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유산업이 ‘비상(非常)’과 ‘비상(飛翔)’이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 글로벌 경기 둔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전통 섬유기업들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세계 1위로 도약한 효성티앤씨 스판덱스는 K-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흔들리는 전통 섬유…산업 전반에 켜진‘비상벨’
섬유산업은 한때 ‘산업의 쌀’로 불리며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다. 1970~80년대 대구·구미·경산을 중심으로 수출 호황을 이끌었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중국·동남아 저가 공세에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지난해 섬유 수출은 104억 8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4% 줄었다. 주요 섬유단지의 평균 가동률은 하락세이며, 중소기업들은 노후 설비와 원가 상승, 인력난으로 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현장에서는 “원부자재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판매 단가는 수년째 제자리”라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 속 날개 단 효성티앤씨…“친환경·첨단이 게임 체인저”
이 같은 ‘비상(非常)’ 국면에서도 효성티앤씨(대표 김치형)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CREORA)’를 앞세워 글로벌 의류·스포츠웨어 기업들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친환경·고부가가치 소재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효성티앤씨는 고부가가치, 고기능성 섬유소재인 스판덱스와 폴리에스터, 나이론을 생산·판매해 지난해 섬유 부문에서만 3조 1572억 원(전체 매출의 40.6%)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1992년 독자 기술로 스판덱스를 개발한 이후 생산거점을 한국, 중국, 베트남, 튀르키예, 브라질, 인도로 확대하며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글로벌 마케팅, 생산 능력 증대를 통해 세계 시장 점유율 30% 안팎을 유지하며 세계 1위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스판덱스의 주요 원재료인 PTMG를 중국 및 베트남에서 직접 생산하면서 폴리에스터·나이론 등 수익성이 높은 차별화 제품군을 강화해 내실을 다지고 있다.
2022년에는 세계 최초로 바이오 스판덱스 ‘크레오라 바이오베이스드’를 상용화했고, 2023년에는 친환경 블랙 스판덱스를 선보였다. 같은 해 65개 섬유 브랜드를 고기능성 섬유 브랜드인 ‘크레오라’와 친환경 섬유 브랜드인 ‘리젠(regen)’으로 통합하며 전략적으로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전환했음을 공식화했다.
ESG와 스마트팩토리…기술혁신으로 체질 개선 속도
효성티앤씨의 강점은 단순한 생산량 확대가 아니라 친환경 기술과 스마트팩토리 전략에 있다. 업스트림에서는 리사이클·바이오 원료를 적용한 원사 생산, 스마트팩토리 공정, 고효율 설비·재생에너지 사용 등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편·제직 협력업체의 고효율 설비투자 및 친환경 인증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다운스트림에서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효성티앤씨의 지속가능한 솔루션 공급을 확대하고, 패션산업 내 지속가능한 소재 인식 확대를 위한 이니셔티브 활동과 국내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리사이클 순환구조 구축, 가먼트 리사이클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지원 등 패션산업 내 자원 순환구조 시스템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9년에는 공정 중 발생한 원사 폐기물을 100% 활용한 ‘리젠 스판덱스’를 국내 최초 상용화했다. 리젠 스판덱스는 RCS 인증을 획득하였으며, LCA 평가 결과 일반 스판덱스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74% 감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효율 염색기, 폐수 열 교환기 설치로 용수를 재활용하는 염색 공정 개선으로 13.4TJ의 에너지와 5만5760톤의 용수를 절감했다.
이외에도 세계 최초로 고온 염색은 물론 가공 후에도 직물 신축성이 뛰어난 고내열/고신도 스판덱스와 환경 친화적인 저온 세팅성 스판덱스 등을 개발해 국내 소재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베트남과 중국 공장에는 IT전문 업체인 효성ITX와 협력해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했다. 공정모니터링과 품질관리시스템, 스마트 IoT(사물인터넷) 적용으로 불량률을 낮추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또 생산라인의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 유지보수를 구현했다.
애슬레저 웨어 시장의 성장에 따른 기능성 섬유 수요 증가로 글로벌 스판덱스 시장의 수요는 연평균 8%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14.5% 이상 줄일 계획이다. 탄소중립과 ESG 경영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발주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해야만 생존이 가능해졌다.
정부도 K-섬유의 재도약을 지원한다. 2030년까지 산업용·친환경 섬유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0%(현재 2~3%) 달성, 디지털 전환 60%(현재 35%)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고성능 아라미드, 고강도 탄소섬유, 내극한 해양 수산섬유, 환경용 첨단 섬유, 차세대 전자통신 섬유 등 첨단 산업용 섬유의 핵심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보하고, 산업용 섬유 얼라이언스를 운영해 유망제품과 기술을 발굴할 계획이다. 아울러 산업용 섬유의 품질과 성능 검증을 위한 테크섬유 제품 인증평가 지원센터도 올해 안에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염색·가공·복합재 제조 분야의 폐수 감축, 에너지 효율 개선에는 310억 원을 투입해 친환경·저탄소 공정으로 전환을 돕고, 2026년까지 200개 이상 중소기업에 폐열 회수 설비를 보급한다. ‘K-Eco Design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친환경 소재 사용을 유도하고,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시장수요 예측과 디자인 기간을 80% 이상 단축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2026년까지 개발하고, 기업 간 협업으로 신속 생산이 가능한 커넥티드 마이크로 팩토리 구축을 위한 기반도 추진한다.
아울러, 반복 공정, 인력 부족이 심한 공정을 대상으로 2028년까지 250개 이상의 기업에 자동화 설비 보급을 추진하며, 메타패션(가상의류) 시장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체험·창작 공간인 ‘메타패션 플레이그라운드’도 3개로 확대한다. 이와 함께, 섬유패션 분야에 확산되는 친환경·디지털 등 하이테크 분야의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석·박사급 전문 인력을 2028년까지 1000명을 양성한다.
‘비상’은 날개의 연료
업계 전문가들은 “효성의 사례처럼 기술 혁신과 ESG 경영을 병행한다면, 전통 섬유산업도 충분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며 “소재·패션·유통을 아우르는 ‘K-텍스타일 밸류체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실타래 속에는 여전히 ‘비상’이라는 단어가 교차한다. 하지만 효성이 보여준 것처럼 위기의 불꽃은 곧 날개의 연료가 될 수 있다. 기술력과 ESG, 글로벌 시장 감각을 갖춘 기업들이 늘어날수록 K-섬유의 체질은 강해지고, 산업 생태계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장대한 飛翔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다음 장이 기대된다.
김상현 취재팀장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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