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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7-경방그룹 회장 김각중
섬유 코리아 이끈 한국경제 성공신화
기사입력: 2020/06/29 [10:32]  최종편집: TIN 뉴스 이 기사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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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경방그룹 회장
김각중(金珏中)
(1925~2012)

 

‘상식과 양식의 善用’ ‘기본과 원칙의 준수’

 

 경방그룹 회장 김각중 © TIN뉴스

“불쑥 공장에 들어가 보면 실이나 방직기들이 내는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살피는 마음이 곧 성심(誠心)이라고 생각한다. 성심을 가지고 일한다면 설령 기계가 구형이라고 해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가지 않은 길’에서

 

한국섬유산업의 대명사인 경방은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1919년 10월 5일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독립정신 아래 우리 민족 최초의 근대기업으로서 설립됐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대에서 당시 경방의 창립은 한 기업의 설립 이전에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기업으로 정치적 독립에 앞서 경제적 독립부터 먼저 시작하자는 희망의 불씨와 같았다.

 

광복 후에는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꿋꿋이 딛고 일어나 1960~70년대 국가경제를 일으키는 수출 역군으로서 그 소임을 다해왔다. 또 1990년대에는 사업다각화 전략을 통해 섬유에서부터 유통, 홈쇼핑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100년 기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역사의 중심에는 세계 수출화를 통해 섬유대국의 기틀을 마련한 ‘대한민국 섬유신화’ 김각중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김각중 회장은 국내 최초의 면방직 기업인 경성방직을 설립한 김용완 회장의 1남4녀 중 장남으로, 1925년에 태어났다. 모친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막내 여동생인 고(故) 김정효 여사로,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과는 외사촌이다.

 

연희전문(연세대) 이과를 졸업하고 대통령직속 미국경제협조처(E.C.A) 기술보좌관, 외자구매처 사무관을 거쳐 1953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64년 유타주립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동안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대한화섬의 상무를 거쳐 1969년에 경방의 감사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섬유인의 길을 걷는다.

 

이후 상무와 전무를 거치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수출 등의 해외업무에 매진했다. 또 부사장 시절에는 용인공장 건설공사를 주관하여 당시 면방공장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관작업이 가능한 효율적인 공장을 탄생시키며 현대화를 주도했다.

 

 1970년대 초 김각중 회장(사진 우측)이 경방 공장을 시찰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경방)  © TIN뉴스

 

특히 1974년 용인공장(방기 3만1104추, 직기 504대) 건설을 주도한 경험으로 1984년 반월공장(염색)과 1988년 광주공장(방기 3만1104추)을 준공함으로써 경방의 생산체계를 확립했다.

 

1975년 김용완 회장에 이어 50세의 나이로 경방 회장에 취임하면서 경방의 첫 세대교체를 이뤄냈는데 이는 경방의 기업 환경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1981년 무렵 매월 1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며 불황의 늪에 빠졌으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고자 제7대 사장으로 취임해 사장과 회장으로서의 중책을 동시에 맡는다.

 

당시 취임사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면밀한 관찰과 부단한 노력이 있으면 희망과 함께 극복해낼 방법도 발견되기 마련이다”며 “고비를 극복할 길이 있다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따라 상황은 유리 또는 불리할 수 있다”면서 “확신컨대 우리가 결속하고 단합하여 각자의 능력을 120% 활용하는데 주력한다면 반드시 고비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등포공장을 순시 중인 김각중 회장(사진제공 경방) © TIN뉴스

 

특히 기존의 ‘보수’에서 ‘진취적 보수’로의 변화를 위해 경영체질의 변화 및 강화에도 착수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경영방식이었던 집단경영체제를 단일경영체제로 전환하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한편으로 회사의 장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경영합리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영등포공장의 노후시설 개체, 연사기 증설, 가공사 생산 확대, 제3공장 부지 확보, 사무전산화, 기술개발 및 제품개발 능력 강화, 사옥 건설, 셔틀리스직기 도입, 해외지점 활용 등의 장∙단기계획 을 추진했다.

 

또한 불황 극복을 위한 단기 대책으로 비용 예산편성에 중점을 두었던 제도를 생산판매 부문에 중점을 두어 한계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적제품생산계획(Product Mix)을 도입하는 등 내부 경영체질 강화에도 힘썼으며, 동시에 외부적인 체질강화를 위해 원면 공급지의 다변화와 대양주, 북유럽, 동구권 등까지 수출시장을 확대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처방은 당시는 물론 향후 경영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기에 대호황을 누리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이후 경방의 미래를 개척하는 좌표가 되었다.

 

▲ 2002년 이한동 국무총리 초청 전경련 회장단, 중진회원 만찬 간담회     ©TIN뉴스

 

온화한 성품에 친화력이 돋보였던 김각중 회장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제 26, 27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재계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경제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중앙염색가공회 회장, 한국섬유기술연구소 이사장,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등 굵직한 역할을 도맡아 섬유산업이 대표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80년대 중공업이 주력 산업으로 떠오르며 ‘섬유산업 사양론’이 일어나자 1984년 정부는 산업합리화 대상으로 섬유업종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당시 김각중 회장은 “1970년대 식의 호황은 없겠지만 섬유 사양론이 거론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섬유산업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 해왔다”면서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한 수출 활성화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맞섰다.

 

그 결과 1987년에는 총매출액 1,000억원과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고 당기순이익 127억원을 달성하는 등 국내 섬유기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며 섬유 사양론을 불식시키는데 앞장서왔다.

 

2004년에는 영어 공부에 몰두했던 중앙고 재학시절부터 도미유학, 고려대 교수, 경방 회장, 전경련 회장 등에 이르는 인생 여정을 담아낸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가지 않은 길’을 펴냈다.

 

김각중 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공장들이 자꾸 해외로 옮겨가고 나면 대체 이 나라에 무엇이 남을까 두렵다”며 “기업은 떳떳하게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고, 정부는 규제를 대담하게 풀어줘야 한다”면서 “노사 문제도 무조건의 평등의식만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그 같은 단순한 접근은 공멸의 길을 열게 될지 모른다”고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1990년대 중국 섬유의 급부상으로 섬유 사양론이 더욱 뚜렷해지자 유통분야로 시야를 넓혀 경방필백화점에 이어 2009년 옛 경성방직 자리에 초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오픈했다. © TIN뉴스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경방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 아래 기업정직성을 투명하게 이어왔다. 공선사후란 사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신으로 이타적 활동에 대해 신념과 주관이 뚜렷하고, 배려심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사회정의와 공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김각중 회장은 “비파만추오동조조(枇杷晩秋梧桐早凋: 비파는 비록 그 잎이 화려하진 않지만 가을 늦게까지 피어나고, 오동은 그 잎은 화려하지만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떨어진다.)라는 말처럼 정직한 기업은 비록 그 성장 속도가 더디더라도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다”며 기업의 생명을 정직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발전과 동시에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철칙”이라며 기업 재단의 효시인 장학재단 경방육영회를 운영, 인재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상식과 양식의 선용(善用)’이라는 경영이념으로 가족과 같은 기업문화를 조성해 노사화합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상공회의소 상임위원, 한일경제협의회 부회장, 제일은행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으며 이탈리아, 핀란드, 뉴질랜드로부터는 공로훈장을 받았다. 또한 1999년에는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매일경제·전경련)’으로 선정됐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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