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禁女)지대’ 유리벽을 깨다

14년차 女 패턴사 ‘로제패턴실’ 여혜은 실장
업계에선 맛집…“디자이너의 상상을 현실로 담아드려요”

TIN뉴스 | 기사입력 2024/11/27 [10:38]

 

“여자가 무슨 패턴사를 한다고 패턴그레이딩이나 해.”. “패턴사는 남자가 하는 거야.” 등등 소위 ‘금녀의 공간’으로 불리는 남자 패턴사 사이에서 유리벽을 깨고 묵묵히 여성 패턴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최근 무신사스튜디오 동대문점에 새 둥지를 튼 ‘로제패턴실의 여혜은 실장’이다.

직업정보에 따르면 ‘패턴사’는 디자이너의 스케치나 작업 지시서에 따라 패턴 용지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의류의 패턴 즉, 옷 설계도를 제작하는 일을 담당한다. 패턴 용지 위에 의복의 본을 제도하고 패턴 라인대로 오려내어 패턴 모형을 만든다. 패턴에 따라 시제품을 제작하고 패턴과 시제품을 비교해 패턴을 수정, 보완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국내 패션사는 오랜 세월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주지도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 만큼 철저하게 여성을 배제해왔다. 10명 중 1명 정도로 여성 패턴사는 극소수다. 대부분 패턴을 비율과 수치에 따라 확대, 축소하는 패턴 그레이딩이 주 작업이다.

 

그리고 현재 패턴사의 평균 연령은 60~70대.

오랜 경륜과 실력만큼 반대로 새로운 트렌드와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후배 패턴사를 양성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패턴 기술을 물려주는 식의 폐쇄적인 문화가 여전하다.

 

한편 우리나라와는 반대인 나라도 있다. 캐나다다. 패턴사가 대부분 여성이다. 이유는 “패턴사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남성들이 패턴사 일을 꺼려한다고 한다. 금녀의 벽을 허문 14년차 여성 패턴사 여혜은 실장은 패턴사 등 직원 3명과 함께 로제패턴실을 7년째 운영 중이다.

 

여성 패턴사로 인정받기까진 고된 시련과 노력이 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살에 패션브랜드 매장 판매사원으로 취업해 평일에는 매장에서, 주말에는 봉제패턴학원에서 8시간씩 패턴 공부에 매달렸다. 몸도 피곤할 텐데 8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패턴작업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여 실장은 “학원에서 패턴을 뜨면서 오롯이 한 곳에 집중하다보면 금세 시간이 흘러갔고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게 내 천직이구나라는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패턴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직후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무작정 신당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무급이어도 좋으니 기술을 배울 수 있게 기회를 달라”며 수십 곳을 찾아다녔지만 쓴 고배만 마셨다. 갓 졸업한 초년생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에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업체를 찾아다녔고, 결국 한 곳에서 받아주었다. 여 실장은 2017년 창업 전까지 이곳에서 패턴기술과 CAD 등의 기술을 익혔다.

 

막내 보조 패턴사로 들어가 근무하던 중 갑작스러운 여성 그레이딩사들의 퇴사로 기회가 찾아왔다. 통상 10년 이상 배워야 하는 패턴기술을 5년 만에 배우고 몸으로 익히는 기회였다. 패턴실장의 1:1 교육과 컴퓨터에 미숙한 패턴실장의 대신해 독학으로 CAD를 익혔다. 밤에는 패턴기술을 익히고 공부하고, 낮에는 패턴실장을 도와 일을 했다. 이 곳에서의 경험은 로제패턴실의 큰 자산이자 무기가 됐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여 실장은 2017년 드디어 황학동 조그마한 단칸방에 패턴실을 열었다. 창업 후 3년 동안은 혼자서 모든 걸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더 이상 혼자서는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직원 한 명을 채용했고 현재는 총 3명으로 직원과 함께 하고 있다. 창업 첫 달 84만 원이던 매출은 서너 달 후 600만 원으로 매년 매출은 안정적이고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선 ‘맛집’으로 통해요

 

로제패턴실은 업계에선 일명 ‘맛집’으로 통한다.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이는 여 실장이 조언한 ‘패턴 제작업체 선정 시 요소’이기도 하다. ▲패턴의 완성도 ▲원활한 소통 능력 ▲최신 기술 활용 등 종합적인 요소가 반영된 곳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우선 ‘빠른 속도’다. 패턴작업 의뢰를 받으면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빠른 트렌드 변화와 시즌별 대응 등 속도가 관건인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에겐 주요한 선택 요건 중 하나다. 

 

다음으로 ‘원활한 소통’이다. 60~70대 연령의 남성 패턴사들과 작업 중 잦은 다툼이 다반사인 디자이너들에게 30대 여성 패턴사의 존재는 반길 일이다. 이러한 여성 패턴사 대 디자이너와의 케미가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소통, 즉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실력 즉 ‘패턴의 완성도’다. 여 실장은 창업 전 일했던 패턴실에서 CAD부터 수패턴, CAD패턴, 수치 및 비율 패턴 그레이딩까지 다양한 기술과 경험치를 쌓았다. 로제패턴실은 기본적으로 ‘클로(CLO)’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클로는 업계에서 많이 알려진 소프트웨어다. 2D부터 3D 구현까지 소재의 질감이나 입체감 있는 의상 구현이 가능해 로제패턴실과 합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수치와 비율 패턴 그레이딩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그레이딩’은 사전적 의미로는 ‘단계를 짓는다. 분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복식용어로는 입체재단이나 평면제도에 의해 제작된 한 가지 사이즈의 패턴을 등차적으로 확대 또는 축소하는 작업이다. 각종 사이즈로 생산하는 기성복 업체에서는 필수적이다.

 

통상 그레이딩은 수치와 비율 두 가지다. ‘수치 기반 그레이딩’은 디자이너가 기본 패턴사이즈를 결정하고 각 사이즈마다 필요한 치수를 수치로 정한다. 다만 체형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반면 ‘비율 기반 그레이딩’은 패턴의 특정부분을 비율에 따라 조정한다. 예를 들어 어깨 넓이나 허리둘레를 중점적으로 고려해 그레이딩하는 경우인데 이는 체형에 적합한 패턴을 제공할 수 있는 오랜 경험과 기술을 요구한다. 로제패턴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적절하게 적용해 디자이너가 구현하고자 하는 옷에 100% 근접하는 재현율을 높이고 있다. 페턴사의 역량은 디자이너가 제시한 작업 지시서를 반영해 평면의 패턴을 입체화시계 최소한 수정을 통해 생산 전 완벽한 한 벌의 옷을 완성해내는 판단과 숙련된 기술로 판가름 난다.

 

 

후배 예비 패턴사의 길을 열다

 

여 실장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친절한 패턴사 로제와 함께하는 옷놀이), 유튜브 채널(ROSE PATTERN)을 운영 중이다.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에는 패션, 컬러 등의 최신 트렌드 정보를 정리한 글을 올리거나 또는 예비 패턴사들을 위한 정보들을 올려 공유하고 있다.

 

특히 1만 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컨텐츠 중 6만4,000여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한 ‘패턴사 인정하는 완벽한 작업지시서란?’ 외에도 ‘의류제작 5분 만에 끝내기’ 등의 컨텐츠는 1만 여 뷰를 넘기며, 많은 관심을 얻었다.

 

여 실장은 자신이 패턴사가 되기까지 고된 시간과 시행착오 등을 일반 소비자 또는 업계 관계자, 예비 패턴사들에게 공유하는데도 노력과 시간을 쏟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건 후배 양성이다. 현재 로제패턴실의 2명의 남성·여성 패턴사를 직접 가르치며, 능력 있는 패턴사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 실장은 향후 목표에 대한 질문에 패턴 제작 경험을 토대로 옷까지 직접 제작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준비 단계로 현재 로제패턴실은 제휴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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