,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 동북아 물류 경쟁력, 자유무역 환경까지. 그는 단순한 주장 대신 ‘논리와 조건’을 쌓아갔다. 동시에 한국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해 정책적 지원 기반도 마련했다. 기업 내부 설득과 외부 환경 조성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 2013년 4월 고성능 탄소섬유 1호기 공장 준공식 및 2호기 증설 기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짝사랑이 현실이 된 순간”

 

결국 변화는 찾아왔다. 수년간의 검토 끝에 2011년, 경북 구미에 한국 최초의 탄소섬유 공장 건설이 결정됐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랜 짝사랑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공장 설립을 넘어, 한국 소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출발점이 됐다.

 

수요를 기다리지 않는다

 

탄소섬유의 잠재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기차, 수소차,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산업이 확산될수록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소재 기업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한다. “수요가 생긴 뒤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예측해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철학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실행해 온 전략이었다. 수요가 없을 때 투자하고, 시장이 열릴 때 이미 준비돼 있는 상태.

 

▲ 도레이첨단소재의 탄소섬유복합재료 제품 포트폴리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미래를 먼저 만드는 산업

 

탄소섬유는 그에게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었다. 한국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징하는 소재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을 바꾸는 힘, 아직 오지 않은 시장을 먼저 준비하는 태도. 그가 탄소섬유를 통해 보여준 것은 결국 하나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 2005년 5월 6일 도레이새한 구미 제3공장 기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30년을 내다본 공장

 

그가 건설본부장을 맡아 예산 계획에서부터 완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총괄한 구미 3공장은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었다. 그는 “30년이 지나도 뒤처지지 않는 공장”을 목표로 설계에 직접 관여했다. 기존 공장의 문제점 376가지를 분석해 개선안을 반영했고, 자동화와 무인화 시스템을 적극 도입했다. 그 결과 해당 공장은 지금까지도 높은 효율성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2016년 7월 PPS 군산공장 준공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슈퍼’ 플라스틱, 새만금에 유치

섭씨 300도에도 버티는 소재의 힘

 

일본 도레이의 기술 가운데, 그는 유독 한 가지 소재를 국내에서 반드시 생산해보고 싶었다. ‘폴리페닐렌 설파이드(PPS)’. 이른바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고기능 소재였다.

 

일반 플라스틱이 150도 안팎에서 변형되는 것과 달리, PPS는 25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한다. 여기에 보강재를 더하면 300도 환경에서도 성능을 유지한다. 가벼우면서도 강철에 버금가는 강도를 지닌 이 소재는 자동차, 항공, 전자 산업에서 금속을 대체할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요구되는 경량화와 연비 개선,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과제에 정확히 부합하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 기술은 진입 장벽이 높아, 전 세계에서도 소수 기업만 생산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 2013년 10월 7일 김완주 전북도지사(왼쪽)와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이 도레이의 새만금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동남아로 향하던 공장, 방향을 바꾸다

 

당시 PPS는 일본에서 생산돼 중국으로 공급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비용 경쟁력을 고려해 도레이는 동남아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방안을 거의 확정한 상태였다. 그는 이 결정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직접 일본을 찾아가 설득에 나섰다.

 

“왜 굳이 동남아에서 만드느냐. 한국이 더 가깝고,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 이미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 입지를 직접 검토하며 대안을 준비했다. 초기에는 포항이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원료 수급과 물류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새만금이었다. 원료 조달이 가능한 산업 기반이 인근에 형성돼 있었고, 향후 항만 개발까지 예정돼 있어 물류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전라북도와 정부를 직접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고,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냈다. 정책적 인센티브까지 마련된 상태에서 그는 다시 도레이를 설득했다. “지금 한국에 짓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가져갈 것이다.”

 

치밀한 준비와 집요한 설득 끝에, 이미 동남아로 기울었던 결정은 극적으로 뒤집혔다. PPS 공장 입지는 새만금으로 최종 확정됐다.

 

▲ 도레이첨단소재의 전북 새만금사업단지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PPS 컴파운드 제품  © TIN뉴스

 

허허벌판에서 시작된 ‘기적’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새만금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매립지였다. “이곳에 1년 반 만에 공장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현장을 찾은 도레이 경영진의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가능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이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해야 했고, 결국 해냈다.

 

2016년 준공식이 열린 날, 불과 1년 반 전까지 황무지였던 곳에 첨단 공장이 들어섰다. 참석자들은 이를 두고 ‘새만금의 기적’이라 표현했다. 이 공장은 도레이가 해외에 건설한 첫 PPS 생산기지이자, 국내 최초의 PPS 생산 공장이었다. 동시에 한국을 대중국 공급의 전진 기지로 만드는 상징적 거점이 됐다.

 

▲ 도레이첨단소재가 2025년 11월 31일 PPS 2호기 군산공장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된 PPS-2호기는 저비용·고품질·고성능 제품을 연간 5000톤 규모로 양산하는 최신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새만금 전체 PPS 생산능력을 1만3800톤으로 확대시켰다. © TIN뉴스

 

기술을 넘어서, 기술을 진화시키다

 

새만금 공장은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었다. 기존 일본 공장을 넘어서는 구조로 설계됐다. 원료를 외부에서 들여오는 방식이 아니라, 원료 생산부터 수지, 컴파운드까지 이어지는 일관 공정을 구축했다. 이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수행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였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기술의 ‘재해석’이자 ‘진화’였다.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공정을 혁신하고, 비용과 품질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린 결과였다.

 

그는 이를 분명히 했다. “본사의 기술만으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더 싸고, 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개선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증설까지 이어지며 생산 능력은 더욱 확대됐고, 국내 공급망 안정과 수출 경쟁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 나가고 있다.

 

PPS 공장 유치는 단순한 투자 유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결정된 흐름도 끝까지 설득하고 뒤집을 수 있다는 사례이자, 준비된 전략이 어떻게 결과를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 2020년 3월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가 마스크 필수 원자재 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를 방문해 이영관 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TIN뉴스

 

기저귀가 마스크로 변신하다

위기 속에서 빛난 소재 기술

 

2020년 초, 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다. 그 중심에는 ‘마스크 대란’이 있었다.

 

봄철 미세먼지 대비용이던 마스크는 하루아침에 생존을 위한 필수 방역 물품이 됐다. 수요는 폭발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약국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웃돈을 줘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마스크 5부제’라는 강력한 조치를 도입해야 했다.

 

당시 하루 약 2,000만 장에 달하는 마스크가 필요했지만, 기존 생산 설비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원료였다. 마스크 생산의 핵심인 부직포 필터가 부족해, 생산을 늘리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위기 속에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한번 나서 보자.” 도레이첨단소재는 이미 부직포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기저귀와 위생용품에 쓰이는 스펀본드 부직포 생산에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회사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기저귀용 부직포를 생산하던 기존 라인을 마스크 필터용으로 전환하는 ‘긴급 전환’이었다. 핵심은 기술이었다.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정전기 차징 기술을 적용해, 공기가 통과할 때 미세 입자와 바이러스를 흡착하도록 만든 것이다. 동일한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기능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소재가 탄생했다.

 

▲ PP 스펀본드 부직포 생산라인.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속도를 바꾼 공정 혁신

 

일반적인 마스크는 외피·내피용 부직포와 필터용 멜트블론 부직포를 각각 생산한 뒤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두 종류의 부직포를 한 번에 생산하는 복합 공정을 개발한 것이다. 이 혁신으로 생산 속도는 기존 대비 약 5배까지 향상됐다.

 

공장은 곧바로 풀가동에 들어갔다. 하루 13톤, 약 660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원단이 공급되기 시작했고, 이는 국내 마스크 품귀 현상을 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도레이첨단소재는 코로나19에 대응해 국민 안전과K방역을 위해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 기여한 점 등을 높이 인정받아 제34회 섬유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 TIN뉴스

 

이익보다 먼저였던 책임

 

당시 마스크 원료 가격은 급등하고 있었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마진을 1원도 더 붙이지 마라.”

 

기저귀용 부직포를 생산할 때와 동일한 수준의 이익만 남기도록 지시했다.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제한한 결정이었다. 그에게 기업의 역할은 단순한 이윤 창출이 아니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2020년 3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경북 구미의 마스크 원자재 생산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를 방문, 생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TIN뉴스

 

기술이 만든 또 하나의 ‘애국’

 

마스크용 부직포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제조업체들의 생산 여건은 빠르게 개선됐다.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마스크 공급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찾은 정부 관계자들은 생산라인 전환과 신속한 대응에 감사를 표하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보상은 따로 있었다. “국민의 건강에 기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한 보답이었다.” 이 경험은 그가 평생 강조해온 신념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소재는 단순한 산업의 기반을 넘어, 때로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것. 기저귀용 부직포가 방역용 마스크로 변신한 순간, 기술은 곧 사회적 책임이 되었고, 또 하나의 ‘애국’이 현실이 됐다.

 

▲ 도레이와 도레이첨단소재는 2024년 5월 22일 서울 콘래드호텔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사진 중앙), 경북도 이철우 도지사(왼쪽 2번째), 구미시 김장호 시장(맨 왼쪽), 오야 미츠오 도레이 대표이사 사장(왼쪽 네번째), 김영섭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맨 오른쪽),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까지 고기능 탄소섬유 등 신성장 분야에 대한 구미국가산단 5천억원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 TIN뉴스

 

멈추지 않는 도전

외국계 기업이라는 편견의 벽을 넘다

 

이영관 회장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외국계 기업’에 대한 시선을 아쉬움으로 바라본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수출 실적이 한국 통계에 반영되고, 세금을 국내에 납부하며, 구성원과 경영진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구조만을 이유로 ‘외국계’라는 낙인이 따라붙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 중 하나는 웅진케미칼 인수 과정이었다. 당시 경쟁사들은 ‘외국계 기업’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여론전을 펼쳤고, 이는 단순한 기업 경쟁을 넘어선 편견의 문제로 다가왔다. 다행히 언론의 균형 잡힌 시각 속에서 인수는 정상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는 그 과정을 “가장 서글펐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는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짚는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 나가 공정한 대우를 기대하면서, 정작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에는 배타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 2013년 11월 웅진케미칼 주식매매계약서 체결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영관 회장이 강조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기업을 판단하는 잣대는 ‘국적’이 아니라 ‘기여’여야 한다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 납세, 기술 축적, 산업 발전 기여도. 이 네 가지가 기업을 평가하는 본질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도레이는 1963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60년 넘게 한국 산업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는 “한국에서 뿌리내린 기업을 단지 외국계라는 이유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 2004년 2월 경북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일본 도레이 사장을 접견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이영관 도레이새한 사장과 문희상 비서실장도 동석했다.  © TIN뉴스

 

‘현지인이 되어라’는 원칙

 

그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글로벌 경영 철학은 단순하다. “외국에서 일하려면 현지인이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도레이첨단소재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국에 진출한 이후 ▲장기적 산업 기여 ▲한국인 중심 경영 ▲파트너십 신뢰 ▲투명 경영이라는 기준을 꾸준히 지켜왔다. 이는 단순한 투자 기업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 2015년 5월 경상북도 이인선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꾸려진 ‘경북 탄소산업 선진기업 시찰단’이 기업-연구소간 클러스터가 잘 갖춰진 세계 제1의 탄소기업 일본 도레이社를 직접 방문해 ‘경북형 탄소산업 창조혁신 조기 성공 모델’을 찾아 나섰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한국에서 성장한 글로벌 기업

 

도레이첨단소재는 탄소섬유, 배터리 분리막, PPS 등 첨단 소재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오며 한국 내 산업적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첨단 공장을 한국에 두고 생산하고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그것이 곧 한국 기업이다.” 이 정의는 단순한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안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다.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앞으로를 향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는 기업, 임직원이 자부심을 느끼는 조직, 그리고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는 글로벌 기업. 그 중심에는 변함없이 ‘소재’가 있다.

 

첨단 소재 개발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는 것. 그것이 그가 끝까지 놓지 않는 목표다. 외국계냐 국내 기업이냐를 넘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어떤 책임을 다하는가. 이영관 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결국 그 질문으로 귀결된다.

 

▲ 한국도레이 R&D센터는 서울 마곡지구에 조성된 지하 2층~지상 8층, 연면적 약 29,953㎡(약 9,068평) 규모의 첨단 연구시설이다.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일의 진정한 의미

 

이영관 회장은 50년에 걸친 직업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을 “소재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에 충실해온 삶이었다는 의미다. 겉이 아닌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 그리고 조직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안목은 그가 쌓아온 경영 철학의 중심이었다.

 

그는 기업 경쟁력의 근간으로 ▲핵심 인재 ▲핵심 분야 ▲조직의 ‘맥’을 꼽는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기반을 얼마나 단단히 다지느냐가 결국 장기 성패를 가른다는 판단이다.

 

초기에는 일이 삶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단계에 도달했다. 성장은 도전과 혁신, 그리고 인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온 시간이었다.

 

▲ IT소재 생산공정.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100년 기업을 향한 도전

 

도레이는 유기합성화학, 고분자화학, 바이오·나노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글로벌 소재 기업이다. 이영관 회장은 도레이첨단소재를 이끌며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한국에서 100년 기업을 만들겠다.”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도레이의 첨단 기술과 사업을 한국에서 온전히 구현하는 것. 그는 이를 위해 본사에 지속적으로 신사업과 인수합병을 제안하며 한국 소재 산업의 저변을 넓혀왔다.

 

▲ 2019년12월 한국도레이R&D센터 준공식 & VISION 2030 선포식. 도레이첨단소재 제공  © TIN뉴스

 

새로운 산업을 향한 비전

 

도레이첨단소재는 탄소섬유, PPS, 글로벌 확장 등을 중심으로 ‘비전 2020’을 실현했고, 이제 ‘비전 2030’을 통해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그는 2차 전지 소재와 배터리 리사이클링, 분리막 기술을 미래 핵심 축으로 주목한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소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 ▲자율주행 기반 모빌리티 소재 ▲친환경 복합소재 ▲수처리 ▲스마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또 하나의 과제로 그는 의료·의약 분야를 꼽는다. 도레이가 인터페론 개발과 혈액 정화 기술에서 축적한 역량을 한국에서도 구현해, 소재 기업을 넘어 첨단 헬스케어 영역까지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도레이첨단소재가 단순한 소재 기업을 넘어, 도레이가 글로벌 시장에서 전개하는 주요 첨단 사업을 국내에서도 대부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2023 자랑스러운 구미사람 대상을 수상한 이영관 회장  © TIN뉴스

 

다섯 가지 키워드, 그리고 다음 세대

 

그는 자신의 50년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주인정신, 인내, 화합, 변화와 혁신, 그리고 역지사지. 이 다섯 가지는 개인의 성공 공식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산업이 마주한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소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을 지탱하는 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플라스틱이 현대 산업을 가능하게 했듯, 탄소섬유와 첨단 소재는 미래 산업을 만들어갈 기반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과 경영 모든 면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경쟁력에 집중해왔다.”

 

▲ 이영관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 초청 특별 강연이 오는 4월 27일 섬유센터 17층 스카이볼룸에서 열린다.  © TIN뉴스


끝나지 않은 여정

 

그의 목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좋은 소재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기업이 100년을 넘어 200년까지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다음 세대가 이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조용한 실천을 남겼다. 회고록 <소재가 경쟁력이다>의 인세 전액을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고, 섬유패션인들과 직접 만나 경험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했다. 4월 27일 오후 2시 섬유센터 17층에서 열리는 이영관 이사장 초청 특별 강연은 (재)섬유패션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itfp.or.kr)에서 참석 신청이 가능하다.

 

소재처럼 묵묵히, 그러나 산업의 중심에서.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다음 세대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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